[푸드테크 뜬다]⑨ 파스타부터 커스텀 커피까지…주방·외식 생태계 바꾸는 로보틱스
[편집자주] 삶의 질이 향상되고 소비자의 지식수준은 높아졌습니다. 여기에 인간 수명까지 늘어나면서 건강을 개선하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개인 맞춤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자원 낭비는 줄이고 식품 폐기물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먹거리 산업도 주목됩니다. 식품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조리 및 외식의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기술도 각광받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이 모든 것을 현실화하는 ‘푸드테크’를 유형별로 살펴보고 푸드테크의 현주소를 살펴보는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한국이 푸드테크 선진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혜안을 모색해 봅니다.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식당 '지구테이블' 주방에서 파스타 메뉴인 알리오올리오가 조리되기 시작했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웍'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웍하면 떠오르는 강렬한 불꽃과 열기가 없는 데도 순식간에 '치이익'하고 재료가 볶아지는 소리가 났다. 파스타가 조리되는 동안 주방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작업을 했다.
재료를 넣고 난 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는데도 금세 파스타가 완성됐다. 접시에 파스타를 옮겨 담자 웍이 뒤집혔고 싱크대 노즐에서 나온 뜨거운 물줄기가 웍 내부를 헹궈냈다. 조리부터 세척까지 모든 과정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모습이다.
'에이트키친'은 국내 기업 크레오코리아가 개발한 주방자동화 시스템이다. 인덕션 방식의 웍으로 조리하는 하드웨어와 주문 관리 등 전반적인 소프트웨어가 포함된다. 이날 매장에서 만난 박성철 크레오코리아 이사는 "웍은 냄비와 프라이팬의 중간 느낌"이라며 "파스타, 떡볶이, 볶음밥 등 볶는 건 다 된다고 보면 된다. 라면도 끓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이트키친은 단순히 주방 인력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숙련된 셰프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박 이사는 "웍을 다루고 뭔가를 볶을 수 있는 기술을 하는 분들이 최소 4년 차 이상"이라며 "코로나 유행 이후 셰프들이 복귀하지 않아 구인난이 매우 심해졌다"고 말했다.
숙련된 셰프도 하루에 30~40그릇 정도의 메뉴를 소화하긴 쉽지 않다. 체력과 집중력, 경험이 모두 필요하고 불을 쓰기 때문에 다칠 위험도 있다. 그는 "주문량이 많을 때 균일성을 유지하며 요리하는 건 어렵다"며 "웍 5대가 셰프 2.5명 정도를 대체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박 이사는 개발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로 '인덕션'을 꼽았다. 웍이 회전해야 하기 때문에 인덕션과 웍 사이가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붙어 있지 않으면 강한 출력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인덕션이 핵심 기술"이라며 "유사한 형태로 개발된 다른 어떤 제품보다 화력 수준이 높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크레오코리아는 박 이사를 포함해 총 3명이 창업했다. 박 이사는 "과거 식품 공장의 조리 기준 등을 관리하는 스마트솔루션을 납품하던 중 더 큰 외식산업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 명 다 개발자고 먹는 데 진심"이라며 "연구실에서 상상하는 게 아닌 당장 쓸 수 있는 기술을 만들자는 생각이 컸다"고 말했다.
크레오코리아는 2022년 8월 처음 주방자동화를 도입한 매장을 오픈해 2년째 실제 손님들을 대상으로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는 주방 바깥까지 자동화하며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박 이사는 "주문이 들어오는 플랫폼부터 음식 배달까지 '주방 완전자동화'가 목표"라고 전했다.
● 24시간 커피 제공하는 무인 매장…원두 배합한 '커스텀 커피'까지
사람 없이 커피를 제조해 제공하는 기업도 있다. '커피에반하다'는 올해 초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AI) 음성 키오스크와 로봇이 있는 무인 드라이브스루(DT) 카페를 연 프랜차이즈다. 임은성 커피에반하다 대표는 "처음에 오픈했을 때는 방문 고객의 20%만 음성 키오스크를 썼는데 지금은 80% 정도"라며 "손님들이 익숙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카페 무인·자동화의 장점은 단순히 인건비를 아끼는 것 이상이다. 임 대표는 "더 위생적으로 음료를 만들 수 있고 일정하면서도 다양한 레시피를 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음료 제조 속도도 사람보다 빠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무인 매장은 일과 시간 외의 커피 수요도 충족할 수 있다.
임 대표는 "자동화 기기를 활용하면 가맹점을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며 "돌발 상황에 대비해 기계나 매장에 문제가 생기면 원격 또는 현장 방문으로 처리할 수 있는 관제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커피에반하다는 자동화 시스템의 장점을 적극 활용한 기획을 여러 방면으로 추진 중이다. 고객이 원하는 원두 배합비를 고르면 즉석에서 블렌딩해 커피를 만들어주는 매장과 음료 레시피를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해 고객이 직접 레시피를 만들어 메뉴로 등록해 수익까지 낼 수 있는 '레시피 컨조인트'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배달 로봇과의 연계나 미국 드라이브스루 브랜드와의 협업도 고려 중이다.
원두 가공 공정에서도 '필오프'라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냈다. 임 대표는 "커피콩의 껍질을 벗기는 기존 공정에서는 커피콩에 있는 홈 모양 때문에 껍질의 약 20~30% 정도가 벗겨지지 않았다"며 "껍질을 완전히 날리면 텁텁한 맛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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