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당당한 도둑질…뱅크시 연작, 공개 1시간 만에 뜯겨나갔다
3인1조 도둑들, 시민들에게 폭력도
시민에 신고받은 경찰, 행방 추적 중
‘얼굴 없는 거리의 화가’로 알려진 영국 출신 그라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작품이 또 도난당했다. 이번에도 도둑들은 작품이 공개된 지 한 시간도 안 돼 나타났고 대낮에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작품을 뜯어 달아났다.
8일(현지시각) 영국 비비시(BBC)와 가디언의 보도를 보면, 이날 낮 영국 런던 남부 페컴 지구에 있는 라이 레인의 한 건물 옥상에 설치된 위성 안테나 접시에 뱅크시가 그린 작품을 남성 3명이 훔쳐 달아났다.
이들은 뱅크시 작품을 훔치기 위해 사다리까지 미리 준비했다. 1명이 사다리를 타고 건물 위로 올라가 작품을 뜯었고, 나머지 2명은 건물 아래에서 이를 넘겨받았다. 옥상에 올라간 1명은 복면을 하고 후드티에 연결된 모자를 쓴 채 장갑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건물 아래에 있던 2명은 얼굴조차 가리지 않았다.
많은 시민들이 대낮에 일어난 범행을 지켜봤고, 일부는 휴대전화로 촬영하기도 했다. 도둑들은 자신들을 촬영한 시민을 향해 폭력까지 휘둘렀다.
한 목격자는 비비시에 “그들은 내 옆구리를 걷어찼고 휴대전화를 빼앗아 던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뱅크시의 작품이 공개된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뜯어져 아쉽다”고 덧붙였다. 시민들의 신고를 받은 현지 경찰이 이들을 추적하고 있다.
이날 도둑맞은 작품에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검은 늑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뱅크시는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별다른 설명 없이 낮과 밤에 이 작품을 찍은 사진 2장을 올려 자신의 작품이라고 인증했다. 본명과 정체를 숨긴 뱅크시는 인스타그램에 작품 사진을 올리는 방식으로 자신의 작품임을 확인시키고 있다.
해당 작품은 지난 5일(현지시각)부터 뱅크시가 하루에 한 작품씩 런던 곳곳에 공개하고 있는 이른바 ‘런던 동물원’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공개된 작품은 런던 남서부 큐 브리지 인근 건물 벽에 그린 염소 벽화다.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비추는 지점에 그려진 염소는 좁은 난간에 떨어질 듯 위태롭게 서 있다. 두 번째 작품은 런던 서남부 첼시의 한 주택 벽의 막힌 창문 밖으로 코끼리 두 마리가 머리를 내밀고 있는 벽화다. 세 번째 작품은 런던 동부 구제 패션 거리인 브릭 레인의 기차 다리 벽면에 다리를 건너는 원숭이 세 마리를 담은 벽화다.
여러 동물들이 등장하는 벽화들은 ‘런던 동물원’ 시리즈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이 시리즈는 이번 주말(10~11일) 마무리될 것으로 알려졌다.
뱅크시는 ‘런던 동물원’ 시리즈 사진을 공개하면서 앞선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 시리즈 해석을 두고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는데 최근 영국 전역에서 폭력 시위를 벌이고 있는 극우 세력들을 동물에 빗댄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전쟁, 기아, 난민, 환경, 국가권력 등 인류가 처해 있는 위기의식을 담은 뱅크시의 작품들은 대개 고가에 팔린다. 이 때문인지 공공 장소에 설치된 뱅크시의 작품이 여러 번 도난당하는 등 수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도 런던 남동부 페컴 지구의 교차로에 설치된 작품을 남성 2명이 뜯어 달아났다. 정지 표지판에 군용 드론 3대가 날아가는 작품으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휴전을 촉구하는 뜻이 담긴 작품이었다.
2022년 12월에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도시인 호스토멜의 한 건물 외벽에 남긴 뱅크시의 작품을 떼낸 일당이 현장에서 붙잡혔다. 전쟁으로 부서진 벽면에 방독면을 쓰고 목욕 가운을 입은 여성이 소화기를 든 벽화로, 뜯어진 작품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프랑스 파리 현대미술관 간판 뒤에 뱅크시의 분신으로 불리는 ‘복면 쥐’가 커터 칼을 안고 있는 그림이 2018년 6월 발견돼 미술관이 유리 덮개까지 동원하며 보존에 나섰지만, 이듬해인 2019년 9월 누군가 톱으로 작품을 잘라 훔쳐 갔다.
2019년 1월에는 뱅크시의 작품이 그려진 철문이 통째로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뱅크시가 2015년 11월 발생한 프랑스 테러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2018년 1월 파리 바타클랑 극장 철문에 남긴 작품으로, 사라진 문은 도난 1년5개월여 만인 2020년 6월 이탈리아의 한 농가에서 발견됐다.
주성미 기자 smoody@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권익위 안팎 “김 국장 명품백 때문에 극심한 압박감 느꼈다”
- 90% 넘게 충전한 전기차, 서울아파트 지하주차장 출입 제한한다
- ‘개고기 금지’까지 2년7개월…46만 마리 개들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 판정 뒤집고 경기도 뒤집은 서건우, 태권도 8강 진출
- 첫 무대서 메달 수확에 신기록까지…올림픽 새내기들의 활약
- 박지원 “정치 시장서 대통령 격리하잔 말 나와”
- ‘묶인 환자 사망’에 분노한 정신장애인들 “격리·강박 금지하라”
- 아이들 물놀이장에 소화용수 쓴 아파트…“최대 50만원 과태료”
- 코로나 환자 1주 새 2배 증가…입원 65%가 65살 이상
- “도와주세요!” 식사 중 기도 막힌 70대, 휴가중 소방관이 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