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녹취 제보' 한 달째 소식 없는 공수처...커지는 부실 수사 우려

조원일 2024. 8. 9. 15:2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 채수근 해병 사망 사건 관련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정황이 담긴, 이른바 ‘VIP 녹음 파일'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확보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음성 파일의 원본 확보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사건 관계자를 변호했던 검사의 ‘늑장 직무배제’를 두고도 여전히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지 못해 부실 수사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4일. 박정훈 대령의 변호인인 김규현 변호사는 공수처에 휴대전화 녹음파일 18개를 제보했다. 뉴스타파가 공수처가 확보한 녹음파일 18개의 내용을 확인한 결과, 12개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김건희 여사의 계좌를 관리했던 이종호 씨가, 나머지 6개는 전 대통령 경호처 직원 송 모 씨가 김규현 변호사와 나눈 대화였다. 통화가 이뤄진 기간은 지난해 5월부터 올해 6월까지로, 총 83분 분량이다. 

김규현 변호사가 제보한 ‘구명로비 녹음 파일'

김규현 변호사가 공수처에 제보한 18개 녹음 파일에는 이종호 씨와 송 모 씨가 채 해병 사망 사건 직후 임성근 사단장의 거취를 두고, 해병대 출신 지인인 김 변호사에게 했던 말이 주로 기록돼 있다. 

나는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여기만 잘 살피고 있는 거라. 내가 통화도 하고 문자도 보냈는데, 내가 그랬어. ‘어떤 경우가 와도 도의적인 책임은 지겠지만 그걸로 인해서 전역, 사표라든지 이런 건 내지 말아라. 사의 표명을 하지 말아라.’ 그건 자기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중략) 근데 밖에 나가서 대민 돕다가 그런(채 해병 사망) 일이 벌어졌는데, 그걸 사단장 책임이라고 하면 나는 말이 안 된다. 여튼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어. 
- 송OO(전 대통령 경호처 직원)과 김규현 변호사의 통화 내용 (2023.8.9)

임성근(해병대 1사단장)이? 그러니까 말이야. 아니 그래서 임 사단장이 사표를 낸다고 그래가지고 XX이가 전화 왔더라고, 그래가지고 내가 절대 사표 내지 마라, 내가 VIP한테 얘기를 하겠다, 원래 그거 별 3개 달아주려고 했던 거잖아.
- 이종호 씨(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범)와 김규현 변호사의 통화 내용(2023.8.9)  

■ 이종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범 : 너는 성근이를 임사단장을 안 만났구나. 이쪽 얘기 들으면 이쪽 놈이 맞고 저쪽 놈 말 들으면 저쪽 놈이 맞고…
□ 김규현 변호사 : 그거는 간단합니다. 선배님. 그러니까 법적인 걸 떠나서 도의적으로라도 물러났어야죠.
■이종호씨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범)그러니까 쓸데없이 내가 거기 개입이 돼가지고 사표 낸다고 그럴 때 내라 그럴 걸…

- 이종호 씨(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범)와 김규현 변호사의 통화 내용(2024.3.4)  

김규현 변호사는 최근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김건희 여사와의 개인적인 친분을 강조했던 이종호 씨의 구명 로비 주장을 당시로서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종호 선배 경우 도이치 사건의 공범이었기 때문에 김건희 여사와 잘 아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했다. 함께 술을 마시거나 할 때 ‘결혼도 시켜줬다' ‘당시에는 아기였는데 영부인이 됐다' 등 김건희 여사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다. 그런 이종호씨가 임성근 구명 로비를 위해 움직였다고 생각했다. 
- 김규현 변호사(2024.7.31. 인터뷰)

김규현 변호사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제보한 이종호, 송OO씨와의 통화 녹음파일 목록.  

‘이종호 통화 음성파일 원본’, 공수처는 임의제출 요구도 하지 않았다

당시 휴대전화 자동녹화 기능을 사용했던 김규현 변호사는 이종호, 송 모 씨 등과 통화를 하고 남긴 녹음파일이 공수처에 제보한 것보다 “셀 수 없이 많다"고 밝혔다. 그는 “임성근 사단장과 관련된 정황이 담긴 녹음파일에 한정해 USB에 담아 공수처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김규현 변호사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긴 음성파일만 골라 공수처에 제보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자신의 휴대전화 안에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사 기관에서는 사건 관계자나 제보자로부터 증거를 확보할 경우, 증거가 오염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김규현 변호사의 경우처럼 휴대전화 통화 녹음 파일을 증거로 삼을 때는 일부가 아닌 전체 녹음 파일을 확보하기 위해 압수수색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공받은 음성 파일이 특정 내용으로 편집돼 있거나, 전체 파일 중 일부만 제공됐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수처는 김규현 변호사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은커녕, 임의 제출 요구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 변호사는 “휴대전화를 통째로 제출할 의사도 있었지만 공수처가 요구하지 않았다"며 “공수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면 압수수색을 하든 저에게 임의제출 요구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김규현 변호사가 제보한 진정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공수처가 제보 녹음 파일을 토대로 구명 로비 의혹을 밝혀낸다 해도, 재판 과정에서 증거 신빙성을 의심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뉴스타파는 김규현 변호사의 휴대전화에 담긴 녹음파일 전체 원본을 확보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질의했으나, 공수처는 “답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 7월 4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임성근 사단장 구명로비' 의혹이 담긴 통화 녹음파일을 제보한 김규현 변호사. 

“수사 내용 몰랐다”는 공수처의 황당한 해명

고 채 해병 사망 사건의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공수처의 수사 의지에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대목은 이뿐만이 아니다. 공수처가 과거 이종호 변호인 경력이 있는 검사를 수사 라인에서 뒤늦게 배제해 놓고도 설득력 있는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규현 변호사가 녹음파일을 공수처에 제출한 것은 지난달 4일이다. 이날 김 변호사는 공수처에 나와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김 변호사는 “오전에 출석해 수사팀 분들이 계신 회의실에서 녹음 파일에 대한 설명했다”며 “이 자리에 심OO 검사도 있었”고, “저녁에 조사를 마친 후 심OO 검사에게 ‘수사를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김 변호사가 조사 당시 만났던 심OO 검사는 과거 이종호 씨의 변호인으로 활동했던 이력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이해충돌 논란이 불거졌고, 공수처는 심 검사를 관련 수사 업무에서 전격 배제했다. 

문제는 심 검사 외에 외압 사건의 수사를 지휘하는 송창진 차장 직무 대행 검사도 과거 이종호 씨를 변호했는데도, 송창진 검사는 김규현 변호사 조사 시점으로부터 열흘 가까이 지나서야 직무 배제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지난달 26일,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송창진 검사는 “(7월) 15일 이후에는 해당 직무에서 배제가 됐지만, 그전에는 계속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송창진 검사의 늑장 직무배제와 관련해, 공수처는 “김규현 변호사의 제보 내용이 이종호와 관련된 사실을 송창진 검사가 뒤늦게 알게 돼 업무배제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송창진 검사는 세세한 수사 상황까지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며 이해 충돌 소지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공수처가 김규현 변호사로부터 녹음파일을 확보한 직후 수사 담당자인 심 검사를 즉시 직무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내렸으면서도, 정작 수사를 지휘하는 송창진 검사가 열흘 가까이 그 내용을 몰랐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김규현 변호사는 “수사 과정을 고려했을 때, 공수처만 믿고 기다리기 힘든 상황이 됐다"며 “독립적이고 공정한 수사를 위해 특검이 하루빨리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타파 조원일 callme11@newstapa.org

Copyright © 뉴스타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