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계란 탁 풀고 부추를 듬뿍…꼬리곰탕 ‘삼매경’에 빠진다
부산 구포동 ‘장수장 꼬리곰탕’
지난 봄 지역 맛집을 소개하는 ‘여소곤’(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시리즈가 시작될 때 덜컥 겁이 났다. 평소 식탐이 없기 때문이다. 겨우 수소문을 해서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인 돼지국밥 식당을 소개했다. 평소 내 기사에 달린 댓글을 잘 보지 않지만 난생 처음 작성한 맛집 기사였기에 댓글을 읽었다. ‘돈 받고 기사 썼냐’는 글이 눈에 거슬렸지만 자본이 넉넉하지 않은 소규모 매체들이 광고를 받는 대가로 맛집 기사를 마구 썼던 대가라고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여소곤 시즌2를 하자는 공지가 떴다. 또 난감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수소문했다. 주변에서 여러 후보 식당들을 추천했지만 단체 관광객이 찾지 않는 식당, 맛이 있는 식당, 모든 연령대가 좋아하는 메뉴 등 나름의 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하나둘 탈락했다. 머리를 굴리다가 맛집 찾기가 취미인 지인에게 부탁했다. 전직 기자였기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안다고 생각했다. “여름이니까 시원한 물회가 어떠냐”고 했다. 인터뷰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식당 주인이 “예전에 기사가 났는데 악성 댓글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단칼에 거절했다.
기사 마감 시각이 다가왔다. 최후의 수단을 강구했다. 부산시청 출입기자의 이점을 활용했다. 유정규 부산시 보도팀장에게 사정을 알리고 식당 수배를 부탁했다. 유 팀장은 평소 맛집에 일가견이 있다고 알려졌다. 얼마 뒤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꼬리곰탕 어떠세요?” 순간 멈칫했다. 꼬리곰탕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가 예전에 윗분들 모시고 간 적이 있는데 조금 멀지만 괜찮더라고요. 손님도 많고 식당도 오래돼서 믿고 드셔도 될 겁니다.”
유 팀장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어디냐”고 물었다. 부산 북구 구포동에 자리한 ‘장수장 꼬리곰탕’이었다. 문제는 식당업주가 인터뷰에 응할 것인지였다. 마침 부산시청에서 근무하다가 승진해서 부산 북구 부구청장으로 부임한 권기혁 전 부산시 교통정책과장에게 장수장 꼬리곰탕 업주와의 인터뷰 주선을 부탁했다.
“식당 섭외됐습니다”. 지난달 30일 점심 무렵 부산 북구청에서 권 부구청장, 유 팀장 등 3명과 함께 장수장 꼬리곰탕 식당으로 갔다. 2분 정도 걸어가니 식당이 나왔다. 손님들이 가득했다. 예약을 해서 나이가 지긋한 여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인터뷰를 안 하려다가 북구청 직원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다고 생각해서 기자님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드셔 보시고 솔직한 평가 부탁드립니다.”
김행연(73) 사장이 직접 주문을 받았다. 꼬리곰탕 큰 사이즈 4개와 소 꼬리 수육을 시켰다. 수육이 먼저 나왔다. 꼬리곰탕은 소 꼬리가 주요 재료다. 소 꼬리는 뼈가 있는데 이 뼈에 달라붙은 살점이 꼬리곰탕 수육이다. 뜨거운 뼈를 붙잡고 한 점을 씹으니 뼈와 살이 자연스럽게 분리됐다. 살점이 고기 젤리와 같은 느낌이었다. 약간 싱거워서 양념에 찍어서 먹었다. 적당한 간을 한 부추와 함께 씹어먹으니 짭짤한 맛과 함께 수육이 술술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수육이 바닥을 드러낼 무렵 뚝배기에 담긴 꼬리곰탕이 나왔다. 김 사장이 맛있게 먹는 법을 설명했다. “먼저 날계란을 뜨거운 국물에 넣습니다. 그다음에 부추를 많이 넣으세요”. 꼬리곰탕에 날계란을 넣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사장은 “그건 나도 몰라요. 어릴 때 어머니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나도 그런 것이죠”.
김 사장이 꼬리곰탕 식당을 시작한 것은 1983년. 당시 서른살이었다고 한다. “중학교부터 제사음식을 만들 정도로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에게 “왜 하필 꼬리곰탕이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어릴 때 많이 아팠어요. 어머니가 내 병을 낫게 하려고 꼬리곰탕을 자주 먹였습니다”.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배운 꼬리곰탕 식당을 차렸고 지금의 장소에서 42년째 운영하고 있는데 40대인 둘째 아들이 그의 가업을 잇겠다며 1년 전 부산 수영구 남천동에 2호점을 열었다고 한다. 그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식당을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수장 꼬리곰탕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음식을 진실하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두번째는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그는 농수산물시장에 직접 가서 밑반찬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를 산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맛집의 공통점일 터. 진짜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망설이던 그는 웃으면서 “양념입니다”라고 했다. “어떤 재료가 들어가나요?”. “식초, 간장, 후추, 설탕, 고춧가루, 마늘 등입니다”.
김 사장의 말이 끝날 무렵 꼬리곰탕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한 입 삼켰다. 평소 짜게 먹는 습성이라서 약간 싱거웠다. 소금을 넣었다. “담백한데요.” 권 부구청장이 말했다. 꼬리곰탕에 푸짐하게 담긴 꼬리를 하나 꺼내서 한입 가득 씹었다. 부드러운 식감에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갔다. 이번엔 살점을 양념에 찍어서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으면서 국물에 어우러진 부추와 함께 공깃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공깃밥의 밥알에 스며든 국물 때문에 진한 고소함이 느껴졌다.
공깃밥이 아쉬워 한 그릇 더 달라고 했다. “꼬리를 다 드시고 부족하면 공깃밥을 달라고 하세요.” 김 사장이 시키는 대로 뚝배기에 담긴 고기를 먼저 공략했다. 부추와 뜨거운 국물의 궁합에 어느새 뚝배기의 밑바닥이 보였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꼬리곰탕 국물을 싹 다 먹어치우자 일행이 놀라워했다. 아랫배가 든든했다. 김 사장의 말대로 공깃밥 한 그릇이면 족했다.
김 사장에게 기억에 남는 단골손님이 누구냐고 물었다. “30여년 단골이 있는데요. 지금은 연로한 일본인인데요. 일본에서 해마다 부산으로 여행을 올 때 이곳에 들렀죠. 얼마 전 이곳을 찾아와서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선물을 주고 가는 겁니다.” 손님이 식당 주인에게 선물을 주고 가다니. 흔치 않은 일이다.
맛있게 먹은 뒤 꼬리곰탕을 만드는 부엌을 둘러보고 싶다고 말했다. 식당 뒤편으로 가니 부엌이 나왔다. “국물은 소뼈를 넣어서 12시간 고아서 만들고 수육은 소 꼬리를 3시간 삶아서 만듭니다.” 족히 너비가 2m가 돼 보이는 솥 뚜껑을 열자 국물과 수육이 펄펄 끓고 있었다. 여기서 나온 국물은 뚝배기에 넣어 다시 끓인 뒤 손님들이 앉은 식탁에 올려진다. 하루에 소 두 마리 분의 뼈가 사용된다고 한다.
1980~90년대까지 낙동강 하류에 자리한 옛 구포 나루터 근처엔 소시장이 있었다. 경남 농가에서 기른 소까지 구포까지 나들이를 왔다고 한다. “구포 소시장이 있을 때는 소 꼬리를 쉽게 확보했지만 지금은 소 꼬리가 귀합니다.” 구포 소시장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장수장 꼬리곰탕이 명맥을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 김 사장의 건강을 기원했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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