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이 대폭락 사태 범인일까? [취재파일]

임태우 기자 2024. 8. 9.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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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은 전 세계 증시가 충격에 빠진 날이었습니다. 일본의 닛케이225는 12.4% 폭락했고, 우리나라 코스피 지수는 8.77%, 코스닥은 11.3% 추락했습니다. 다른 세계 증시도 크고 작은 도미노 폭락장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언론은 이날의 역사적인 폭락을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다우존스지수와 S&P500 지수가 하루 만에 20% 이상 빠졌던 '블랙먼데이' 사건에 비유했습니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지금도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경기 침체나 전쟁, 코로나19 확산 같은 뚜렷한 경제 충격이 없었는데도, 마치 그런 일이 벌어진 것처럼 증시가 요동쳤기 때문입니다. 사후약방문 식으로 경기 침체의 신호탄이었다, 엔화 급등에 따른 엔 캐리 청산 영향 때문이었다며 저마다 원인 찾기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하나 짧은 시간에 역사적인 폭락이 벌어진 메커니즘을 속 시원하게 설명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각에서 이 미스터리한 사태 주범으로 '알고리즘 트레이딩'을 지목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기계가 자동으로 사고파는 프로그램 매매가 어떤 트리거를 계기로 대량의 변동성을 촉발하고 '스노우볼(작은 행동이 점점 쌓이면서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 효과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최근 AI 기술이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면서 이번 대폭락 사태가 일종의 'AI 반격' 같은 게 아니겠느냐는 두려움이 사람들 마음속에 번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신한금융투자 이선엽 이사를 비롯해 국내 몇몇 전문가들이 이러한 견해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6일 'wallstreetcn'라는 중국 종합 금융 플랫폼에 게재된 '1987년의 블랙먼데이가 다시 일어나고 있다: 그룹 매매의 반전, 유동성 충격,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라는 제목의 기사도 과거 블랙먼데이와 최근 사태의 유사성을 지적하며 이렇게 썼습니다.
 
1) "두 폭락의 기폭제는 차익거래와 프로그램 매매 청산과 유사합니다. 1987년과 마찬가지로 2024년의 '블랙 먼데이'는 완전한 폭풍에 의해 촉발됐습니다." ―The detonator of the two plunges is similar to that of arbitrage and program trading closure. Similar to 1987, the "Black Monday" of 2024 was triggered by a perfect storm.

2) "1987년에도 그룹 트레이딩의 청산이 관찰되었는데, 프로그램 매매가 주식 시장 붕괴의 주범 중 하나로 여겨졌으며, 투자 포트폴리오의 거래 프로그램이 주식을 매도하여 도미노 효과를 일으켰습니다." ―The reverse in group trading was also observed in 1987, when "program trading" was believed to be one of the culprits in the stock market crash, with trading programs in investment portfolios selling stocks, leading to a domino effect.


이들이 제기하는 가정을 구체적으로 전개해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시작됐습니다. 제조업 생산과 내구재 주문, 고용 통계 등의 경제 지표가 미국 경제에 대한 경고음을 울렸고, 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 시사는 오히려 경제 약세의 신호로 해석됐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2일 미국 실업률이 예상치 4.1%를 웃도는 4.3%가 찍히면서 경기 침체 공포감은 확 커졌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일본 은행은 시장 불안감을 한층 키웠습니다. 금리 인상 결정으로 엔화가 강세로 돌아섰고,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달러 자산 등에 투자하는 소위 '엔 캐리 트레이드' 전략은 위태로워졌습니다.

그러자 알고리즘 트레이딩 시스템들이 일제히 '청산' 신호를 울렸습니다. 1/1000초 단위로 사고파는 고빈도 매매(High-Frequency Trading) 알고리즘이 시장에 번개처럼 매도 주문을 쏟아내며 시장 유동성을 급격히 축소시켰습니다. 추세 추종 전략을 사용하는 알고리즘들은 시장의 하락 추세를 감지하고 추가적인 대량 매도를 쏟아냈습니다. 시장 변동성을 좇는 파생 알고리즘도 변동성에 베팅하며 공포 심리 확산에 가세했습니다.


'당장 리스크를 피하라'는 알고리즘 신호가 일제히 켜지면서 매도 청산에 대한 확증 편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됐습니다. 미국 시장의 초기 하락은 순식간에 아시아와 유럽 시장으로 퍼져 글로벌 매도세로 이어졌습니다. 매도가 더 큰 매도를 부르고, 하락이 더 큰 하락을 부르면서 하루아침에 거대한 대폭락 장세가 벌어졌다는 겁니다.

알고리즘 트레이딩은 인간의 감정을 배제한 채 매우 빠른 속도로 대량의 거래를 정교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처럼 '무감정'한 알고리즘이 순식간에 폭락의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전체 시장을 큰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가능해지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금융 시장에서 알고리즘 트레이딩 비중은 어떨까요? 2017년 골드만삭스 조사 결과, 알고리즘 트레이딩 비중은 주식 시장 총 거래량의 60~70%, 선물 거래의 40~50%를 차지했습니다. 옵션과 외환 거래에서도 30% 내외를 사람이 아닌, 알고리즘이 담당했습니다. 알고리즘 트레이딩 비중은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조사 시점으로부터 7년이나 흐른 지금은 그 비중이 훨씬 커졌을 걸로 추정됩니다.

알고리즘 트레이딩 시장은 해마다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SNS 인사이더'라는 미국 시장 기관은 알고리즘 트레이딩의 시장 규모가 지난해 188.1억 달러로 평가했고 2032년까지 539.1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예측 기간 동안 연평균 성장률(CAGR)은 12.41%에 달합니다.


이러한 추세를 봤을 때 알고리즘 트레이딩 비중은 앞으로도 계속 확대될 걸로 보입니다. 앞으로 시장 변동성이 더 빈번해지면 빈번해졌지, 반복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대비해야 할까요?

첫째, 분산 투자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한 종목이나 한 분야에 올인하는 것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주식뿐만 아니라 채권, 원자재, 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 군에 투자하는 편이 좋습니다.

둘째, 장기 투자 전략이 더욱 유효해질 수 있습니다. 시장 대세가 된 알고리즘 트레이딩의 판단 속도와 매매 타이밍을 사람이 쫓아가기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단기적인 변동성에 휘둘리기보다는 기업의 본질적 가치에 집중하는 편이 수익률 면에서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셋째, 알고리즘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알고리즘 트레이딩 비중에서 알 수 있듯 시장 추세를 만드는 주체로서의 알고리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는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투자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투자 방법론에 있어서 AI 활용과 빅데이터 분석 능력이 요구될 수도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알고리즘 폭락론'은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합니다. 다만, 여러 시장 상황에 비춰봤을 때 충분히 개연성이 있습니다. AI 시대가 다가오는 오늘날, 투자 시장의 변동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시사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리는 이번 폭락장 사태를 교훈 삼아 좀 더 현명하고 균형 잡힌 투자 전략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돌아봐야 할 시점입니다.

임태우 기자 eigh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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