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주차장이 답일까? 안전 빠진 전기차 충전시설의 덫 [추적+]

김정덕 기자 2024. 8. 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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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전기차 공포의 시대 1편
전기차만 위험하다는 건 오해
화재 진압 어려워 공포 확산
지상으로 올려도 해소 안 돼
충전시설 안전 설비 확충이 답
전기차 충전시설에 안전 설비를 갖추면 전기차 공포를 줄일 수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사고로 '전기차 포비아'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선 지하주차장에서 전기차를 내쫓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건 오해이긴 합니다만, '전기차 포비아'가 확산하는 덴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전기차에서 발생한 화재는 내연기관차처럼 쉽게 진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실적인 답은 간단합니다. 전기차 충전시설을 가급적 옥외로 옮기고, 충전시설에는 안전 설비를 잘 갖추는 겁니다. 이를 법으로 의무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겁니다.

# 문제는 이런 내용을 담은 법들이 21대 국회에선 단 한건도 통과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번엔 뭔가 다를까요? 우선 지하주차장과 충전시설 논란부터 짚어보고, 전기차 포비아의 해법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전기차 공포의 시대' 1편입니다.

전기차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그동안 전기차를 구입하는 행위는 석유사용량을 줄여 환경을 살리는 의미 있는 선택으로 여겨졌습니다. 연료비와 유지비도 내연기관차보다 저렴하고, 구입할 때 보조금도 주니, 말 그대로 1석4조였죠. 전기차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고, 1회 충전당 주행거리가 만족스럽지 못하며, 충전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데도 전기차를 사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이 말에 반박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국내에서만은 사실입니다. 지난 3월 한국딜로이트그룹이 26개국 2만7000여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엔진 종류별 차량 선호도를 조사해 분석한 결과를 보죠. 이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 중 38.0%는 내연기관차, 35.0%는 하이브리드차, 15.0%는 전기차(BEV 기준)를 선호했습니다.

단순히 수치만 보면 소비자들의 전기차 선호도는 낮습니다만, 지난해 전기차 판매 비중이 9.8%였다는 걸 감안하면 잠재적인 전기차 수요가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전기차 선호도를 국가별로 비교해보면 중국(33.0%)보다는 낮아도 독일(13.0%), 인도(10.0%), 동남아(10.0%), 미국(6.0%), 일본(6.0%)보다는 월등히 높았습니다. 전기차를 바라보는 국내 소비자의 인식이 나쁘지 않았다는 거죠.

■ 관점 전기차 포비아의 시대 =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전기차를 선호하긴커녕 기피하는 현상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지난 1일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사고 때문입니다.

당시 지하주차장에 가만히 주차돼 있던 벤츠 전기차에서 느닷없이 화재가 발생해 주변 차량 140여대가 불에 타거나 그을렸고, 주민 120여명이 긴급 대피했습니다. 이 사고로 소방관을 포함한 23명이 다치기도 했죠.

화재의 원인으로는 해당 전기차의 배터리가 지목되고 있습니다. 충전하던 것도 아니고, 주차된 상황에서 발생한 화재인 만큼 안전을 위해선 전기차를 타는 게 시기상조 아니냐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겁니다. 이른바 '전기차 포비아(공포)'입니다.

벌써 전기차 차주들을 대상으로 지하주차장에 있는 전기차 충전시설을 이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 아파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전기차를 아예 지상주차장에만 주차할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다른 차에도 큰 피해를 주니까 지하에 전기차를 두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거죠.

인천 전기차 화재사고로 전기차 안전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사진=뉴시스]

■ 관점 내연차 vs 전기차 = 그러자 일부에선 이런 주장도 나옵니다. "이번 전기차 화재사고는 전기차 자체의 문제인데, 왜 자꾸 충전소와 지하주차장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제조사가 문제없이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틀린 지적은 아닙니다. 다만 이 지적은 전기차뿐만 아니라 내연기관차에서도 차량 화재사고가 일어난다는 걸 간과한 지적입니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차량 1만대당 화재 발생 건수도 내연기관차가 1.9대, 전기차가 1.3대 수준입니다.

물론 내연기관차의 화재 발생 건수는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내연기관차도 완전무결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전기차가 완전무결하기를 기대한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오히려 차주車主에게 귀책이 없는 화재사고가 발생했을 때 제조사가 합당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게 현실적으로 필요한 지적이겠죠.

■ 관점 충전시설과 지하주차장 = 이런 점에서 전기차 충전소와 지하주차장 논란은 이번 전기차 화재사고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전기차 화재사고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진화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어디서 발생하느냐에 따라 대응 방식과 진화 속도가 달라집니다.

예컨대 지상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차가 진입할 수 있고, 공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서 다양한 방법들을 쓸 수 있죠. 반면 지하에서 전기차 화재사고가 발생하면 소방차 진입이 불가능한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실내여서 온도는 높고, 유독가스와 인명 피해까지 신경 써야 합니다.

게다가 전기차 화재사고는 일반적으로 주차만 해놨을 때보다 충전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많은 이들이 지하주차장 내에 있는 전기차 충전시설의 위험성을 경고해온 건 이 때문입니다.

더스쿠프도 지난해 3월 '안전 없는 전기차 충전기(통권 536호)'를 주제로 시리즈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그러니 아파트 주민들 입장에선 전기차와 충전소를 지상으로 내보내려는 게 그들이 당장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일지 모릅니다.

■ 관점 지하주차 vs 지상주차 = 문제는 지하주차장에서 전기차를 내쫓기만 하면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느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현행법상 공동주택(아파트)에는 친환경차 전용주차구역과 충전시설을 총 주차대수의 5% 이상(최소) 갖춰야 합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전용주차구역이 충전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기차 충전시설을 지상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사진=뉴시스]

특히, 대부분의 전기차 화재사고는 바로 충전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전기차 전용주차구역이 곧 전기차 화재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장소라는 얘깁니다. 그런데 요즘 지어진 아파트들 중엔 지상주차장이 없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지하주차장에 전기차 충전시설을 놓을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는 전기차 화재사고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충전시설에 화재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장치를 다는 등 안전 설비를 갖추는 게 최선입니다.

[※참고: 전기차 판매를 법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이들도 종종 있습니다. 이런 주장은 음주사고를 막기 위해 술을 팔지 말자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내연기관차를 친환경차로 대체하려는 전세계적 흐름과도 맞지 않습니다. 안전 설비의 비용을 강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전을 위한 대응을 비용으로 생각하면 어떤 예방조치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화재사고를 예방하거나 화재가 크게 번지지 않게 하는 안전 설비를 갖춘 충전시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현행법상 전기차 충전시설에 안전 설비를 갖출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차수판(수조 형태로 만들어 물을 채울 수 있는 장치)이나 전용 급수시설, 전용 소화기 등 일부 안전 설비가 있는 곳들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련 조례를 만든 덕분입니다. 중앙정부가 안전에 손을 놓고 있으니 지자체가 허점을 메우고 있는 셈입니다.

이쯤 되면 아직까지 왜 충전시설에 안전 설비 설치를 의무화하지 않았는지 궁금해질 겁니다. 이 문제는 전기차 공포의 시대 2편에서 다뤄보겠습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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