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거짓말을 시켰다. 그리고 했다"…'피겨' 이해인, 성추행의 진실
[Dispatch=김소정·구민지기자] 이해인(20)이 물었다. 2024년 6월 21일 대화다.
"아니... 지금 혼란스러워서 그러는데" (이해인)
하루아침에 성추행범으로 몰렸다. 상대는 미성년자 피겨선수 C군(17).
이해인이 다시 물었다.
"그때 그 (키스)마크, 너가 해달라고 하지 않았어? 내가 안된다고 했는데 계속 해달라고 괜찮다고 그랬잖아?" (이해인)
C선수가 답했다. 동문서답에 가까웠다.
"어... 근데... 나 믿어주는 거 맞지?" (C선수)
이해인은 "나한테 혹시 미안해?"라고 질문했다. C선수는 주춤했다.
"엄... 그전에 혹시 하나만 물어볼게.... 나 배신 안 하는 거 맞아?" (C선수)
배신? 어떤 배신일까? 아니, 누가 배신일까? 그보다, 누가 (배신을) 시켰을까?
◆ 성추행범이 됐다
그날 (6월 21일), 빙상연맹은 이해인의 행위를 '성추행'으로 결론냈다. 이어, 자격정지 3년의 징계를 내렸다. (해당 징계에는 전훈 기간 음주 행위도 포함됐다.)
빙상연맹이 성추행이라 판단한 결정적 배경은 무엇일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물리적 신체 접촉을 가해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을 안겼다"며 징계 사유를 밝혔다.
이해인이 "내가 그렇게 (강제로) 했다고?"라고 따진 이유도, 바로 그것. C선수의 진술이 없었다면, 성추행은 성립될 수 없는 사안이었다. 그도 그럴 게, 둘은 연인 사이였다.
다시, 6월 21일 대화다.
이해인 : 지금 너는 그 일이 성추행으로 끝났으면 좋겠어?
C선수 : 아니....
이해인 : 저렇게 기사가 났는데도 내가 좋아?
C선수 : 배신 안 하고 믿어주면 안 떠나
이해인 : 배신 안 해. 그저 성추행이 아니었다고 바로잡고 싶을 뿐.
C선수 : 그럼 다시 항의해서 내가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해줘.
이해인 : 으응. 고마워.
◆ 피겨는 끝났다
이해인 선수의 피겨 인생은, (거의) 끝났다. 피겨 전성기 연령을 고려할 때, 자격정지 3년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이해인의 나이는, 올해로 20살이다.
"우리 딸은... 스케이트화를 벗을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저도 그래요. 더 이상 싸울 힘도 없고요. 하지만..." (이해인父)
이해인의 부친은, 꼭 한 가지만은 바로잡고 싶다고 말했다. 다름 아닌, '성추행'이라는 꼬리표다.
"이제 겨우 스무 살입니다. 피겨가 인생의 전부였지만, 인생이 무너지진 않겠죠. 그런데 우리 딸이 성추행범이래요. 그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바로잡고 싶습니다." (이해인父)
'디스패치'가 이해인과 C 선수의 대화를 입수했다. 서로의 애칭은 '여보'. 그러다, 들켰다. 그러자, 거짓말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거짓말을 시켰다.
◆ 둘은, 서로 사랑했다
예를 들어, 6월 8일.
C선수 : 진짜로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해인아♥♥
이해인 : 오늘 하루도 속상한 일도 있었을 텐데 수고 많았어. 내가 정말 많이 사랑해.
이해인과 C선수는 5월 15일, 이태리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키스마크' 사건은 5월 23일 일어났다. 빙상연맹은 6월 3일과 5일, 진상 조사를 했다.
두 사람은 (빙상연매) 1차 조사 이후에도, 사랑의 대화를 이어갔다. 과연, 성추행범과 성추행 피해자의 대화일까?
C선수 : 해인아 내가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 사랑해. 진심이야.
이해인 : 나 사랑해 줘서 고마워어. 평생 내꺼 해줘어.
◆ 그 사랑은 단단했다
사실, 이해인과 C선수의 6월은 힘들었다. 우선 이해인은 이태리 전지훈련 당시 (B 선수와) 술을 마신 일로 조사를 받았다. 이어 '키스마크'에 대해 다시 불려갔다.
C선수 역시 마찬가지. '키스마크' 진상 조사에 출석했다. C선수는'왜 여자 숙소에 들어갔는지', '이해인과 어떤 사이인지', '(목에) 키스마크가 남았는지' 등을 진술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더 단단해졌다.
C선수 : 고마워.. 진짜로.. 나 믿어줘서. 꼭 자기가 나를 믿는 게 헛되지 않도록 꼭 다 복수하고 자기 행복하게 해줄게
이해인 : 흐으.. 이런 사랑 너에게서 받는 거 과분한 거 같으면서도 너가 이렇게 나 사랑해 주니까 너무 행복하다
C선수 : 나도 진짜 항상 고마워. 남들이 욕할 때 당당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게요.
◆ 그 말을 믿었다
이해인은, 적어도 성추행범의 멍에는 벗어던질 줄 알았다.
"다 복수하고 자기 행복하게 해줄게", "남들이 욕할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게요" (C선수)
이해인을 성추행범으로 몰고 간 사람들, 이해인을 성추행범이라 욕하는 사람들, 그들에 대한 복수와 부인이라 생각했다.
"자기가 내가 최고의 여자친구라고, 나 같은 여자친구 없다고 해줘서 너무 기쁘고 감동이었어요. 부디 목요일날 우리 둘 다 무사히 경고만 받고 마무리되길... 제발요." (이해인, 6월 17일 일기 발췌)
그러나, 이해인은 자격정지 3년을 받았다. C선수는견책으로 마무리됐다. 이해인은 가해자, C선수는 피해자로 인식된 것.
◆ 올댓스포츠의 훈수
이해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소속사는 '올댓스포츠'. 이해인은 "회사에서 하라는 대로 말했을 뿐인데..."라며 말을 이어갔다.
"소속사에서 연맹 조사에 대비해 답안을 줬습니다. 'C 선수와 연인 관계라는 것을 밝히지 말라'고 했어요." (이해인)
이해인에 따르면, 올댓스포츠는 '키스마크'가 생긴 이유에 대한 답안도 제시했다.
"보드게임을 하던 중에 (벌칙으로) C 선수의 목을 가볍게 문 것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전 그대로 말했고요." (이해인)
C 선수는 모범답안을 그대로 읊었을까? 그는 '살'을 덧붙였다. "놀라서 방을 나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빙상연맹 관계자는 8일, '디스패치'에 "이해인과 C선수의 진술이 마지막에 엇갈렸다. C선수는 '(키스마크 이후에) 놀라서 방을 나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두 사람 모두 연인 사이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C선수가 놀라서 나갔다고 하니 피해자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피해자 말을 우선적으로 반영했고요." (빙상연맹)
◆ C선수의 거짓 진술
이해인 : 혹시 공정위에서 진술할 때, 목에 키스마크 이후에 놀라서 뛰쳐나갔다고 한 적 있어?
C 선수 : 아니? 그런 적 없는데. 그냥 놀라서 뛰쳐나갔다고 한 적 전혀 없어. 그냥 나왔다고만 했지.
이해인 : 나왔다고 했다고? 그 후에 우리 그냥 같이 놀았다고 안 하고?
C 선수 : 어. 나는 다들 그렇게 얘기하라 하셔서.
이해인 : 아... 그래서 내가 그렇게 된 거구나..
C 선수 : 으으..미안...
이해인 : 나는 너 끝까지 지켜주려고... 했는데...
C 선수 : 하... 나는 그때 이런 생각 하지 못했어... 이걸로 잘못될 줄은 몰랐어.
이해인은 "아... 그래서 내가 이렇게 됐구나"라고 (뒤늦게) 파악했다. C 선수 역시 "이걸로 잘못된 줄 몰랐다"며 (뒤늦게) 이해했다.
◆ 이해인이 바란 건, 진실
이해인과 C 선수의 진술은 '엇박'이 났다. 이미 자격정지 3년이 떨어진 상황. 이해인은 C 선수가 입장문을 통해 사건을 바로잡아주길 바랐다.
다음은, 6월 25일 나눈 대화다.
이해인 : 그런데 자기 쪽(변호사)에서 나랑 사귄 적 없다고 말했다는데?
C 선수 : 엥? 우리는 사귄 게 맞으니까 그걸 부정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리고 마크에 대해서는 사귀는 사이였으니까 그냥 장난치다 깨문 거라고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변호사님께 말씀드렸어.
C 선수는 이미, "그렇게 말했다"고 답했다. 단, 부모님과 변호사가 원치 않는다는 변명을 덧붙였다.
"그렇게 말씀드리긴 했어. 근데 그렇게 하시는 거 원하지 않는다고 하셨어. 사귀는 거는 맞고 도와주는데 목 그거를 그렇게 말하면 진짜 키스마크가 되고, 자기(이해인) 징계 더 늘어날 수도 있고, 그렇게는 좀 싫으시대" (C 선수)
이미 키스마크가 있는데, 진짜 키스마크가 된다? 이미 최대치를 받았는데, 징계가 더 늘어난다? (스포츠공정위원회 징계 규정에 따르면, 경미한 성추행은 1년 이상 3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한다.)
◆ 더 이상, 말이 없다
'디스패치'는 C 선수 측에 이번 사건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그러나 같은 피겨계 선수로서 이해인 선수의 안위를 위해 재심이 끝날 때까지 함구하겠습니다." (변호사)
C 선수의 징계는 '견책'으로 마무리됐다. 잘못을 꾸짖어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것. 가장 가벼운 수준의 처분을 받았다.
그는 다행히,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에 출전할 기회를 다시 얻었다. 그리고 지난달 20일, 특유의 발랄한 연기력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만약, C 선수가 공정위 조사관에게 (사실) 그대로 말했다면?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은, 장담할 수 없었다.
일례로, '쇼트트랙' 김건우 선수는 선수촌 여자 숙소에 무단으로 들어가 1개월 출전 정지를 받았다. 결국, 2019 동계유니버시아드 출전을 포기해야 했다.
한 빙상 관계자는 '디스패치'에 "C 선수가 전훈 기간 여자 숙소를 드나들었다"면서 "과거 사례를 볼 때, 출전 정지 처분도 가능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 미성년자 의제 강제 추행죄?
물론, 이해인은 이번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키스마크' 사건이 일어난 2024년 5월 23일. 이해인(2005년 4월 16일)은 만 19세. C 선수(2008년 10월 14일)는 만 15세. C 선수는 법적으로 미성년자였다.
형법 제350조 2항에 따르면 미성년자 의제 강제추행죄가 성립될 수 있다. 의제란, 반대 증거가 있어도 번복되지 않는 것. 즉, 범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나와도 유죄다.
단, 법리적으로 다툴 필요는 있다. 이해인이 남긴 키스마크가 추행이냐는 것.
빙상연맹 공정위원회는 "물리적으로 신체 접촉을 가해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을 불러 일으켰다"고 결론냈다. 이해인의 행위에 '강제'와 '추행'이 들어 있다고 판단했다.
법조계 시각은 어떨까. 방정현 변호사는 "미성년자 의제 강제추행의 경우 그 행위가 과연 추행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명백한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단지 나이만을 기준으로 삼아 일률적으로 미성년자 의제 강제추행죄를 적용한다면 부조리한 결과가 양산될 수밖에 없습니다. 해당 행위가 발생한 상황 등에 대한 면밀한 고려 및 평가가 필요합니다." (방정현 변호사)
◆ 키스마크와 C의 뽀뽀
이해인은 지난 6월 26일, 대한체육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김가람 변호사가 법률 대리를 맡았다. 그는 '디스패치'에 재심신청이유서의 일부를 공개했다.
"미성년자 의제 강제추행죄에서 '추행'은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중략) 미성년자 의제 강제추행죄가 성립하려면, 그 신체적 접촉을 가한 행위가 '추행'에 해당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재심 이유서)
김가람 변호사는 재심청구이유서에 둘 사이 나눈 스냅챗을 증거로 첨부했다. '키스마크' 사건 다음 날(5월 24일), 주고 받은 대화다.
C 선수 : (오늘) 뽑보 아무도 못 봤겠지? 못 참고 해버려따
이해인 : 안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뽑뽀
C 선수 : 안 들키게 하묜 되지!
이해인 : 우리 아가가 굉장히 적극적이네
C 선수 : 오늘은 저녁에 볼래?ㅎㅎ
◆ 다시, 5월 23일
5월 24일, 목에 남은 키스마크가 (코치에게) 발각됐다. 이태리 전지훈련장이 발칵 뒤집힌 것. 이때, 먼저 미안하다고 말한 건 C 선수다.
C 선수 : 키스마크는 내가 잘못했고 책임지는 게 당연하지.
이해인 : 미안해. 너가 해달라고 해도 내가 하면 안 됐어. 나는 어른이니까. 내가 생각이 짧았어.
이해인과 C 선수는 3살 차이다. 하지만 이해인은 성년, C 선수는 미성년자다. 이해인은 C 선수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빙상연맹에 의해) 성추행범이 됐다.
김가람 변호사는 반문했다.
"어떤 부분이 성적 수치심인지, 묻고 싶습니다. 실체적 사실 관계를 파악하려는 노력은 했을까요? 연맹은 자격정지 3년 중징계를 내린 다음 날, 미성년자에게 성적 가해를 했다는 자극적인 기사를 냈습니다. 부디, 성추행 부분만큼은 바로 잡히길 바랍니다." (변호사)
이해인은 한국을 대표하는 피겨 선수다. 2023년 4대륙 선수권에서 금메달,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다. 김연아 이후 10년 만이다. 하지만 이번 징계로 더 이상 링크에 설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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