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보통합 30년 기다린 이유..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기에
유보통합이 처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0년전이었지만, 그동안 큰 진전이 없었던 이유는 통합을 위해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최근 10년간의 내용만 보더라도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무조정실에 '유보통합추진단'을 설치하는 등 3단계 추진 목표를 가지고 의욕적으로 임했으나 결실을 맺지 못했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한 발 물러서 통합이 아닌 격차완화를 국정과제로 설정했다.
2022년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서는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유보통합을 채택, 이듬해 1월에는 유보통합 추진 방안을 발표하고, 4월에 영유아교육·보육통합 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으며, 12월에는 정부조직법까지 개정시키는 엄청난 속도를 보였다. 지난 30년간 묵혀있던 과제를 불과 1년 사이 상당 부분 진전시킨 것이다.
이러한 빠른 발걸음은 의혹을 기대감으로 바꾸는 빛이 되기도 했지만, 우려가 실체화되는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했다.
성공적인 유보통합, 아니 아이가 행복하고 부모가 만족하며 교사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제대로 살펴봐야 할 것은 무엇인지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운영시간의 단일화 문제다. 현재 어린이집은 12시간, 유치원은 방과 후를 포함해 8시간 운영하는데 정부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운영시간을 12시간으로 단일화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영유아 누구나, 어린이집·유치원 관계없이 12시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인데 얼핏 학부모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라 할 수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전담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20년 보육체계 개편이후 어린이집에서는 4시부터 연장보육을 시행하고 있지만, 문제는 전담인력(연장보육 전담교사)을 지원할 예산도 부족하고, 오후 늦은 시간에 근무할 인력을 구하는 것도 어렵다. 그런데 이 상황에 유치원까지 12시간을 운영한다면? 웃돈이라도 줘서 다른 곳에서 근무하고 있던 전담인력을 모셔온다면 모를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다. 만약 이대로 어린이집, 유치원 모두 12시간 운영을 강행한다면 현장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고, 학부모들의 불만은 클 것이다. 운영시간 단일화보다 충분한 전담인력 및 예산확보가 먼저다.
둘째, 무늬뿐인 교사 대 아동비율 개선이다. 어린이집은 연령별 교사 한 명이 맡을 수 있는 아동 수가 정해져 있는데 이를 교사 대 아동 비율이라고 한다. 서울시는 이미 2021년부터 단계적으로 교사 대 아동비율 개선을 시행해오고 있다.
영유아보육법에서는 이를 0세 3명, 1세 5명, 2세 7명, 3세 15명, 4,5세 20명으로 정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를 0세 2명, 1세 4명, 2세 6명, 3세 10명으로 줄여 운영하는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으며, 2025년까지 0세 2명, 1세 4명, 2세 5명, 3세, 10명, 4,5세 15명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제4차 서울시 보육 중장기 마스터플랜을 통해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교육부가 발표한 교사 대 아동비율 개선은 그 비율이 서울시의 계획보다 못하고, 형태도 아동 수를 줄이는 것이 아닌 시간강사를 추가로 배치하는 방식이라 어린이집의 교사 대 아동 비율 개선에 비해 한 발 물러선 모양새이다. 후퇴말고, 서울시의 교사 대 아동비율 계획안을 정부 계획안에 반영해야 한다.
셋째, 입학신청 창구 단일화문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입학 시기와 방법, 절차 등이 모두 다르다. 이 두 기관은 모집방법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데, 어린이집은 입소 순위에 따른 점수제고, 유치원은 신청 후 추첨제다. 모집방법이 다르니 시기도 달라지는데, 어린이집은 점수제라 늦게 신청해도 점수가 높으면 입소할 수 있고, 유치원은 추첨제라 시기를 놓치면 원하는 곳에 들어가기 어렵다. 이렇게 두 기관의 모집방식과 시기가 다른데 정부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입학신청 창구를 당장 올해부터 일원화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건 내부 공사를 마무리하기도 전에 출입문부터 개방하는 것과 다름 없다. 학부모 편의를 위해서라지만, 입학신청 창구 단일화는 더 큰 혼란과 불편을 야기할 뿐이다. 입학신청 창구 단일화는 유보통합의 첫 단계가 아닌 마지막 단계여야 한다.
어린이집은 30년이나 유보통합을 기다렸다. 유보통합 그 자체를 오래 기다린 게 아니다. 유보통합을 통해 더 나아질 보육환경을 기다린 것이다.
축록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이라 했다. 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한다는 의미로, 통합만 쫓다가 더 중요한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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