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공사비 폭등 사태에도 공급대책 '딜레마'

김성아 기자 2024. 8. 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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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부동산대책] "단기 공급 성과에 치중한 모순 정책"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이 치솟자 정부가 재개발·재건축(정비사업)과 비아파트 시장 활성화 등을 통해 주택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한 '주택 공급 확대방안'을 내놨다. 사진은 8일 오후 부동산 관계장관회의 참석한 최상목 경제부총리(주재),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의 모습. /사진=임한별 기자
정부가 집값 불안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 대책으로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내놨다. 재개발·재건축(정비사업)과 빌라 등 비아파트 거래를 활성화해 3기 신도시가 공급되는 2027년 이전까지 주거 공백을 막겠다는 목적이다.

정부가 지난 8일 발표한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방안'에는 ▲재개발·재건축(정비사업) 규제 완화를 통한 도심 내 아파트 공급 확대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 ▲수도권 공공택지 신속 공급과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신규 택지 등이 핵심 내용으로 담겼다. 이를 통해 향후 6년 동안 수도권에 42만7000가구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골자다.

전문가들은 기존 정책들을 구체화한 세부대책이 담긴 점에 대해 낙관하면서도 현재 부동산 가격의 구조 문제가 공사비 급등과 재정 한계에서 비롯된 만큼 공급 실현과 집값 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기대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다만 최근 집값 상승을 주도한 원인이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 고가 아파트의 거래로 지목된 만큼 대책과는 괴리감이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그래픽=김은옥 디자인 기자


공사비 급등에 시름하는 건설업계… 정부 "정비사업 규제 완화"


정부가 '재건축·재개발촉진법'(특례법)을 통해 도심 내 아파트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최근 정비사업 지연의 최대 원인은 공사비 상승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인데 이에 대한 근본 대책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아파트 공사 현장 모습. /사진=뉴시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도심 내 아파트 공급을 위해 정비사업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재건축·재개발촉진법'(특례법) 제정을 추진한다. 정비사업 규제를 완화해 37만가구 공급을 가속화하겠다는 것이 정부 복안이다.

우선 기본계획과 정비계획의 동시처리를 허용하는 등 절차를 간소화하고 재건축 조합설립 동의 요건도 완화했다. 조합설립 동의로 인정할 수 있는 범위를 확대함과 동시에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에서 공사비 분쟁 발생 시 전문가 파견을 의무화해 합의를 이끌어내도록 했다. 사업성 개선을 위해 초기 자금의 기금 융자를 지원하고 주택연금 개별 인출 목적에는 분담금 납부를 포함한다.

하지만 다수의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의 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진단하며 심지어 부작용마저 우려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최근 부동산 가격 폭등 문제는 수년째 지속된 공사비 상승에 따른 정비사업 침체와 분양가 인상이 원인인데 민간 사업자들이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고 공급대책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인이 적다는 것이다.

김효선 NH농협은행 WM사업부 All100자문센터 부동산수석위원은 "기금을 이용해 초기 사업비 등을 융자받게 하는 부분은 사업 지연 시에 오히려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재건축 부담금 폐지의 경우 법령 통과도 난항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폐지가 된다 해도 사업성이 높은 서울 강남, 여의도 등에만 혜택을 준다는 형평성 논란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초기자금 지원과 공적 보증 강화, 주택연금 활용 등은 조합원이 감당해야 하는 대출"이라며 "추가 분담금을 낼 자금력이 있는 조합원의 사업장에 한해 혜택이 있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사업 속도를 앞당기기 위해 절차를 간소화하는 과정에 비민주적 개발이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조합 설립 시 주민 의견수렴 기준을 완화할 경우 원주민의 '둥지 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심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송승현 도시와 경제 대표는 "사업 동의 비율을 완화하면 정비사업에 반대하는 이들이 현금 청산으로 내보내질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며 "이주 대책 대해서도 제도 마련의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 방안 실효성은


정부가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으나 전문가들은 정책이 집값 안정에 미치는 효과는 장담할 수 없고 '수도권 과밀화'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사진은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남산에서 빌라 주택가가 보이는 모습. /사진=뉴시스
전세사기 여파로 침체된 비아파트 거래를 정상화하는 방안도 나왔다. 아파트로 수요 쏠림 현상을 분산하기 위해 ▲사업자 ▲수요자 ▲임대인 ▲임차인에 대한 세제·청약 지원의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수요가 많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공공 신축매입 11만가구 이상을 2025년까지 공급할 계획이다. 소규모 건설사업자의 취득세 중과를 완화하고 등록 주택임대사업자 세제 혜택 일몰 기한을 연장해 대상과 범위를 확대한다. 이외에 임대 수요 정상화를 위한 방안도 담겼다. 신축 소형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취득세·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 산정 시 주택 수를 제외하는 기간을 늘린다. 기축 소형주택을 구입해 임대주택으로 등록(매입임대)하는 경우 세제 산정 시 제외한다.

전문가들은 수요가 급감한 비아파트 공급 촉진이 집값 안정에 미치는 효과는 미미할 것이고 수도권 과밀화만 심화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대책 영향으로 수도권 신축 아파트의 매수 대기수요로 선회할 수 있다"며 " 1주택자가 인구감소지역 내 주택 1채를 취득할 경우 1가구 1주택 특례를 적용하는 '지방 세컨즈 홈' 정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고금리·고물가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영향으로 건축비가 상승해 수익성이 약화된 게 현재 부동산 문제의 원인이므로 정책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며 "비아파트를 매입해도 사업장별 선별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린벨트 해제… '양날의 검'


정부가 신속 공급과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신규택지 발표·물량 확대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그린벨트 모습. /사진=김창성 기자
수요자가 집중되는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그린벨트 해제를 단행해 신규 택지를 개발한다는 청사진도 발표했다.

그린벨트 해제 구역에 8만가구 신규 택지를 공급하고 수도권 3기 신도시 공공택지의 경우 토지 이용 효율화를 통해 2만가구 이상을 추가 공급하기로 했다. 신축과 구축을 포함한 비아파트 공공매입임대는 종전 계획 12만가구에서 최소 16만가구 이상으로 확대한다.

문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채 증가다. 그동안 LH가 공공주택 공급에 적극 나서지 못한 이유는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부채비율 항목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품질 좋은 공공주택 공급을 늘릴 경우 주거 안정 측면에선 실효성이 있지만 경영평가 등급이 하락할 경우 직원 인센티브 등은 감소한다.

그린벨트 해제가 수도권 인구 집중을 부추겨 수요 분산을 막고 지방 소멸을 가속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기 관점에서 인구 1인당 도시 녹지 면적은 24.79㎡로 전국 266.01㎡의 10%가 채 되지 않아 녹지 면적이 부족한 서울의 문제도 재부상할 수 있다.

임재만 세종대 공공정책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급정책보다 더 고민해야 하는 문제는 역대 정부가 여·야 구분없이 추진해온 지방 소멸 방지 정책"이라며 "수도권 주택공급이 단기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어도 지역 양극화와 자산 격차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탕삼탕 정책에 반응 미미"


전문가들은 이번 부동산 대책이 단기적인 공급 로드맵을 제시할 수 있으나 당장의 집값 상승세를 잠재우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내다봤다. 사진은 8일 오후 3시 열린 부동산관계장관회의 참석한 최상목 경제부총리(주재),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감원장 등의 모습. /사진=임한별 기자
그린벨트 해제로 시세 대비 낮은 분양가의 공공주택 분양이 이뤄질 경우 수요자의 자산 형성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현정부는 수요자를 상대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정책 허점이 발생한다. 대출 규제의 영향을 받지 않고 분양가를 감당할 수 있는 자산가를 중심으로 혜택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가계 대출 관리와 집값 안정의 두 가지 목표를 다 달성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국토교통부는 공급 숫자를 늘려야 하고 기획재정부는 가계 대출을 관리해야 하는 상반된 입장이다 보니 모순적인 정책이 나왔다"고 꼬집었다.

건설사업자 입장에서 많은 인센티브가 기대됨에도 대책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차가 예상된다. 무엇보다 '임기 내 착공'과 같은 단기 목표의 경우에 정권 리스크가 있어 보다 장기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정비사업과 그린벨트 해제는 최소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사업으로 지금 바로 집값에 미치는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집값 불안에 흔들린 민심을 달래려는 목적으로 내놓은 정책으로 보인다"며 "일부 세부대책의 내용은 향후 집값을 상승시킬 요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성아 기자 tjddk9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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