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가 애국자?…담뱃세 年 12조, 금연지원금은 1000억뿐
"금연사업 성공과 재정수입 감소 충돌…인식 바뀌어야"
[편집자주] "담배? 끊긴 끊어야지." 흡연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법한 말이다. 몸에 좋지 않다는 걸 뻔히 알지만 '난 괜찮겠지'라는 자기 확신에, 참을 수 없는 욕구에 담배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문제는 담배의 종류는 더욱 다양해졌고 흡연자들의 금연 의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금연정책도 이런 세태에 발맞춰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뉴스1이 국내 흡연 실태와 금연 정책을 돌아보고 흡연자를 금연의 길로 인도할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흡연자에게 '내가 애국자'라는 자조 섞인 말을 듣곤 한다. 담배에 붙는 세금이 상당한데 나라 곳간을 흡연자들이 채워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른바 '담뱃세'는 꾸준히 연간 11조~12조원을 기록 중이다. 다만 흡연에 의한 건강상 피해도 12조 원(질병관리청 추산)에 달하는 만큼 담배를 팔아 거둔 세금으로 금연 지원 프로그램들을 더 보완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하루 1갑 흡연자, 연간 120만원 세금 내…금연 지원엔 인색한 정부 담배에는 4개의 조세와 2개의 부담금이 붙는다. 조세로 지방세인 담배소비세와 지방교육세 그리고 국세인 부가가치세와 개별소비세 총 4개가 있다. 부담금으로 국민건강증진부담금, 폐기물 부담금을 각각 걷는다. 그중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이 국민건강증진기금의 형태로 금연 정책에 일부 활용된다.
4500원짜리 궐련 한 갑을 예로 들면 담배소비세(1007원·22.4%), 국민건강증진부담금(841원), 개별소비세(594원·13.2%), 지방교육세(443원·9.8%), 부가가치세(409원·9.1%), 폐기물부담금(24원·0.5%) 총 3318원이 담뱃세다. 하루에 궐련을 반갑 태운다면 연간 60만 5535원을 세금으로 내는 꼴이다.
더욱이 담배에 다양한 법이 존재하고 각각의 전담 기구가 다르다. 담배 판매 등 조세에 대해 기획재정부가, 금연 정책은 보건복지부가 총괄하며 담배의 유해성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관여한다. 환경부, 여성가족부도 담배 관련 법령을 담고 있다. 따라서 각 부처의 이해관계가 부딪힐 수도 있다.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복지부 관할 국민건강증진법과 담배 산업 등을 규정하는 기재부의 담배사업법 사이에 괴리가 있다. 예를 들어 담배의 정의를 신종 담배(궐련형·액상형 전자담배)까지 포함하자는 논의는 계속되고 있으나 법안 통과는 하세월이다. 일각에서 '담배 컨트롤타워'를 정비하자는 의견도 제기된다.
기재부가 매해 내놓는 '담배시장 동향'을 보면 담배 제세부담금, 이른바 '담뱃세'는 2015년 10조 5181억원, 2016년 12조 3761억원, 지난해 11조 7000억원 등 8~9년간 11조~12조원을 유지하고 있다. 담배소비세는 2022년 3조 6304억원 등 최근 6년간 평균 3조 5000억원 안팎으로 걷혔다.
2015년 담뱃값을 4500원으로 2000원 올린 직후에는 흡연율이 낮아졌고 세수 확보에 도움이 됐다. 그러나 10년 가까이 인상하지 않으니, 물가가 오를수록 담뱃값은 떨어지는 모양새고 금연을 유도하려던 담뱃세 본연의 기능도 힘을 잃었다. 하루빨리 담뱃값 인상 등을 논의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보건대학원 연구팀(박수잔·김하나·조성일)은 올해 안에 기존 금연 정책을 전면 강화하는 동시에 담뱃값을 8000원으로 올리거나 매년 10%씩 인상해야 오는 2030년까지 성인 남성 흡연율을 25%까지 떨어뜨리려는 정부의 '제5차 국민 건강증진 종합계획'이 실현 가능하다고 지난 1월 대한금연학회지를 통해 진단했다.
최근 '담뱃세의 주기적 인상 방식' 연구 결과를 한국세무학회 학술지에 게재한 안성희 가톨릭대 회계학과 교수는 "담배소비량 감소와 담뱃세 수입을 모두 고려할 때 담뱃값을 6000원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면서 "담뱃값의 즉흥적 인상은 재원의 중장기적 활용 계획 수립을 어렵게 한다. 정액 인상제가 담배 정책에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재부는 "담뱃값 인상 계획이 없다"고 선을 긋는다. 이에 대해 대한금연학회장을 지낸 백유진 한림대성심병원 교수(경기남부금연지원센터장)는 "담뱃세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상황 생각하면 올려야 한다. 오히려 정부는 '전혀 생각 없다, 서민 증세'라며 표만 생각한다"며 "정부는 담배를 끊게 할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의 경우 2021년 줄기와 뿌리를 이용한 신종 담배가 부과 대상에 포함돼 간신히 감소세를 멈췄다. 담배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는 한계 속에서 지난해 2조8250억원이 걷혔고 국민건강증진기금은 올해 3조 1040억원의 수입이, 3조 6377억원의 지출이 각각 계획됐다. 우선 기금은 건강보험 재정 지원에 1조 9022억원을 활용한다.
뒤이어 치매관리체계 구축에 1920억 원, 정신건강 증진사업에 1271억원을 투입하고 국가금연지원서비스에는 4% 수준인 1000억 원만 쓴다. 이 돈을 쪼개 보건소 금연클리닉 등 지역사회 중심 금연지원서비스에 313억 원, 학교흡연예방사업에 183억원, 금연홍보 및 캠페인에 180억 원, 찾아가는 금연지원서비스와 금연캠프에 각각 80억 원, 77억 원을 들인다.
전문가들은 금연 사업이 그간 다양해지고 여러 효과를 낳았다면서도 명확한 사업 지침이 마련돼 평가가 이뤄져야 하고, 실천 정도를 확인하는 작업은 더더욱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과거 복지부 금연사업지원단 위원장을 맡았던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금연 사업의 성공은 재정 수입의 감소라는 인식 속에서 어렵다"고 일갈했다.
이 교수는 "초기에는 금연 의지를 북돋는 행동요법이 이뤄지다, 약물요법이 서비스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꾸준히 진행한 사업의 효과를 연구, 분석해야 하나 미흡했다"고 지적했고, 백유진 교수는 "사업 구성은 각각 잘 됐는데 고도화되고 있지 않다. 전자담배 등 신종 담배 출현에 사업도 바뀌어야 하나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금연 선진국, 병의원과 약국 금연 상담 활발…우리는?
더불어 전문가들은 흡연자들이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금연 행동 가이드를 제공받고, 보다 편리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이 개선돼야 한다고 본다. 이른바 '금연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병의원과 약국을 통한 금연 상담을 대안으로 거론한다. 니코틴 대체제를 포함해 상세한 상담을 제공하는 방안이 도움 된다는 취지다.
금연 클리닉을 운영해 온 이철민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는 "모든 흡연자에 금연을 권한다고 금연하지 않을 텐데 흡연자이기도 한 수술을 앞둔 입원환자 등에 금연을 치료해야 한다고 알리는 선택 배제의 '옵트아웃' 전략을 고려할 때"라며 "그동안 우리는 금연할 생각이 있냐고 묻고 선택하기만 기다렸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는 간호사가 입원 환자의 흡연 이력을 듣곤 거부하지 않는 한 니코틴 패치를 그냥 주는 모습을 봤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 정부는 이런 데 기금을 활용했으면 좋겠다"며 "금연 사업은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안 돼 아직 약 처방 등에 제약이 있다. 돈을 잘 쓰기만 하면 금연 접근성이 좋아지지 않을까"라고 했다.
백유진 교수는 "금연에 대한 우리 정부 예산은 너무 적다. 또 담배사업법도 담배 사업을 산업으로 육성하는 등 1960~1970년대 법률이 지금도 그대로 적용된다"며 "서비스를 보완, 개선해야 하는데 그런 활동들이 없었다. 2015년 당시 잘 구성했지만 전혀 고도화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백 교수는 "단순히 약국에서 니코틴 패치를 주는 정도로는 안 된다. 교육과 상담이 뒤따라야 한다"며 "흡연 예방 측면에서 가장 효과 좋은 건 미디어를 통한 금연 홍보와 캠페인이다. 세금이 잘 안 걷히는 건 알고 있지만 담뱃세를 거둬 금연에 활용했으면 싶다"고 첨언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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