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 사저 매각 논란... 김홍걸과 김대중재단의 엇갈린 입장
김홍걸 "정치권 연락 한 통 없었다"
김대중재단 "매매 각서까지 체결"
② 역사적 보존 장담할 수 있나
김 "민간 기념관 추진" vs 재단 "장사용"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서울 동교동 사저 매각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김 전 대통령 3남인 김홍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초 외부 사업가에게 매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교동계 출신들을 중심으로 대책 마련에 들어가면서다. 김 전 의원은 불가피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동교동 사저는 김 전 대통령이 37년간 거주하며 군부정권에 가택연금을 당하는 등 민주화의 상징적 장소라는 점에서 재매입은 물론 향후 활용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① 외부 매각 외엔 방법 없었나
김 전 의원은 매각을 결정한 이유로 '금전적 문제'를 들고 있다. 5년 전 사저를 받으면서 부과된 상속세가 무려 17억여 원에 달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김 전 의원은 상속세를 내지 못해 이를 충당하기 위해 가상자산에 투자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김 전 의원은 8일 CBS라디오에서도 "세무서에서 1년 이상 독촉을 받아왔다"며 "최악의 경우 제가 국세체납자가 돼 집이 경매에 넘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현재 야권에서 대안으로 거론하고 있는 △공공 기념관 추진 △문화재 지정도 모두 시도는 했지만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기념관은 상속세로 사저가 근저당이 잡힌 탓에 서울시에서 매입을 꺼려 좌초됐고, 문화재 지정은 50년 이상을 넘어야 한다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업인을 만나 후원을 설득하고, 거주하고 있는 자택을 매각해 사저에 직접 사는 방안도 고려했으나 여의치 않았다는 게 김 전 의원 측 설명이다. 오히려 김 전 의원은 "정치권에서 전화 한 통 온 적이 없다"며 사저 문제에 무심했던 정치권이 뒤늦게 말을 얹는 데 대해 비판적인 반응이다.
김대중재단 얘기는 김 전 의원과 다르다. 재단이 문제해결을 위해 나섰지만, 김 전 의원이 이를 거부하고 외부인에게 매각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주장이다. 재단 관계자는 한국일보 통화에서 "김 전 의원이 상속세 부담으로 힘들어하니, 재단이 대신 집을 매입하고 상속세, 양도소득세까지 다 해결해주기로 함께 각서까지 썼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면서 "매매계약서를 쓰기로 하고 재단에선 계약금 3억4,000만 원까지 준비해뒀다"며 "하지만 계약 체결 직전 단계에서 김 전 의원이 '더 크게 돈을 주고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의원은 "합의서를 작성했다는 재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정면 반박했다. 김 의원은 "재단에선 그동안 제가 사저 유지를 위해 부담했던 비용과 상속세를 합한 20여억 원만 대겠다고만 제안했다"며 "사저는 공시지가 기준으로 재단에서 부담하는 돈과 30억 원 정도 차이가 나는데, 그걸 재단에 기부한 것으로 하자 했다"고 현실적으로 어려운 제안을 했다고 설명했다.
② 역사적 보존 장담할 수 있나
동교동 사저 매입자가 커피 프랜차이즈 사업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논란이 되고 있다. 자칫 민주화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동교동 사저가 카페 사업장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는 이희호 여사가 사저를 '김대중·이희호 기념관'으로 써달라고 남겼던 유언과도 배치될 수 있다. 이에 동교동계 의원들이 사저를 되찾기 위해 두 팔을 걷고 나섰고,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예금 6억 원을 내겠다는 의사까지 밝혔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매입자는 사저를 '민간 기념관'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매입자의 현재 생각은 자기가 잘 만들어서 기념관으로 쓸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좋은 뜻"이라며 "저한테는 단순히 부동산 거래 상대가 아니고 후원자"라고 해명했다. 또 "제가 소유권을 그대로 유지했더라도 사저 관리가 어려운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오히려 매각을 통해 사저를 보수하고 기념관으로 개방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는 뜻이다. 매입자는 사저는 보수만 하는 대신, 마당 한편에 업무공간만 설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재단에선 민간 기념관 계획을 신뢰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재단 관계자는 "매입자가 은행에 거액을 대출해서 사저를 샀는데 장사용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며 "민간 기념관은 지금의 비난을 피하기 위한 용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단에서 이미 기념관 공사계획 견적까지 다 낸 상태로 외부 사업가가 아닌 재단에 맡겼어도 충분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 참전에 후폭풍 장기화될 듯
사저 매각 사실이 뜨거운 감자가 되면서 야권 내부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새로운미래는 지난 5일 사저 앞에서 지도부 공개회의를 열면서 민주당을 향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동교동계 의원들과 재단에서 사저 재매입을 추진한다고는 하지만, 아직 매입자가 다시 사저를 매각할지 여부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재단 측은 오는 12일 매입자와 만담을 추진하고, 그 자리에서 재매각 요청이 받아들여진다면 모금 등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우태경 기자 taek0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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