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료진에 익숙했던 UAE… 고난도 심뇌혈관 수술로 신뢰 쌓아”[M 인터뷰]
서울대병원 위탁운영 계약후
5년간 원장 맡아 성공적 안착
서울대 인지도 낮아 초기 난관
한국형 의료제도 도입 등 성과
현지 의료진도 진료의뢰 보내
K-의료 ‘중동 수요’ 계속될 것
국민성·행정 이해 현지화 필요
“20여년 전만 해도 우리 국민이 수술을 받기 위해 미국·싱가포르 등으로 해외 원정을 떠나곤 했습니다. 자녀교육이 아닌 건강 때문에 ‘기러기 가족’이 되는 일도 비일비재했죠. 하지만 오늘날 한국(K) 의료는 우리 국민을 넘어 세계의 환자들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한국 의료의 변화와 발전을 지켜보는 감회가 새롭습니다.” 최근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가진 성명훈 초대 아랍에미리트(UAE) 왕립 셰이크칼리파 전문병원(UAE왕립병원) 원장(현 땡큐서울의원 원장)은 한국 의료계의 입지 변화를 회상하며 이 같은 소감을 밝혔다. 성 원장은 지난 2014년 서울대병원이 외국 정부와 첫 대규모 위탁 운영 계약을 맺은 UAE왕립병원을 안착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서울대병원 국제사업본부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성 원장은 미국을 비롯해 중동·중국 등 해외 유수 기관들과 협력을 이끌었다. 서울대병원이 미국 스탠퍼드·존스홉킨스, 영국 킹스칼리지, 독일 샤리테 등 글로벌 병원들과 경쟁해 UAE왕립병원 계약을 따내는 데도 기여했다. 성 원장은 이후 2014년부터 2019년까지 5년 연속 UAE왕립병원장을 지내며 의료계 안팎에서 ‘한국 의료 글로벌화의 선봉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성 원장이 첫 의료 진출지로 UAE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성 원장은 당시 중국·몽골·러시아·동남아시아 등 K-의료의 수요가 있는 곳은 많았지만, 그중 한국 의료가 가장 경쟁력이 있는 곳은 중동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당시 UAE는 ‘오일 머니’로 정부 재정은 풍부하지만, 경제력에 비해 의료 발전이 더뎌 의료 인력이나 의료 시스템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UAE 인구 중 900만 명이 외국인이고 100만 명이 UAE 국민인데, 이 중 2만∼3만 명이 해외로 치료를 받으러 나가 한 해 해외로 유출되는 돈이 2조 원 정도 됐죠.” UAE 정부는 초기엔 자국민의 해외 원정 치료 비용을 지원하기도 했지만, 국비 유출이 심해지자 자국 내 의료 강화에 대한 의지를 갖게 됐다. 성 원장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부족한 의료 인프라로 의료 수요가 있으면서도 경제적으로 풍부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중동이 진출지로서 적격한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어 소통이 가능해 따로 해당 국가의 언어를 배우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점, UAE가 여러 중동 국가 중에서도 폐쇄적이지 않고 활발한 분위기의 나라라는 점도 결정에 한몫했다는 것이 성 원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특성이 반대로 병원 운영에 어려움을 주기도 했다. 이미 해외에서 고급 의료를 접해 의료에 대한 기대와 기준이 높아진 UAE 국민은 자국에서 치료받는 것을 꺼렸다. 이미 미국과 유럽 의료진들에 대한 신뢰가 높다 보니, 아시아 진료진도 잘 신뢰하지 않았다. “한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서울대가 제대로 된 대학이 맞냐’는 질문을 듣기도 했죠.”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진료와 수술로 실력을 증명할 수밖에 없었다. UAE 최초로 한국형 의료제도인 ‘Referral System’을 도입하고, 개원 초기부터 고난도 수술에 승부를 걸었다. 심뇌혈관질환을 중심으로 난도 높은 환자의 수술을 연달아 성공시킨 것이 의료진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갔고 대중에도 알려졌다. UAE 현지 의료인들도 치료가 복잡하거나 어려운 환자를 한국 의료진에 의뢰하기 시작했다. 성 원장 재임 시절이던 2016년 11월 UAE왕립병원은 의료기관 국제인증제도 중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미국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CI)’ 인증을 받았다.
낯선 타지이자 의료 불모지에서 환자와 정부를 설득하며 병원을 운영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성 원장은 1970·80년대 중동에 먼저 진출했던 건설 노동자와 기업인들이 발판을 닦아놓은 덕분이라며 공을 돌렸다. “‘트레일블레이저’(개척자)라는 표현을 좋아하는데, 그분들이 그 역할을 해낸 것이죠. 저도 의료진으로서 후배와 동료들에게 ‘항상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자’ ‘누구도 도전하지 않았던 길을 걷는 선두주자가 되자’고 말하곤 했습니다. 젊은 의료진 또한 의료 불모지에 진출하는 트레일블레이저에 도전해봤으면 해요.”
성 원장은 성공적인 K-의료 진출을 위해선 지역을 이해하고 이에 맞는 의료를 제공하는 현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휴대전화를 아무리 잘 만든다 해도 한국어로 된 휴대전화를 미국에 그대로 팔면 팔리지 않잖아요. 의료도 ‘글로벌 스탠더드’와 현지 국가에 맞춰야 합니다. 단순히 진료와 수술을 잘하는 것만이 좋은 의료는 아니에요.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언어·국민성을 이해해야 하고, 행정 처리 방식에 대한 이해도 병행해야 합니다.” 성 원장은 “우리나라보다 의료적으로 발전되지 않은 국가로 가게 되니 단순 의료봉사 정도 수준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해외에서 타국 의료진과 경쟁해 성공하려면 한국 현지 이상의 고급 의료를 제공할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는 의료 면허 제도의 조정도 필요하다. 해외에서 의료활동을 하려면 ‘PQR(Professional Quality Requirement)’이라는 의료 면허가 필요하다. 하지만 면허 발급 기준과 과정에서 국내외 제도가 맞지 않아 종종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나라에는 내과 면허가 있지만, UAE에선 심장내과·소화기내과 등 면허가 분리되어 발급됩니다. UAE에서 심장 수술을 하려면 심장내과 면허가 필요한데, 우리나라에는 그 면허가 있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해외의 면허 제공 방식에 맞춰 의료 면허 발급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정부 협조도 필요하다는 것이 성 원장의 지적이다.
성 원장은 의료 진출이 곧 한국 영토의 확장이라고 본다. 한국 의료가 세계에 진출해 입지를 넓히면 그만큼 한국으로 원정 의료를 오는 환자들이 생겨나고, 한국에 긍정적 인식을 가지는 외국인이 늘어나 세계에서 한국의 입지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의 UAE왕립병원 입찰 운영은 중동까지 한국 영토가 넓어진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한국 의료는 미국·유럽 등 선진국과 수준이 비슷하지만, 비용이 비교적 저렴해 경쟁력이 여전히 높습니다. 중동뿐 아니라 다른 나라로 확장할 기회가 무궁무진한 것이죠,” 성 원장은 특히 중동에서 한국 의료진의 수요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방탄소년단(BTS)·블랙핑크 등 한국 대중문화가 인기를 끌면서 과거보다 한국의 존재감이 훨씬 올라온 상황입니다. 처음 UAE에 갔을 때는 호텔 로비에 한국어 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지금은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현지인도 많습니다. UAE에도 의과대학이 있어서 매년 200명의 의사가 배출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양적·질적으로 의료 인프라와 의료진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중동에 진출한다면 한국인으로서 충분히 역량을 발휘하고 또 즐겁게 존경받으며 일할 수 있을 겁니다. 의사·간호사 등 의료진뿐 아니라 의료기사나 행정직원들도 많이 진출해서 우리 의료계의 역량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한국인 의사 52명·간호사 66명 근무… 암·심장질환 치료 중점
■ UAE 왕립병원은…
성명훈 원장이 초대 병원장을 맡았던 아랍에미리트(UAE) 왕립 셰이크칼리파 전문병원은 두바이에서 북동쪽으로 약 30㎞ 거리의 라스알카이마(Ras Al Khaimah)에 위치한 왕립병원이다. UAE 대통령이 지역사회에 기부한 248병상 규모의 비영리 공공병원이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2014년 8월 UAE 정부와 셰이크칼리파 전문병원 위탁 운영 계약을 맺은 후 의료진을 직접 파견해 병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 운영 10주년을 맞았다. 암·심장질환·신경계질환 등에 중점을 둔 3차 전문병원으로, 규모는 지상 5층·지하 1층에 대지면적 20만㎡, 연 면적 7만2248㎡다. 2019년 서울대병원이 재계약 체결에 성공해 2기가 출범했다. 현재 한국인 의사 52명과 간호사 66명 등 총 176명이 근무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에서 파견된 우수한 의료인력과 전문화된 시스템으로 지금까지 외래환자 10만3600명, 입원환자 5000여 명, 약 2000건의 수술 성과를 거뒀다.
최근 UAE 정부는 3회 연속으로 셰이크칼리파 병원의 위탁운영을 서울대병원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2019년 재계약에서 UAE 정부가 경비 절감 등을 요구하며 협상에 난항을 겪고 UAE 퓨어헬스가 칼리파병원 운영을 자청하고 나서면서 재계약 불발 우려가 확산하기도 했으나, 이번 결정으로 서울대병원이 향후 5년간 더 운영을 맡게 됐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성 원장은 2011년 6월부터 2014년 9월까지 서울대병원 국제사업본부장으로 재임, 3년 동안 미국·중동·중국 등 해외 유수 기관들과 협력을 이루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UAE 전문병원의 수탁운영 국제입찰을 주도해 2014년 한국 최초로 해외 대형병원 운영을 맡는 데 성공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UAE 셰이크칼리파 전문병원장을 5년 연속 역임하며 한국 의료의 글로벌화를 선도했으며 2015년 보건의 날 기념식에선 보건복지부 녹조근정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지난해 서울대 의대 교수에서 정년 퇴임한 후 현재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땡큐서울의원 이비인후과 원장을 맡고 있다.
△1982년 서울대 의대 졸업 △1991년 서울대 의대 대학원 의학박사 수료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2004년 서울대병원 기획조정실장 △2007년 강남센터 원장
조율 기자 joyu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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