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이모님' 100명에 751가구 신청…인기도 많지만 숙제도 많다

권신혁 기자 2024. 8. 9.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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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38만원…월급 절반 이상 쓰나
내년 확대 예정…최저임금도 올라
어른 옷 세탁 되고 침구 세탁 안돼
숙소비 월 40만원…"60만원 남아"
서울시 "월급 최저임금 이하로"
[인천공항=뉴시스] 공항사진기자단 =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인 가사관리사들이 지난 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버스로 이동하고 있다. 2024.08.0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권신혁 이재은 기자 = 내달 3일부터 시작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사업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총 751가구가 신청하며 기대를 모았으나 비용, 업무범위, 처우 등 풀어야 할 숙제들이 산더미라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고용부와 서울시가 주관하는 해당 서비스엔 신청 마감일 6일까지 총 751가구가 몰렸다. 입국한 가사관리사의 숫자가 100명임을 고려하면 경쟁률이 7.5대1에 달하는 것이다. 고용허가제(E-9) 자격으로 입국한 이들은 아이 돌봄 전문 인력으로, 서울시민의 가정에서 관련 업무를 맡게 된다.

다만 기대와 함께 "비싸다", "어디까지 일을 시킬 수 있는지 모르겠다" 등 시작 전부터 이번 서비스를 둘러싼 잡음이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시범사업에 앞서 이미 내년까지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규모를 1200명까지 늘리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이번 사업에 대한 모니터링이 철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소득' 가정 위한 서비스?

우선 '고소득' 부모를 위한 서비스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중·저소득층 가구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시급은 1만3700원이다. 최저임금과 4대보험료가 포함된 금액이다. 1일 4시간, 6시간, 8시간 서비스로 나뉘며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를 가정하면 월 238만원이다. 하루 4시간만 이용한다고 해도 월 119만원이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이용이 활성화된 싱가포르와 홍콩의 경우 이들의 월급은 40만~70만원대다.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점을 감안해도 월등히 저렴하다.

238만원은 일반적인 가구의 소득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수준이다. 지난해 4분기 월평균 가구소득은 502만3719원이었다. 이번 사업 신청 대상은 만 12세 이하의 아동, 또는 출산 예정인 임신부가 있는 서울시민으로,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은 20~30대 부모들이다. 또 한부모, 다자녀 가구 등이 우선적으로 선정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와 더불어 내년도 최저임금이 1만30원까지 인상되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번 서비스의 경우 올해 적용 중인 시간당 9860원을 기준으로 임금이 정해졌다. 시범사업의 기간은 6개월이나, 정부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확대 계획에 따라 내년에도 또다른 가사관리사들이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인상된 최저임금을 포함하면 시범사업보다 비용이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5월20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외국인주민 정책 마스터플랜 발표를 하고 있다. 2024.05.20. photocdj@newsis.com

이에 당초 정책의 목표인 저출생 해결, 국내 가사도우미 인력 감소 등에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무범위 모호…어른 옷 세탁 되고 침구 세탁 안되고

가사관리사 업무범위의 모호함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고용부 및 우리 정부와 필리핀 정부 간 업무협약에 따르면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아이 돌봄 외에도 동거가족에 대한 업무를 맡을 수 있다. 고용부는 "청소, 세탁 등 육아와 관련된 가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동거가족에 대한 가사업무를 부수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부수적'인 가사서비스가 어디까지 의미하는지는 명시된 적 없다.

정부가 선정한 서비스 제공기관인 '대리주부'의 업무 소개 내용을 보면 이들의 업무는 아이 이유식 조리 및 먹이기, 목욕시키기, 기저귀 갈기, 아이 방 청소 등 아이 돌봄 관련 업무가 주를 이루나 어른을 위한 일도 포함된다. 일 6시간 이상 서비스의 경우 어른 옷 세탁·건조, 어른 식기 설거지, 욕실 물청소 등의 업무도 할 수 있다. 반면 어른 음식 조리, 어르신 돌봄, 어른 침구 세탁, 쓰레기 배출 등은 불가능하다.

이 같은 모호함에 고용부는 지난달 16일, 이용계약 체결 시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상세한 업무범위를 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후 고용부는 내부적으로 체크리스트 도입 계획을 철회한 것으로 파악됐다. "내용이 길고 복잡해지고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는 업무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지난달 16일 성명을 내고 "아동 돌봄에 필수적인 노동 외에도 다른 거의 모든 가사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고용주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또 "이주노동자 입장에서는 이를 거부하기 어려워 직무 범위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취약한 위치의 이주노동자에게 부당하게 노동이 강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언어적 소통도 문제로 꼽힌다. 가사관리사들이 영어에 능통하다는 소리에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선 장안의 화제가 됐으나 한국어 소통 능력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인천공항=뉴시스] 공항사진기자단 =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인 가사관리사들이 지난 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버스로 이동하고 있다. 2024.08.06. photo@newsis.com

이번에 입국한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고용허가제 한국어 시험(EPS-TOPIK) 통과자다. 100점 만점 중 55점 이상이면 탈락을 면했다. 고용부와 서울시는 이들이 한국어로 '일정 수준' 소통이 가능하다고 했으나 어린 자녀와의 관계 형성을 위해 그 이상의 수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서울에서 4살 아들을 키우고 있다는 40대 최씨는 "어린 아이일수록 연령에 맞는 발달이 중요한데, 영어보다는 모국어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활비 자비 부담…"손에 쥐는 건 60만원 뿐"

필리핀 가사관리사에 대한 처우와 생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식비, 교통비, 숙소비 등 생활비를 지원 없이 자비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이 머무는 숙소는 서울 강남구 소재로, 월 40만원대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등 이주노동자를 대변하는 이주노동자평등연대는 지난 7일 성명을 내고 숙소 비용을 문제삼았다. 연대는 "애초에 강남3구를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할 때부터 예상되는 문제였다"며 "좁은 공간에 값비싼 비용을 노동자들이 감당하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또 "최저임금으로 주30시간 일한다고 할 때, 150만원 받아서 숙소비, 식비, 교통비, 사회보험료 부담하면 손에 쥐는 건 60~70만원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같이 시범사업을 두고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는 가운데, 고용부는 "서울시, 서비스 제공기관이 협의체를 구성해 운영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주요 민원은 신속히 대응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업무범위 논란에는 "이용자를 대상으로 이용계약 외 지시금지 등 준수사항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또 "이용자가 가사관리사에게 직접 임의로 업무지시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비용 문제와 관련해 서울시는 올해 초 법무부에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임금을 최저임금 이하로 책정하는 방안을 공식적으로 건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간병, 돌봄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을 특정 활동 전문직종(E-7)으로 인정해 '가사사용인'의 형태로 고용하는 것이다. 현행법상 가사사용인에게는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다.

서울시 관계자는 "비자와 관련해 법무부와 실무자 선에서 계속 협의를 하고 있다"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들도 회의 및 협의를 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innovation@newsis.com, lj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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