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의 신간] 역설: 혁신적이지만 파괴적인
‘혁신’에 사로잡혀
놓칠 수밖에 없는 이면
우리의 현재는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생활을 편리하게 만드는 기술이나 사물을 볼 때면 특히 실감한다. 사람들은 "별것이 다 있네" "세상 참 좋아졌어"란 말을 내뱉으며 여기에 '혁신'이란 단어를 덧붙인다. 인류는 그렇게 혁신적 기술과 사물에 기대어 삶의 조건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사회학자 오찬호가 펴낸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은 우리 삶의 변화를 이끄는 혁신적 기술과 사물의 이면을 사회학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혁신'을 키워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기술과 사회, 개인의 관계를 살핀다.
'왜' 그것이 혁신인가, 불편함이 줄었으니 편리함은 늘었을까, 편리해지면서 불편해진 것은 없을까, 혁신 이후 '모두'가 좋아지기만 했을까…. 이 책은 편리함과 안락함 너머 보이지 않는 것들, 쉽게 간과되는 것들에 주목하고, '혁신'을 향한 사회적 열광에 우려할 점은 없는지 짚어본다.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 '사소하지만, 결코 하찮지 않은'에서는 수세식 변기, 피임약, 화장품, 진통제, 플라스틱 등 일상에 유용한 사물들을 불러내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너무도 사소하면 그 당연함에 덮인 문제를 직시하는 것에 둔감해진다"며, 익숙한 편리함에 중독된 세계를 들여다본다.
2부 '은밀하게 위대하게, 일상을 파고든'에서는 획기적이라고 찬사받는 현대적 생활양식의 속내를 살펴본다. "현대인들은 똑같은 구조의 아파트에서 잠을 자고, 어디에나 있는 편의점을 방문하며, 똑똑하다는 스마트폰으로 남들 다 하는 것에만 접속한다. 그리고 이 모든 하루는 CCTV에 찍힌다." 저자는 무덤덤한 일상 속 숨어 있는 사회의 무서운 법칙을 이야기한다.
3부 '엄청나게 빠르고, 믿을 수 없게 편리한'에서는 효율성과 편리함으로 무장한 신기술의 이면을 다룬다. 냉장고 안에 먹을거리를 쌓아 두고, 에어컨으로 더운 여름을 나고, 비행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누비는 우리의 '빠르고 편리한 삶'을 되짚으며, 편의를 위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는 전진'이 마냥 좋은 건지 알아본다.
저자는 "순간적 쾌적함이 주는 말초적 감각에 경도돼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표현만 남발하면, 미래를 위해 반드시 던져야 할 책임 있는 질문들이 사라진다"며, 그 결과로 만들어진 세계는 지극히 '혁신적'인 동시에 극도로 '파괴적'이 될 거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대량 생산·대량 소비가 가능한 '기적의 소재' 플라스틱이 미래 세대가 감당하기 어려운 쓰레기를 배출하는 오염원이 된 상황, 세련돼 보이는 디지털 시스템이 여전히 화석 에너지를 쓰며 환경을 파괴하는 현실 등을 예로 설명한다.
저자는 "세상 좋아졌다"는 말이 놓칠 수밖에 없는 이면이 반드시 존재한다면서, 과거보다 나아졌으니 모든 걸 긍정만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꼬집는다. 아울러 '더 잘사는 시스템과 더 못사는 시스템을 동시에 구축하는' 혁신의 역설을 짚어내며 "혁신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시대, 우리에게 절실한 건 기술의 힘과 속도에 압도되지 않는 자세와 혁신을 성찰하려는 마음"이라고 힘줘 말한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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