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생 참여한 마약 동아리 ‘깐부’, 주범의 정체 드러났다

정락인 객원기자 2024. 8. 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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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제적 후 대규모 대학생 연합 동아리 결성
전용 아지트까지 구비하고 마약 투약 후 집단 성관계도

(시사저널=정락인 객원기자)

마약이 대학가에 깊숙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 일부 대학에 마약 광고 전단지가 배포돼 대학가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당시 명함형 전단지에는 영어로 '영감이 필요한가? 당신을 위한 혁신적인 제품 액상 대마를 준비했다. 완전히 합법적이며 1그램만으로도 50번 이상의 흥분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 전단지를 배포한 40대 남성을 검거했는데, 놀랍게도 그의 배후에는 신종 액상 대마 유통조직이 있었다. 이처럼 마약조직이 대담하게 대학가에 광고 전단지를 뿌린 것은 그만큼 수요자가 있다는 뜻이다. 실제 대검찰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류 사범 2만7611명 중 20대가 30.3%(8368명)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20대 가운데 많은 사람이 대학에 재학 중인 것을 감안하면 대학생 중 상당수가 마약을 손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대학이 끈끈한 선후배 관계로 연결된 공동체 문화인 것을 감안하면 마약이 빠른 속도로 번져갈 수 있다. 여기에다 해마다 많은 해외 유학생까지 밀려들고 있어 대학가에는 그야말로 마약 비상이 걸렸다. 

수백 명의 대학생이 가입한 연합 동아리를 조직해 마약을 유통·투약한 대학생들이 검찰에 적발됐다. 사진은 해당 동아리 회원들의 활동 모습 ⓒ서울 남부지검 제공
수백 명의 대학생이 가입한 연합 동아리를 조직해 마약을 유통·투약한 대학생들이 검찰에 적발됐다. 사진은 해당 동아리의 홍보 문구 ⓒ서울 남부지검 제공

외모·학벌·집안 등 엄격한 면접 후 가입시켜

이런 상황에서 최근 대학생 마약 동아리 조직의 실체가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수도권 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생들이 수백 명 규모의 연합 동아리를 조직해 마약을 유통하거나 투약하고, 집단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 A씨(31)다. 그는 연세대를 졸업한 후 2018년 KAIST 대학원에 입학하고, 2019년 가을학기에 휴학했다. 이후 장기간 복학하지 않아 2020년 자동 제적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2021년 대학생들의 연합 동아리 '깐부'를 결성하고 회장을 맡았다. 겉으로는 '친목'으로 위장했다. A씨는 회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대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SNS를 집중 공략했다. 그는 이곳에 '동아리에 가입하면 고급 호텔과 외제차, 뮤직페스티벌 등을 무료나 저가로 이용할 수 있고, 변호사 무료 상담까지 가능하다'고 홍보했다.

회원은 아무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외모·학벌·집안 등을 기준으로 엄격하게 면접을 보고 소위 '인싸'(잘나가는 대학생)들을 골라 가입시켰다. A씨가 고급 호텔 등에서 호화 파티를 열고, 관련 인증샷을 올리자 대학생들이 몰려들었다. 단기간에 회원이 300명까지 증가하면서 거대 연합 동아리로 몸집을 불렸다. 규모로만 보면 전국에서 두 번째다.

여기에는 서울대·고려대 등 명문대를 포함한 13개 대학 학생들이 가입했다. 회원 중에는 의대·약대 재입학 준비생, 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한 법학적성시험(LEET) 응시자도 다수 포함됐다. A씨는 동아리를 조직화하고 분업화했다. 회장 아래 부회장 여러 명을 두고, 기획부·인사부·디자인부·회계부·홍보부 등으로 세분화했다. 회원들이 가입하면 오리엔테이션 행사를 열어 결속을 다졌다. 

A씨는 2022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동아리 행사에 참여율이 높은 회원들은 별도로 선별해 관리했다. 이들을 따로 만나 친분을 쌓은 후 술을 마시다가 자연스럽게 액상 대마를 권했다. 투약에 응하면 케타민, 사일로시핀(환각 버섯), 필로폰, 합성 대마 등으로 점점 강도를 높여 나갔다. 

이들은 호텔과 클럽, 놀이공원 등을 다니며 집단으로 마약을 투약했다. A씨는 남성 회원들을 특급 호텔 스위트룸에 초청하고, 유흥업소 종업원들을 불러 함께 마약을 투약하고 집단 성관계도 가졌다. 단체로 향정신성의약품인 LSD를 기내 수하물에 넣어 제주나 태국 등으로 반출해 마약을 즐기기도 했다. 해당 동아리 SNS에 올라온 영상에는 마약에 취한 남녀 대학생들이 대낮 도심 한복판에서 춤을 추고, 차 문까지 여닫으며 이상 행동을 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마약은 일명 '던지기 방식'으로 구매했다. 광고를 통해 마약류를 구매하면 판매상들이 미리 마약류를 은닉해둔 장소를 알려주는 마약 판매수법이다. A씨는 이렇게 구매한 마약을 동아리 회원들에게 비싼 가격에 팔아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 그는 마약 투약을 위한 전용 아지트도 운영했다. 서울 구로구의 한 아파트를 임차한 후 이곳에서 수시로 회원들이 모여 마약을 투약하거나 회원들과 성관계를 가졌다. 

동아리 내에서 마약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마약을 찾는 회원들이 늘어나자 A씨는 동아리 간부들을 마약 유통·판매에 끌어들였다. 이들과 공모해 시세의 반값에 마약을 산 후 다른 회원들에게 1개당 15만~20만원의 웃돈을 붙여 팔아 차익을 남겼다. A씨는 지난해에만 암호화폐로 약 1200만원어치의 마약을 구매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것은 관계 당국의 추적이 어려운 현금, 무통장 입금, 자금세탁 거래 등까지 포함하면 빙산의 일각일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 파악되지 않은 구매 내역이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절도·성폭력 등 연이어 범죄행각 벌여

A씨는 동아리 장악력을 높이고 회원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회원들을 소규모로 분리해 정보 공유를 차단하고, 충성도가 높은 회원들은 별도 관리하며 동아리 장악력을 높였다. 또한 마약 투약 장면을 몰래 촬영해 향후 반발을 무마하고 협박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용'으로 확보했다.

수사기관의 수사에도 철저하게 대비했다. 향후 수사나 법적 문제가 발생할 것을 염두에 두고 변호사와 고문 계약을 맺었다. 마약 수사 대비 방법을 알려주는 텔레그램 채널에 가입해 휴대전화 자료 영구 삭제, 모발 탈·염색 등 범행을 은폐하는 수법을 배워 따라 하거나 회원들과도 공유했다. 

A씨는 동아리 결성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범죄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2020년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SNS에 집단 성행위 참가자를 모집하는 글을 게시했다. 참가자들에게는 호텔비와 성인용품 비용 등을 이유로 참가비를 요구했다. 2020년 9월에는 서울 강남의 한 고급 호텔 창고에서 263만원 상당의 와인과 샴페인 등 주류 34병을 절취했다가 적발됐다. 같은 해 10월에는 서울 영등포의 한 대형마트에서 스피커와 유명 브랜드의 여행가방 등 약 35만원어치를 훔쳤다. A씨는 절도 등의 혐의로 재판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기간인 2022년 7월에는 여성 회원인 B씨를 협박한 혐의로 법원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4월에는 동아리에서 만난 여자친구 C씨가 다른 남성 회원과 어울렸다는 이유로 와인병으로 수차례 폭행하고 협박했다가 성폭력 처벌법 위반으로 입건됐다. 또한 같은 달에 마약 매수 대금을 전송한 가상화폐 세탁업자가 자신의 마약 매매·투약 사실을 신고하려 하자 이를 막기 위해 세탁업자가 사업 자금을 빌려가 갚지 않는 것처럼 무고하기도 했다.

12월에는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여자친구와 마약을 투약하고 난동을 부리다가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당시 두 사람은 마약 투약량을 늘리면서 불안과 공포 등을 겪는 '배드트립'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들어서도 범죄행위는 계속됐다. 지난 4월에는 19세 여성을 상대로 나체 사진 등을 찍게 해 이를 SNS에 올리고, 피해자가 연락을 받지 않자 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가 구속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 밖에도 마약에 취해 초등학교 인근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제한속도를 넘겨 난폭운전을 해 총 250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됐다. 

이희동 서울남부지검 1차장이 8월5일 서울남부지검에서 '대학생 연합 동아리를 이용한 대학가 마약 유통조직 사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수상한 거래 내역 포착되면서 발각

이번 사건은 A씨의 단순 마약 투약 혐의에 대한 1심 재판 중 공판검사가 수상한 거래 내역을 포착하면서 드러났다. A씨 통장에 다수의 사람으로부터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금액을 연이어 송금받은 내역이 있었는데, 비정상적인 거래로 의심을 샀던 것이다. 검찰은 A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하고 계좌·가상자산 거래 내역 등을 추적해 마약 동아리의 실체를 확인했다.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부장 남수연)는 마약 매매·투약 혐의로 이미 구속 중인 A씨를 연합 동아리를 통해 마약을 유통한 혐의 등으로 추가 기소하고, 임원진과 회원 등 대학생 3명을 구속했으며 2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단순히 투약만 한 대학생 8명은 중독 여부와 재범 위험성 등을 고려해 법무부·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가 운영하는 '사법-치료-재활' 연계 모델에 참여하는 조건부 기소 유예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이들에 대해 동아리에서 만나 마약을 구매해 최대 십수 차례 투약한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마약을 염두에 두고 동아리를 결성한 게 아니라 호기심에 마약을 투약한 것이 마약에 손대게 된 계기라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의 발표와 달리 보는 시각도 있다. 동아리 결성 당시 KAIST 대학원 제적생이었던 A씨가 아무런 목적 없이 친목 목적의 연합 동아리를 만들었을 리 없다는 것이다. A씨가 이전부터 다수의 범죄행각을 벌였으며, SNS에서 집단 성행위 참가자들을 모집한 점 등을 감안하면 애당초 범죄 목적의 동아리를 기획했을 가능성이 더 컸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측은 "피의자들에게 엄정한 형이 선고되도록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하고 대학생들이 맞춤형 재활·치료를 통해 마약중독을 이겨내고 사회에 신속하게 복귀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마약조직이 대학가에 침투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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