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유재명이 이선균을 떠올리는 방법

손정빈 기자 2024. 8. 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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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행복의 나라'에서 전상두 역 맡아
전두환 모티브 절제·압축 된 연기 펼쳐
"중요한 건 내 상상력…차갑게 연기해"
"머리 분장 전혀 부담 없어 보람찬 일"
이선균 유작 중 하나 마지막 영화이기도
"선균이와 함께한 시간들 참 행복했다"
"이선균 연기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하길"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결국은 상상력입니다. 자료를 찾아서 공부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걸 안 하게 되더라고요. 실제 인물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어요. 하지만 대본 속에 그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집중하는 게 더 맞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니까 제 연기가 자유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배우 유재명(51)이 영화 '행복의 나라'(8월14일 공개)에서 연기한 '전상두'는 전두환이 모티브가 된 캐릭터다. 전상두를 연기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유재명은 일단 거절했다. 10·26사태와 12·12쿠데타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다루는 이 작품은 대통령 암살 공범 중 한 명인 '박태주'와 그를 변호하는 '정인후'가 이끌어간다. 물론 전상두 역시 핵심 캐릭터로서 극 전체를 장악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그 암울한 시대를 상징하듯 거대한 벽처럼 거기 존재하는 듯한 인물이기도 하다. "전상두는 마치 안갯속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분량도 많지 않기 때문에 캐릭터를 빌드업 할 여지가 없어 보였죠. 게다가 실존 인물이니까. 이 인물을 표현할 동력이 없었달까요."

그런데 유재명은 결국 전상두를 연기하기로 했다. 대본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전상두의 눈빛, 자세, 태도 같은 것들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대본을 다시 읽어봐도 여전히 이 인물은 막연했지만, 어쩐지 해 볼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막연한 직감이었죠."


전두환(전상두)을 연기하는 유재명의 방식은 이전에 같은 인물을 연기한 다른 배우들의 방법과 명확히 구분된다. 가장 최근 전두환을 맡은 건 '서울의 봄'의 황정민. 황정민은 전두환(전두광)을 불 같은 인물로 담았다. 황정민 뿐만 아니라 전두환을 연기한 대부분의 배우는 이 인물을 최대한 뜨겁게 표현하려고 했다. 하지만 유재명은 정반대로 갔다. 유재명의 전두환은 얼음 같이 차갑다. 밖으로 폭발하는 대신 안으로 잠식하는 듯하다.

"모든 배우는 자기 역할이 강력하길 원합니다. 뜨겁게 표현하길 원해요. 정말이지 폭발적이구나, 라는 연기를 꿈꿔요. 당연히 저도 그렇습니다. 전상두를 정말 강하게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분명히 있었죠. 하지만 전상두를 이렇게 차갑게 연기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봤습니다. 작품 전체를 봐야 했으니까요. 나 혼자 연기하는 게 아니잖아요."

'행복의 나라'에서 유재명의 연기는 절제돼 있고 압축적이다. 그럼에도 전상두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그 시대를 장악하고 상징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게 안으로 감추는데도 이 캐릭터가 등장할 때마다 에너지가 들끓기 때문일 게다. 유재명은 "유사한 작업에 대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드라마 '비밀의 숲'(2017)에서 연기한 '이창준'을 언급했다. "이창준 역시 무언가를 다분히 품고 있는 인물이었죠. 그의 유서가 공개되기 전까지 그가 완전히 드러나면 안 됐으니까요. 그 인물도 많은 걸 함축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연극을 할 때도 이런 식의 연기를 한 적이 있어요."


연기도 연기이지만 '행복의 나라'에서 유재명을 보고 관객이 가장 관심을 가질 건 아마 그의 헤어스타일일 것이다. 그 역시 전두환(전상두)의 그 머리를 구현했다. 삭발한 뒤에 머리를 붙이는 방식이었다. 다만 유재명은 분장에 대한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당연히 해야 하는 거니까요. 머리는 자라니까 상관 없었습니다. 평소엔 모자 쓰고 다녀서 괜찮았는데, 목욕탕에 가면 좀 힘들긴 했어요.(웃음) 머리에 가발 라인을 그려놨으니까요. 어쨌든 보람찬 일이었습니다.(웃음)"

'행복의 나라' 얘기를 하면서 이선균 얘기를 안 할 순 없었다. '행복의 나라'는 '탈출:프로젝트 사일런스'와 함께 이선균 유작 중 하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개되는 이선균 영화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유재명은 이선균의 마지막 영화를 함께했고, 이선균이 출연하려다가 하차하게 된 시리즈 '노 웨이 아웃'에도 나왔다. 그는 "이제 이선균이라는 배우를 안타깝게만 보지 말고, 이선균이 얼마나 좋은 배우였는지, 그가 얼마나 멋진 배우였는지에 초점을 맞춰줬으면 한다"고 했다.

"참 행복했습니다. 이 영화를 하면서 선균이, 정석이와 함께 형제처럼 지냈어요. 촬영하고, 한 잔 하면서 삶과 영화에 대해 얘기했고요. 선균이가 '형, 연기 너무 좋더라'라고 하면 저는 '야, 그냥 술이나 마셔'라고 했고요. 제가 선균이한테 '연기 너무 좋더라'라고 하면 선균이는 말 없이 웃고 있었죠. 그렇게 지냈습니다. 이제는 이선균이라는 배우, 그의 연기에 대해 더 많이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유재명에게 이선균이 어떤 연기를 한 배우였는지 말해달라고 했다. 그는 이선균을 "동물적인 배우, 선봉대 같은 배우, 거침 없이 치고 나가는 배우"라고 했다. "저랑 스타일이 완전히 다릅니다. 전 섬세함과 예민함을 무기로 디테일을 추구한다면, 이선균은 동물적이죠. 굵은 연기를 했습니다. 작품을 앞장서서 이끌어 갈 수 있는 배우였죠. 선봉대였습니다. 시원하고 거침 없이 자신의 연기를 치고 나가는 느낌이랄까요." 유재명은 "말하고 보니 정말 그렇다. 정말 그런 것 같다"며 아주 잠깐 이선균을 생각하는 듯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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