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입양한인 김추자 씨 "세 자녀 기르며 친모 생각했어요"

유영규 기자 2024. 8. 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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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79년 9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노르웨이 오슬로의 한 가정에 입양됐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입양된 3살 많은 양언니와 함께 노르웨이 방식의 교육을 받으며 자라 입양인으로서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면서도 "종종 무언가로부터 단절됐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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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 입양 한인 김추자(왼쪽에서 두 번째) 씨와 가족

"지금은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지만, 세 자녀 모두 매우 어려운 임신과 출산 과정을 거쳤습니다. 아이들을 기르면서 친모가 생각났어요."

노르웨이 입양 한인 마리트 트라이스네스(한국명 김추자·47) 씨는 오늘(9일) 아동권리보장원 입양인지원팀에 보낸 뿌리 찾기 사연에서 "10개월 동안 나를 품어준 엄마와 그를 둘러싼 환경을 떠올렸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입양 기록에 따르면 김 씨는 1977년 9월 7일 경기 포천시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듬해 10월 포천군청을 통해 양주 영아일시보호소에 맡겨졌고, 약 8개월 동안 위탁 가정에서 지냈습니다.

노르웨이 입양 한인 김추자 씨의 어릴 적 모습

이후 1979년 9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노르웨이 오슬로의 한 가정에 입양됐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입양된 3살 많은 양언니와 함께 노르웨이 방식의 교육을 받으며 자라 입양인으로서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면서도 "종종 무언가로부터 단절됐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호주 멜버른과 미국 보스턴 등에서 거주하면서 커뮤니케이션과 투어리즘, PR 등을 전공한 김 씨는 아시아계 이민 2세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깊게 고민했습니다.

그는 2010년 세계한인입양인협회(IKAA)가 서울에서 개최한 세계한인입양인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고, 다른 입양인들과 함께 한국의 역사와 문화 등을 배우면서 친가족 찾기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김 씨는 "엄마가 되는 것은 축복이지만 동시에 큰 노력이 필요하다"며 "입양되기 전 한국에 있었던 2년이라는 소중한 시간 동안 내가 어디에서 누구와 있었는지, 친가족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아동권리보장원 입양인지원팀 제공, 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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