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 팬들도 뮤지컬에 눈떴다…김희재 "무대로 효도하는 마음" [인터뷰+]
'모차르트!' 이어 두 번째 작품
"단 한 순간도 허투루 안 해…부족했던 점 보완"
"트라우마 지닌 코세이, 힘들었던 시절 대입"
"관람 예절 공부하는 팬들 감사, 작품 계속 선보이고파"
트로트 가수의 뮤지컬 진출. 단순히 활동 영역을 넓힌 것이라고 보기엔 불러온 변화가 컸다. 2030세대의 문화로 일컬어지던 뮤지컬 시장에 4050 누님들이 떴다. 뮤지컬 '모차르트!'에 이어 '4월은 너의 거짓말'로 관객과 만나고 있는 김희재의 공연 날에는 팬클럽 관광버스를 발견할 수 있다. 로비의 풍경도 평소와는 사뭇 다르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꽃미소'를 띄우며 설렘 가득한 대화를 나눈다. 영락없는 '소녀 팬'의 모습이다.
지난 8일 서울 모처에서 만난 김희재는 "내 팬분들이 보통 40~80대 어르신들이다. 살면서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 90% 이상이었다. 처음에는 응원차 방문했다가 뮤지컬의 매력에 빠진 분들이 많다. '희재님 덕분에 이런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돼 행복하다'는 말을 보고 뿌듯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모차르트!'로 뮤지컬계에 데뷔한 김희재는 두 번째 작품 '4월은 너의 거짓말'로 계속해 무대에 오르고 있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은 일본 만화가 아라카와 나오시의 작품이 원작이며, 앞서 애니메이션과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김희재는 "이 작품을 몰랐다"면서도 "'모차르트!'를 보고 뮤지컬 무대에 있는 날 좋아해 주신 분들이 많았다. 팬분들이 뿌듯하다고 해준 작품이 '모차르트!'였다.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면 그게 팬분들께 효도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팬심에 보답해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컸는데 좋은 기회에 작품이 들어왔다"고 출연 계기를 밝혔다.
대극장 뮤지컬 '모차르트!'로 데뷔한 데 이어 두 번째 작품은 국내 초연작이다. 뮤지컬 배우로서 빠르게 다양한 경험을 해나가는 중이었다. 김희재는 "요즘 뮤지컬이 너무 재밌다"며 웃었다.
그는 "'모차르트!'를 할 때는 무대에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심적으로 매 무대가 전쟁터였다. 매일 도망가고 싶고, 무섭고, 두렵고, 오늘의 내가 주어진 무대를 잘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근데 그 힘든 트레이닝을 거치고 나니 요즘은 편하게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내 감정을 연기나 노래로 표현할 때 관객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알게 됐다. '뮤지컬 화법으로 더 해도 되겠는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면 할수록 자신감이 생기는 게 뮤지컬인 것 같다. 노래와 연기를 같이 하면서 내 감정을 100%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노래와 연기가 합쳐지니 감정 표현이 배가 된다"고 덧붙였다.
대학에서 실용음악과를 전공한 김희재는 성악·뮤지컬을 담당한 교수 아래서 배우며 뮤지컬을 꾸준히 공부해왔다. 본격적으로 뮤지컬에 도전하게 되면서 그간 공부해 온 발성을 쓸 수 있게 됐다면서도 끊임없이 레슨을 받으며 연습에 매진했다는 그였다.
김희재는 "뮤지컬을 하면서 단 한 순간도 허투루 한 적이 없다. 진짜 최선을 다했다. 맡은 것에 책임감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해 레슨도 많이 받았다. 하나를 맡게 되면 장인정신처럼 나의 작품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한다. 난 아직도 매회 내 모습을 촬영한다. 결국 관객들이 평가해줘야 하는 거지 않냐"고 생각을 밝혔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은 불운의 신동 피아니스트 소년과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소녀가 만나 음악으로 교감하며 변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음악 유망주들이 소중한 사람과의 만남과 이별을 겪으며 자신의 재능을 꽃피워간다는 청춘 스토리물이다. 뮤지컬계 거장 프랭크 와일드혼이 전곡 작곡해 특유의 감수성을 고교생 감성에 녹여냈다.
김희재는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소년이었지만 어머니의 죽음 후 트라우마로 인해 피아노를 더 이상 치지 못하다가 카오리를 만나 다시 음악의 세계로 빠져드는 아리마 코세이 역을 맡았다.
김희재는 원작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에 코세이라는 캐릭터를 알아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는 "'모차르트'는 이미 많은 선배님이 닦아 놓은 길이 있어서 흉내 낼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초연은 없는 걸 창조해야 하는 거지 않냐. 작품이 이어진다면 우리가 모티프가 되니 잘 남겨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코세이는 천재 피아니스트고, 나는 노래를 하는 아이였다. 실용음악과는 클래식과 분위기가 다르긴 하지만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은 비슷하다고 본다. 고등학생 때부터 다른 사람의 노래를 부르면서 아픔이 치유되는 게 있었는데, 코세이도 결국엔 피아노로 음악을 함으로써 트라우마가 치유된다"고 설명했다.
'트로트 신동' 소리를 들으며 사랑만 받고 자랐던 자신이 위기에 부딪혔던 시기를 떠올리기도 했다. 김희재는 "변성기가 오기 시작하면서 13~14살의 귀여웠던 맛으로 봤던 아이가 없어진 거다. 점점 목소리가 굵어지고 키도 크고 수염도 나니까 날 아무도 찾지 않는 시절이 오더라. 20대 초반까지 5~7년가량 그런 시기를 겪었다. 가수가 내 길이 아닌가 하고 진지하게 고민한 때"라고 털어놨다.
계속 고민에 갇혀있었다면 트라우마가 됐겠지만, 이를 잘 극복해서 다시 무대에 섰다는 점이 코세이의 서사와 맞닿는 부분이라고 김희재는 말했다. 그러면서 "나의 힘들었던 시절을 대입해서 연기해 보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전작 '모차르트!'에서는 록이 가미된 고음 위주의 넘버를 주로 선보였다면, 이번에는 감성적이고 부드러운 가창이 많다. 김희재는 "'모차르트!'와 달리 노래할 때 조금 더 편안한 감성이 있다. 트라우마를 표현하고 음악과 화해하면서 감동을 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 또 19살 고등학생의 역할이라서 스킬, 보컬적으로 다양한 걸 보여주기보다는 깨끗하게 이 아이의 감정을 전달하자는 마음으로 노래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뮤지컬배우로서 성장하고 있고, 나아가야 할 길 역시 길게 뻗어있는 김희재였다.
김희재는 "두 번째 작품이라 전에 부족했다고 생각한 부분을 보완하려고 노력했다. 그전에는 정해진 틀에 날 가둬놓고 그 안에서 표현하고자 했다면 지금은 그걸 조금 깬 것 같다.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노래함에 있어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마치 엘리자벳이 '난 자유를 원해'를 부르는 것처럼 요즘 무대에서 행복하게 노래하고 연기한다"며 웃었다.
뮤지컬배우 김희재를 힘 나게 하는 데에는 팬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컸다.
김희재는 "우리 팬분들은 누나들이라 한 곡 끝나면 '와~' 호응하는 것에 익숙하다. 근데 나를 생각해서 공부를 많이 했더라. 팬들이 무대 밑에서 예의를 지키지 않고 행동했을 때 배우가 욕을 먹으니 매너를 잘 지켜야 한다면서 팬카페에 뮤지컬 관람 예절을 1번부터 10번까지 십계명처럼 적어뒀더라. 나 욕 안 먹이고 싶어서 본인들이 공부한 거다. 정말 감사하고 감동했다"고 전했다.
끝으로 김희재는 "뮤지컬 관련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고 싶다. 작품으로 계속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잘해야 하는 거고, 열심히 해야 하는 거다. 대중분들이 '김희재가 하는 뮤지컬 보고 싶다'가 되어야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그렇게 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은 오는 25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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