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앙리의 굳은 믿음에 골’로 보답하는 ‘제자’ 마테타… 유종의 미 거둘까?[최규섭의 청축탁축(清蹴濁蹴)]

우충원 2024. 8. 9.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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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士爲知己者死 ·사위지기자사].” ‘중국 역사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전한 시대의 역사가인 사마천이 저술한 『사기』 「자객 열전」 편에 나오는 말이다. 흔히, 전장에 나가는 장수가 자신을 중용한 주군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마음가짐을 밝힐 때 쓰이곤 한다. 중국 삼국 시대에, 촉나라 재상 제갈량이 북벌을 위해 출병하면서 후주(後主) 유선에게 올린 출사표는 이런 충정이 가장 잘 드러난 명문으로 지금도 회자한다.

진리는 세월의 흐름과 관계없이 모든 시대에 존재한다. 물론, 분야를 가리지도 않는다. 당연히, 스포츠에서도 감독과 선수 사이의 굳은 신뢰를 바탕으로 이룬 한마음에서 빚어진 성과가 두드러질 때 곧잘 원용하는 비유다.

2024 파리 올림픽 축구에서도 이를 뚜렷하게 엿볼 수 있는 대표적 실례가 나왔다. 프랑스 올림픽대표팀을 이끄는 티에리 앙리 감독(46)과 선봉장으로 맹활약하는 와일드카드 장-필리프 마테타(27)가 그 주인공이다. 스승의 한결같은 믿음과 제자의 부응은 40년 만의 패권 탈환을 꿈꾸는 프랑스의 야망을 현실화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승 후보국의 최전방 공격수로서 걸맞지 않게 ‘침묵의 늪’에 빠졌던 마테타는 언제 그랬냐는 양 용솟음치는 기세로 프랑스를 정상 문턱까지 끌어올렸다. 고비마다 골을 터뜨리며 3경기 연속 득점으로 프랑스의 5연승 가도에 주춧돌이 됐다. 대회 초반 부진에도 흔들리지 않고 중용한 스승의 믿음에 되살아나 무서운 득점력을 뽐내는 제자의 몸놀림에, 앙리 감독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구태여 감추려 하지 않는다.


부진한 제자에게 채찍 대신 당근… 마테타, 3경기 연속 결승골로 부응

“마테타가 있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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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이하 현지 일자) 이집트와 치른 준결승전에서, 힘겹게 역전승(3-1)으로 접전을 마무리한 뒤 앙리 감독이 밝힌 첫마디다. 연장전까지 120분간의 대격전을 승리로 매조지한 승장은 “해방감을 느낀다. 마테타와 함께 꿈을 꾸고 있다. 그리고 그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결승 진출의 안도감과 함께 느낀 행복의 감정을 조금 더 맛보고 싶은 심정을 가능케 한 마테타의 공을 제일로 꼽는 헌사기도 했다.

그만큼 마테타는 빛나는 활약을 펼쳐 보이고 있다. 그룹 스테이지(A) 마지막 뉴질랜드전(7월 30일·3-1 승)부터 8강 아르헨티나전(8월 2일·1-0 승)과 4강 이집트전까지 3경기 연속 득점의 ‘신바람 행진’이다. 3경기에서 4골을 뽑아내며 프랑스 총득점(11골)의 ⅓을 넘어섰다. 결승 진출의 일등 공신이라 아니할 수 없는 빼어난 활약상이다.

단순한 양적 수확만이 돋보이는 게 아니다. 질적 결실은 그야말로 황금빛이라 할 만하다. 4골 모두 뜻깊은 득점이다.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이집트전 승리 모두 마테타의 골에서 빚어졌다. 곧, 3경기에서 나온 결승골 모두가 마테타의 작품이다. 남은 한 골도 결승골 이상의 의미가 깃들었다. 이집트전에서 패색이 짙던 후반 38분에 터진 기사회생의 동점골(1-1)이었다(표 참조). 그야말로 100%에 가까운 순도로 표출된 골들이었다.

사실, 대회 초반은 마테타에게 위기였다. 그룹 스테이지 2라운드가 소화될 때까지 단 한 골도 뽑지 못하고 그늘 속에 묻혀 있었다. 세계 최고의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격전이 펼쳐지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서도 뛰어난 득점력을 과시했던 마테타의 몸놀림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EPL 2023-2024시즌, 16골 5어시스트를 결실하며 팀(크리스털 팰리스) 내 공격 공헌도 1위를 기록한 골잡이의 면모를 찾기 힘들었다. 한국이 자랑하는 골잡이인 손흥민(32·토트넘 홋스퍼·17골)에 이어 득점 레이스 공동 9위에 자리한 마테타의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와일드카드로 발탁했을 만큼 마테타에게 기대가 컸던 앙리 감독으로서도 당혹감을 감추기 힘들었을 듯싶다. 그러나 앙리 감독은 마테타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았다. 아니, 채찍보다는 오히려 당근을 내밀었다. 뉴질랜드전에서, 앙리 감독은 마테타를 주장으로 내세웠다. 앞서 열린 2경기인 미국전(7월 24일·3-0 승)과 기니전(7월 27일·1-0 승)에서 주장으로 뛴, 역시 와일드카드인 알렉상드리 라카제트를 경고 관리 차원에서 쉬게 하고 마테타에게 중책을 맡긴 용단이었다.

“마테타는 엄청난 인물이다. 마테타가 팀에 가져다주는 느낌은 매우 긍정적이다. 유쾌하고 모든 사람과 농담하는 걸 좋아한다.”

마테타를 주장으로 기용한 데 대한 앙리 감독의 배경 설명이다. 마테타의 모범적 태도와 열정이 주장 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다는 말이다.

“앙리 감독에게 지도받는 건 영광이다. 지금 올림픽대표팀에서 배우고 있지만 더 가르침을 받고 싶다. 앙리 감독은 모든 선수가 최선을 다해 줄 걸 원한다. 그에 맞춰 끊임없이 노력하려 한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잘하는 선수가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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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타의 이런 다짐은 어린 시절부터 가꿔 온 소망에서 비롯했다. 어렸을 때 가슴속에 깊이 품어 온 우상이 곧 앙리 감독이기 때문이다.

이제, 앙리 감독과 마테타 사이에 형성된 끈끈한 신뢰와 정은 유종의 미를 거둘 마지막 한 점만을 남기고 있다. 9일 오후 6시(한국 시각 10일 오전 1시),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스페인과 펼칠최후의 결전인 결승전에 새삼 눈길이 가는 하나의 이유기도 하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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