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 천년의 숲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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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숲에 다녀왔다.
다시 숲을 걷는다.
천년의 숲에서도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가 거기에 있었다.
천년의 숲은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지켜낸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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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숲에 다녀왔다. 녹록지 않은 여정이었다. 일본 남단의 도시 가고시마까지 비행기로 한 시간 반, 거기에서 쾌속선을 타고 두 시간 가량 나가야 야쿠시마(屋久島)에 이른다. 포구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새벽 버스로 한 시간 정도 이동, 자연사박물관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삼십 분 남짓 국립공원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다.
하지만 길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목재 운반용으로 사용했던 광차 레일을 따라 두 시간을 걸어 갈림길에 이르면, 산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숲의 영역이다. 가파르고 좁은 길이 한참이나 이어진다. 숨이 차고, 무릎이 뻐근하고,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숲이 깊어질수록 나무들의 몸집이 커진다. 한 아름에 품을 수 있는 나무는 드물다. 몇 사람이 손을 잡아야 겨우 한 그루를 안을 수 있다. 아니, 안아주는 건 사람이 아니다. 현지인들은 이곳을 신들의 땅으로 여긴다고 했다. 사람들은 먼 길을 찾아와, 가늠하기 힘든 긴 세월을 살아온 나무들의 품에 안긴다.
산길에 지칠 무렵 휴식 공간이 나타난다. 삼천 년 된 나무의 그루터기. 속이 비어 서너 명은 넉넉히 들어가는데, 작은 사당이 마련되어 있다. 그 앞에서는 국적과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손을 모은다.
이곳에서는 죽음도 끝이 아니다. 잘려나간 뒤에도 나름의 쓰임새를 가진다. 야쿠시마로 이주해서 시를 썼던 야마오 산세이(山尾三省)는 '여기에 사는 즐거움'에서 말했다. 신(神)은 삼라만상으로서 하늘 구석에도 있지만 이 지상에도 가득 차 있다고. 쓰러진 나무를 덮은 이끼를 쓰다듬으며, 비로소 그 문장을 받아들인다.
다시 숲을 걷는다. 길은 갈수록 험해지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주저앉기 직전, 거짓말처럼 '성스러운 노인'이 나타난다. 조몬스기, 일본의 신석기시대인 조몬기부터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천년의 숲에서도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가 거기에 있었다. 반환점처럼.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처럼.
야쿠시마는 제법 알려진 고장이지만, 관광지라기에는 편의 시설이 열악하다. 숙소는 대부분 민박이며, 어두워지면 갈 곳이 마땅치 않고, 그 흔한 편의점마저 찾기 어렵다. 그렇지만 숲길에서 여러 여행객을 만났다. 일본 할머니와 인사를 나눴고, 미국 대학생들과 악수했고, 대만 신혼부부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여기에만 있는 숲을 보려고 찾아왔다고.
모든 여행지가 관광지나 휴양지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안락보다 불편이 사람들을 이끌고, 개발보다 보존이 가치를 만들며, 남다른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지난 세기 야쿠시마의 모습은 지금과 달랐다. 근대화를 명목으로 벌목 사업이 진행되었고, 1960년대에는 기계를 이용한 대규모 벌채가 이루어졌다. 등산로 입구부터 이어진 광차 레일도 당시 사용되던 것이다. 그 모습이 이어졌다면 야쿠시마는 여느 지역과 다를 바 없었으리라.
하지만 주민들은 숲을 지키는 운동을 전개했다. 이에 공감한 야마오 산세이가 섬으로 이주해 지역의 가치를 알리는 글을 썼다. 조몬스기 발견을 계기로 1970년대에 벌목이 중단되었고 보호 정책이 마련되었다. 천년의 숲은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지켜낸 결과물이다. 그러하기에 지역을 대표하는 유산이기도 하다.
낯선 숲에서 우리를 생각했다. 지자체마다 관광지를 개발하지만, 정체성을 반영한 경우는 드물다. 이미 인기 얻은 콘텐츠를 흉내 내기에 바쁘다. 비슷비슷한 벽화마을, 출렁다리, 케이블카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이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왜 우리 지역을 찾아오는가? 최수웅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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