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가족 잃은 유족에게 “회사도 힘들다”

신다은 기자 2024. 8. 9.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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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화재 때 빠른 합의 ‘성과’ 내세운 노무법인, 아리셀 참사에도 등장… 유족에 ‘문자폭탄’ 날리면서 이름도 틀려
4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청에 설치된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추모 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영정과 위패를 안치한 후 슬퍼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소재 일차전지 업체인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024.07.04 연합뉴스

“오늘까지 3개 유가족과 합의 완료하고 합의금 지급도 완료했습니다. 아리셀은 전 직원 48명, 매출 48억으로 경영 사정이 매우 어려운 중소기업입니다. (…) 회사측 임직원들은 유가족과 합의를 위한 합의자금을 모으는 데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카카오톡 원문 표현)

2024년 7월26일 오후 4시5분. 아리셀 화재 참사 유가족 박아무개씨의 휴대전화에 카카오톡 알림이 울렸다. 민·형사 합의를 하자며 집요하게 연락하는 사쪽 변호사의 메시지다. 답장이 없어도 연락은 계속 온다. 오늘 몇 가족이 합의했고, 지금도 협의하고 있다는 ‘안내’다.

박씨는 6월24일 리튬 배터리 공장 아리셀에서 난 화재 참사로 아내를 잃었다. 사고 이후 가해 기업이 숨어버리면서 사고 원인에 대한 설명은 물론 아내의 근로계약서조차 받지 못했다. 사쪽은 유가족과 대화를 피한 채 합의서만 내밀고 있다. 자신의 편의대로 계산기를 두드린, 아내의 ‘목숨값’을 담은 합의서다.

아리셀 쪽 변호사가 유가족에게 보낸 합의 안내 카카오톡 메시지. 가해 기업 아리셀의 자금 사정이 어렵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있다. 아리셀 대책위 제공

3명의 변호사와 노무사는 번갈아가며 박씨를 비롯한 유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거절하고 무시해도 소용없었다. 참다못한 가족 한 명이 ‘연락하지 말라는데 왜 자꾸 문자 보내냐’며 화를 냈다. 전화기 너머에서 사쪽 노무사가 답했다.

“제가 뭘 보냈는지 기억도 안 나서요. 하여튼 조심하겠습니다.”

자녀 없는 고인 가족에게 “학자금 지원”

불법행위 가해자는 통상 재판을 받기에 앞서 피해자에게 민·형사 합의를 제안한다. 피해자가 당한 피해는 돌이킬 수 없지만 금전으로나마 성의를 보여 원만히 화해한다는 취지다. 특히 형사 합의의 경우 피해자에게 용서받았다는 의미로 여겨져, 가해자 형량이 깎이는 핵심 사유가 된다.

하지만 이런 제안이 때로는 2차 가해로 변질돼 피해자를 옥죈다. 민·형사 합의를 빌미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아리셀 소속 사쪽 변호사와 노무사 3명도 일방적으로 계산한 합의서를 내밀며 ‘특정 날짜 이내에 합의하면 더 준다’는 ‘신속 합의금’까지 제시했다. 그때까지 합의되지 않으면 법원 공탁도 검토한다고 했다. 참사 가해기업이 합의 내용과 시한을 먼저 정하고 협상을 끌고 가는 것이다.

2020년 경기도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화재 참사(48명 사상) 때 빠른 합의를 성과로 내세웠던 전혜선 열린노무법인 노무사와 그의 아들 박혁 변호사, 열린노무법인 김동욱 노무사가 전면에 나섰다. 이들은 카카오톡 등으로 유가족 당사자에게 집요하게 연락했다. 이 과정에서 희생자 이름과 성별을 잘못 적거나, 다른 희생자 가족에게 보내야 할 서류를 잘못 보내는 일도 있었다. 자녀가 없는 고인에게 “자녀 학자금을 배려하겠다”는 제안도 했다.

아리셀 쪽 변호사가 다른 희생자의 합의안을 유가족에게 잘못 전달한 모습. 아리셀 대책위 제공

사쪽 합의안에서 특히 논란이 된 건 외국인 희생자 차별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배상할 때는 피해자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벌었을 임금(일실수입)을 집계한다. 그런데 아리셀 쪽은 희생자 국적에 따라 임금에 차등을 뒀다. 한국인 희생자에 대해선 국내 건설노동자(보통인부) 평균임금으로 산정한 반면, 중국동포 희생자에 대해선 중국 길림성 평균임금을 기준 삼은 것이다. 중국 길림성 임금은 국내 임금의 5분의 1 수준이다.

한국에서 일하다 죽었는데 중국 임금 기준

희생자들은 모두 한국에서 일하다 한국에서 사고로 죽었다. 그런데 갑자기 길림성 임금이 나온 이유가 뭘까. 회사가 ‘(본국 강제송환 등으로) 비자가 연장되지 않는 경우’를 전제했기 때문이다. 재외동포(F-4) 비자는 법적으로 단순노무가 불가능한데, 고인이 아리셀에서 포장 업무를 했으니 당국에 적발됐다면 비자 연장이 안 됐을 거란 주장이다. 방문취업(H-2) 비자 역시 국내 체류 기간이 평균 6년7개월 수준이므로, 그 기간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은 귀국했다고 가정하고 중국 임금으로 계산했다.

이는 ‘장래 출국이 예정된 외국인’에 한해 피해자 일실수입을 출신국 기준으로 집계한다는 1998년 대법원 판례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계산법이 외국인 차별이라고 판단, 재판부가 채택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서울중앙지법은 2022년 음주운전 사고로 숨진 재외동포에 대해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65살 정년까지 한국에 머물며 일감을 구했을 것’(2022가단5059390)이라고 봐 국내 임금을 적용했다. 또 2016년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방문취업자에 대해서도 ‘귀국 후 재입국해 일하다가 만 60살 이후 재외동포 비자를 신청했을 것’(2016나35134)이라며 국내 임금을 적용했다. 즉, 사고가 없었더라면 피해자들이 한국에 계속 머물며 생계를 이어갔을 거라 본 것이다.

전 노무사 등이 나선 이천 화재 참사 때도 외국인 희생자들은 비자를 이유로 내국인보다 낮은 임금을 받았다. 그들의 유족은 국내 임금 기준으로 다시 산정해달라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외국인 목숨값 차별 언제까지

“생명 존중 사회로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외국인 피해자의 생명 가치를 어떻게 존중할 거냐, 그 문제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도 전체 산재 사망자의 10%가 외국인인데, 앞으로 (외국인이) 더 늘면 20~30% 이상 차지할 거예요. 그때도 이렇게 할 거냐는 거죠. 가해자에게 책임을 지우고 고인에게 사과하는 일을 마치 손해사정하듯 계산해선 안 됩니다. 피해자와 유가족을 존중할 방안을 마련해야죠.” 이천 화재 참사 때 피해자 쪽을 대리한 법무법인 마중의 김용준 변호사가 말했다.

단순노무를 시킨 회사가 그 일을 한 노동자더러 불법 운운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들에게 포장 일을 맡긴 건 다른 누구도 아닌 회사다. 일을 시켜놓고 ‘그 일은 불법이니 임금도 낮게 받으라’는 건 ‘금반언의 원칙’(자기 언행과 모순되는 행위를 할 수 없음)에도 어긋난다.” 아리셀 화재 참사 피해자 법률대리인인 신하나 변호사가 말했다.

희생자 중에 길림성 출신만 있는 건 아니다. 중국 허베이성 출신도 있고, 라오스 출신도 있다. 사쪽은 이들에게도 일괄적으로 길림성 기준 임금을 제안했다. 유족들이 “죽어서까지 차별하냐”며 화를 내자 사쪽은 국내 기준으로 합의안을 다시 써 왔다. 대신 신속 합의금 등은 다 뺐다. 금액은 전보다 더 낮아졌다.

“아리셀은 사고에 관한 유가족의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고 오직 돈만 이야기하고 있다. 그 태도는 결국 뭐냐면, 희생자들이 살아 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사람이 아닌 비용으로만 취급하겠단 거다. 그런 합의에는 유가족들이 도저히 응할 수 없다.” 또 다른 아리셀 화재 참사 피해자 법률대리인인 손익찬 변호사가 말했다.

죽어서도 사람 아닌 ‘비용’ 취급

사쪽이 비전문가인 유가족에게 직접 접촉하면서 정작 법률 지식은 사쪽에 유리한 식으로만 안내한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사쪽은 산재 사고사망자에 대한 위자료를 일괄 1억원으로 안내했다. 서울중앙지법 교통사고·산재 전담재판부의 2015년 판단기준에 근거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듬해인 2016년 교통사고와 대형 재난사고 등 중대 사건에 대해선 위자료를 2~6배 상향할 수 있다는 안(‘불법행위 유형별 적정한 위자료 산정 방안’)을 함께 내놓았다. 아리셀 화재 참사가 대형 재난사고로 인정된다면, 위자료는 1억원에서 4억원으로 대폭 는다. 회사 계산법엔 이런 사실이 다 빠져 있다.

‘회사 과실을 100%로 산정했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전 노무사 등은 사고에 대한 피해자 쪽 과실은 전혀 집계하지 않았다고 유가족들에게 강조했다. 그러나 애초에 회사의 위험물 관리 실패로 일어난 화재라 피해자 과실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단 반론도 있다. 산재 유족을 여럿 대리한 권영국 변호사는 “이 사건에 피해자 과실이 뭐가 있나. 비상구를 못 찾아 죽은 걸 과실로 삼을 거냐. 법원 가도 인정되지 않을 주장을 마치 선의를 베푼 것처럼 설명하는 건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민변은 사쪽 노무사와 변호사 3명을 변호사법 위반으로 고발할 예정이다. 이런 지적들에 대해 한겨레21은 사쪽 법률대리인 3명 모두에게 자세한 질의서를 보냈으나 이들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2024년 6월27일 박순관 아리셀 대표와 임원들이 경기도 화성시 모두누림센터에서 아리셀 공장 화재 희생자 유가족을 만나 사과했다. 그러나 이날 이후 현재까지 아리셀 대책위의 집단 교섭에 응하지 않고 개별 합의만 종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빠 장례식장 와서 자기들 힘들단 얘기…”

가족을 잃고 취약한 상태에 놓인 유가족에게 사쪽이 합의를 무리하게 종용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아직 장례도 치르지 않은 빈소에 들이닥쳐 합의서를 내밀거나 피해자 고통보다 가해자 사정을 앞세우는 2차 가해가 빈번하다. 2020년 산재 사망자 유가족 단체 ‘다시는’이 펴낸 유가족 안내서를 보면, “원청회사 관계자가 아빠 장례식장에 와서 자기들 힘들단 얘기를 했다” “용역업체 사장이 ‘애는 이미 죽었으니 빨리 합의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근로복지공단 쪽에서 ‘간 놈은 간 놈이고 노후대책 하시라’고 했다”는 사례가 생생하게 적혀 있다.

현재 아리셀 유가족들의 급선무는 합의금 조율이 아니다. 고인이 어떤 근무 형태로 일했는지, 회사가 평소 어떻게 위험물을 관리했고 왜 사고로 이어졌다고 보는지 등 아리셀이 가해 기업으로서 책임지고 해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7월5일 회사와의 1차 교섭에서 유족이 요구한 것도 소방교육 내역과 소속 노동자 수 등 기초 자료였다. 사쪽이 전혀 준비해오지 않아 대화는 30분 만에 끝났다. 유가족은 아직까지 고인의 근로계약서와 임금명세서도 받지 못했다.

“피해자들은 참사에 대해 알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사쪽과 첫 교섭 때도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우리 가족들이 어떻게 일했는지, 산업안전교육은 제대로 됐는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은 답하지 않고 개별적 보상만을, 정확한 근거도 없이 요구한다는 게 너무 화가 납니다.” 김태윤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말했다.

아직 근로계약서와 임금명세서도 못 받아

유가족이 대화 상대를 잃고 방황하는 걸 국가는 방관만 하고 있다. 유가족과 대화를 피하는 아리셀에 대해 노동부는 “회사를 (대화하라고) 강제할 수 없다”고 했다. 노동부와 경기도는 고인의 정식 급여명세서가 아니라 하청업체가 임의로 작성한 임금대장을 유가족들에게 안내·배포했다가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경찰은 7월초 유가족 대상 수사 브리핑을 열고도 대다수 질의에 ‘수사 중’이라고만 답했다. 노동부는 아예 수사 브리핑을 열지도 않았다. 피해자의 질문은 누구의 답변도 받지 못한 채 흩어진다.

오는 8월11일은 아리셀 참사 49재가 열리는 날이다. 유가족들은 회사와 국가의 책임 있는 답변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예정이다. “회사는 시간이 자기들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을 것이므로 시간은 우리 편이다.” 신하나 변호사가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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