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매매’ HFT, 주가 폭락 범인 아니지만 급등락 많이 만든다

강정아 기자 2024. 8. 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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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급락 원인으로 알고리즘 매매 거론
기계적 매도 물량, 시장에 대거 쏟아진 탓
“고빈도 거래인 HFT는 시장 영향 제한적”
다만 알고리즘 매매 늘수록 V자 패턴 자주 발생
서킷브레이커·사이드카 효과도 떨어질 수 있어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등 주요국 증시가 급등락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그 범인으로 알고리즘 매매가 지목되고 있다. 알고리즘 매매는 최근 들어 활발히 이용되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High Frequency Trading·HFT)가 증시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HFT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HFT가 증시 변동성을 키우는 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알고리즘 매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 커질수록 증시가 짧은 시간 동안 급등락하는 패턴이 심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본다.

HFT는 2008년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처음 나온 매매 방식이다. 사람의 개입 없이 정해진 알고리즘을 이용해 1/1000초 단위 시간의 거래를 실행한다. 정해진 기준에 따라 주식을 기존보다 더 빠르게 사고팔며 이익을 얻자, 헤지펀드 등 기관 중심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초고속 매매를 위한 컴퓨터 및 인프라가 개발되면서 국내외 시장에서 HFT가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9일 외신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 시장 내 주식 거래 중 대략 50~70%가 알고리즘 매매로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알고리즘 매매는 미리 규칙을 설정하면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자동으로 이뤄지는 거래를 뜻한다.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과 맞물리며 상장지수펀드(ETF) 등 지수 추종 상품, 선물, 옵션 등에서 다양하게 쓰인다.

지난 5일 코스피 지수와 코스닥 지수가 8.77%, 11.30%씩 내리고 일본 닛케이225 지수가 12.40% 급락하는 등 아시아 증시 대폭락 현상과 관련해 증권가는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경기 침체, 일본의 금리 인상으로 엔 캐리 트레이드(싼 이자로 엔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국가에 투자하는 방법) 청산 우려 등이 주가 하락의 원인으로 꼽히지만, 이러한 요소만으로 투자자들이 글로벌 주식을 동반 투매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알고리즘 매매가 범인이라는 주장은 이 때문에 나왔다. 다른 알고리즘 매매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매매하는 HFT 방식이 증시 변동성을 단기간 급속히 키웠다는 것이다.

올해 2월 한국증권학회지에 실린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의 데이트레이딩 성과 분석’에 따르면 변동성이 데이트레이딩(당일 매매) 전략의 투자성과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HFT가 변동성을 키우고 시장을 교란할 수 있어 금융당국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발 경기 침체 공포에 국내 양대 지수가 나란히 8% 이상 급락하면서 코스닥 시장과 코스닥 시장에 동반 서킷브레이커(CB) 1단계가 발동된 5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종가가 표시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전문가들은 HFT 방식 자체가 증시 변동성을 키운다고 보기엔 어렵다고 분석했다. 한 AI 투자일임회사 알고리즘 개발 담당자는 “레버리지성 투자 자금이 (경기 침체 우려 등) 손절 신호가 나오면서 풀리자 시장에 충격을 주고 다른 기관 자금들이 연쇄적으로 쏟아진 것이 지난 5일 급락의 원인”이라며 “HFT는 단기적인 가격의 불균형을 찾아 매매한 뒤 수익을 먹는 알고리즘 전략이기에 시장 변동성에 영향을 주긴 힘들다”고 말했다.

다만 알고리즘 매매 자체의 비중이 커지면서 짧은 시간 동안 주가가 오르내리는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악재에 갑작스럽게 하락하다가도 저점이라고 판단되는 시점에 급상승하는 V자 반등이 전보다 더 빈번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예전에는 증시에 어떤 악재가 나타나면 여러 날에 걸쳐 주가가 하락하곤 했다”면서 “지금은 조정받을 때 짧은 시간 한 번에 다 반영하고, 다시 매수세가 커지는 패턴을 자주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사람은 주가가 크게 오르내릴 때 일정 수준에서 거래를 멈추지만, 알고리즘 매매는 주어진 조건에 따라 지체 없이 매수·매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알고리즘 매매 때문에 주가 급등락을 제어하는 ‘서킷브레이커(매매 일시 중단)’와 ‘사이드카(프로그램매매 호가 일시효력정지)’는 효력이 점점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서킷브레이커와 사이드카는 과도한 증시 변동을 막기 위해 1987년 미국의 ‘블랙 먼데이’ 사태 이후 도입됐다. 한 핀테크 스타트업 대표는 “서킷브레이커와 사이드카는 잠시 손을 멈추자는 것인데, 일시적으로 거래가 멈췄다고 해서 급등락을 촉발한 특정 요인이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증시 거래가 재개되면 알고리즘은 다시 조건에 따라 대규모 매수·매도 물량을 쏟아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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