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우진과 명승부 엘리슨 “날 키운 것도, 날 울린 것도 한국 양궁”
18년 가까이 이기식 감독 동행 “기술·지식 전수해준 분”
”대회 나가면 한국 선수만 신경 쓴다”
목표는 4년 뒤 LA올림픽… “김우진과 리턴 매치 기대”
지난 4일 열린 파리 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 결승은 숨 막히는 명승부였다. 미국 대표 브레이디 엘리슨(36)은 한국 김우진(32)과 5세트에서 나란히 연속 세 번 10점을 꽂았다. 이어 한 발로 승패가 갈리는 슛오프에서 10점 과녁을 맞혔지만 4.9㎜ 차로 패배했다. 은·동메달만 네 개를 수확해 온 그가 종이 한 장 차이로 금메달을 놓쳤지만 경기 직후 김우진의 손을 들어 활짝 웃는 얼굴로 축하해 주고, 기자회견에서도 덕담과 칭찬을 이어갔다. 이런 모습에 반한 한국인들이 그를 ‘엘리슨 형’ ‘미국 양궁 아재’라고 부르며 열광했고, 그의 소셜미디어엔 한국어 응원 댓글이 줄지어 달리고 있다.
미국 몬태나주 집으로 돌아간 엘리슨은 7일 본지와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이 보내준 압도적 관심이 나와 우리 가족에게 큰 기쁨이자 영광이었다”며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소셜미디어 응원 글을 하나하나 읽어볼 것”이라고 했다. 4년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출전이 목표인 엘리슨은 “김우진과 리턴 매치를 고대하고 있다”고 했다.
- 슛오프까지 가는 접전 속 무슨 생각을 했나.
“내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김우진과 15년 넘게 같은 경기장에 있었고, 너무 많이 상대해 봤기 때문에 게임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고 있었다. 김우진을 의식하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화살을 쏘려 했다. 나만의 게임을 펼쳤고, 마지막 활을 당기는 순간 10점임을 직감했다. 단지 4.9㎜가 모자라 패배했을 뿐이다. 거의 성공할 뻔했다.”
- 아쉬움이 컸을 텐데 손을 들어 축하해 준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내가 꿈꿔온 대결을 펼쳤다. 후회나 실망이 전혀 남지 않는 게임이었다. 우리는 항상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다. 나도 김우진의 선전을 기원했고,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순간으로 돌아가도 손을 활짝 들어줄 것 같다.”
- 한국 양궁이 왜 강하다고 보나.
“나는 대회에 나가면 오로지 한국 선수만 신경 쓴다.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을 통틀어 아마 나와 한국 선수가 시상대에 올라간 적이 70~80%는 될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선수로는 오진혁(2020 도쿄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을 꼽겠다. 한국 양궁은 미국의 농구, 미식축구 같은 체계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어려서부터 가장 우수한 자원을 선발해 장학금을 줘가며 육성하고, 10년 넘게 하루에 화살을 500발씩 쏘게 한다. 나는 원래 컴파운드(날개 위아래 끝부분에 도르래가 달려 있는 기계식 활)로 양궁에 입문했다. 2006년이 돼서야 올림픽 종목인 리커브(사람 힘만으로 조준하고 시위를 당기는 전통 활)를 시작했는데, 한국으로 치면 대학생이 돼서야 시작한 것이니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2005년까지 양궁이 올림픽 정식 종목인 줄도 몰랐다.”
양궁이 비인기 종목인 미국에서 전업 선수로 살기 어렵다. 엘리슨 같은 간판 선수조차 아내와 의류 사업 등을 하고 있다.
- 한국 출신 이기식 감독과 맺은 인연도 화제다.
“2006년 미국 양궁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18년 가까이 팀을 이끈 이기식 감독님이 내 ‘영혼의 코치’였다. 밑바닥부터 키워주신 분이고 지금 이렇게 잘할 수 있게 된 것도 그분 덕이다. 그전까지는 어떻게 활을 쏠지 별생각이 없었는데 감독님이 기술·지식을 전수해 줬을 뿐만 아니라 내가 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을 도와주셨다.”
이 감독은 집안 사정으로 이번 올림픽에 동행하지 못했다. 엘리슨은 경기 후 미국 대표팀 자체 축하 행사에서 “감독님은 꼬맹이였던 나를 올림픽 메달을 다섯 개나 딸 수 있도록 키워주셨다”며 “이 메달은 그를 위한 것이고, 어서 빨리 뵙고 싶다”고 말했다.
- 한국과는 어떤 인연이 있나.
“세계선수권 참석차 서울, 인천, 광주 등을 방문한 적이 있다. 거리는 깨끗하고 사람들은 친절했다. 매우 절제된 한국 문화가 인상적이었다. 한국인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모습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당신들 음식이 정말 훌륭한데 나는 바비큐를 좋아한다. 우리 집안에 6·25 참전 용사는 없지만, 지난해 한미 동맹이 70주년을 맞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쏟아진 한국인들의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명예로운 일이다. 내년에 한국을 찾을 예정인데 많은 사람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활 쏠 때 당신 얼굴과 영화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얼굴을 나란히 붙인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까지 유행하고 있다.
“나도 그 밈들을 봤다. 아마도 2015년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에 출연한 디카프리오의 모습과 내가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수염도 덥수룩하고 관리가 잘 안 된 모습 말이다.”
19세기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디캐프리오는 시종일관 면도·이발을 하지 않은 덥수룩한 모습으로 연기해 화제가 됐고,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받았다.
- 선수로서 다음 목표는.
“앞으로 4년 계속 활을 쏴서 4년 뒤 LA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다. 김우진과 리턴 매치가 이뤄진다면 정말 정말 멋진 대결을 펼칠 수 있을 것 같다. 내 홈구장에서 열리는 게임이니 그(김우진)가 이번에는 내가 이기도록 해주지 않겠나(웃음).”
◇ 브레이디 엘리슨
1988년 미국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넓적다리뼈 조직이 죽는 레그-칼베-페르테스병을 앓아 걸을 때 보호 장구를 착용해야 했다. 컴파운드로 양궁에 입문해 2006년 올림픽 종목인 리커브로 전향했다. 첫 올림픽이었던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 단체전 9위, 개인전 27위로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2012년 런던(단체전 은)·2016년 리우데자네이루(단체전 은·개인전 동)에서 잇따라 획득하며 미국 대표 양궁 선수로 입지를 굳혔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개인전 은메달과 혼성 단체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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