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체온, 당신의 살결, 당신의 나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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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는 같은 종에 속한 타인에게 다가가 무리를 이루었기 때문에 동물 중 가장 강력한 종이 되었다.
개개인의 능력으로 따지면 인간은 개별 동물에 비해 하잘것없다.
다른 개체들과 뭉쳐 사회를 이루었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동물을 제치고 살아남았다.
타인과 부대끼는 기나긴 낮시간 동안, 우리는 세상에 성행위 같은 게 있는지 생각해본 적도 없다는 듯 깔끔하고 세련된 표정을 지으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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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 이응
2024 젊은작가상 수록
김멜라 지음 l 문학동네(2024)
호모 사피엔스는 같은 종에 속한 타인에게 다가가 무리를 이루었기 때문에 동물 중 가장 강력한 종이 되었다. 개개인의 능력으로 따지면 인간은 개별 동물에 비해 하잘것없다. 사자처럼 세지 않고, 새처럼 날 수 없으며, 개처럼 냄새를 식별하지 못한다. 다른 개체들과 뭉쳐 사회를 이루었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동물을 제치고 살아남았다. 일인자가 되어 지구상의 동식물을 멋대로 좌지우지하는 유일한 종이 되었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성행위일 것이다. 몸과 몸의 합일을 이루는 이 행위에는 신성한 오라가 붙기도 하고, 동물적이고 저급한 짓이라는 폄하가 붙기도 한다. 이 행위가 아우르는 분야는 넓고 깊다. 우리는 매일 성에 대해 생각하지만, 겉으로 드러내 말하지 않는다. 타인과 부대끼는 기나긴 낮시간 동안, 우리는 세상에 성행위 같은 게 있는지 생각해본 적도 없다는 듯 깔끔하고 세련된 표정을 지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성은 있다. 성욕, 성행위는 있다. 그것은 매 순간 도처에 존재한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는 이에서 비롯된다. 생물로서의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성, 그것을 보이지 않게 만들려 노력하는 인간, 그러나 없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타오르는 인간의 성적 욕망.
‘이응 이응’은 인간과 인간의 접촉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 속에서 사람들은 타인과 직접적으로 성관계를 맺지 않는다. ‘이응’이라는 기계를 통해 혼자 성적 욕망을 해소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직접 접촉을 금기시하는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기계의 힘을 빌려 환상 속에서 각자 욕망을 해결한다. 그 과정에 실물로서의 타인은 없다. 땀 흘리고, 구취를 풍기고, 특유의 체취를 끼얹는 타인이 끼어들지 않는 깔끔한 욕망 해소 방식이다.
먼 미래에 반드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이 시나리오를 따라가다 보면 의문이 든다. 이런 기계가 인간들끼리 서로 멀어지게 만들까? 서로 어루만지면서 가까워지고, 가까워지면서 다시 어루만지는 순환적 관계 방식이 사라지면 인간은 영원히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될까? 아니면, 이런 기계를 통해 외로움과 욕망을 해결하기에 인간은 외로움을 딛고 자존감을 유지하게 될까? 최소한의 자기 사랑 욕구를 해결했기에 비로소 타인에게 조금씩 다가갈 수 있게 될까?
이른바 ‘정상가족’이라 일컬어지는 형태의 가족이 나오지 않는 것도 소설을 읽는 흥미 포인트다. 얼핏 보면 황당한 상상화처럼 보이는 이야기 속에는 조부모와 손녀로 이루어진 가정, 인간과 반려동물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접촉이라는 서사가 주도면밀하게 녹아 있다. ‘헝겊 원숭이’라는 심리학 실험이 있다. 똑같이 먹이를 줘도 헝겊으로 덮인 인형에게 먹이를 받은 원숭이가 철사로 만들어진 인형에게 먹이를 받은 원숭이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양상을 보여준다는 결과를 보여준 실험이다. 이 실험이 보여주듯, 살아 있는 생물에게 포근한 접촉은 중요하다. 다른 이의 체온과 살결을 느끼는 것은 한 사람의 심리적 안정감에 큰 역할을 한다. 소설은 타인과의 거리를 지키는 것이 지상 최고의 가치처럼 되어가는 쿨한 현시대에 물음표를 던진다. 생경한 상징과 다양한 문명 장치를 동원한 영리하고 강력한 물음표를.
정아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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