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우 못 사는 방식으로 잘 살 거야” [책&생각]

임인택 기자 2024. 8. 9.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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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등단 작가 예소연의 첫 단행본은 지난해 장편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허블)이다.

오랜 전쟁 후 살아남은 할머니 용병들을 고양이 로봇이 돕고, 할머니들은 대다수 고양이 로봇을 착취 중인 인간 도시에 맞선다는 에스에프(SF). 이번 출간된 첫 소설집 '사랑과 결함'이 첫 장편의 지은이가 쓴 것인가, 두 작품의 상이함에, 묻지 않을 수 없는데 아스라이 무언가 겹친다.

맹지와 석주(나)는 동네 체육관에서 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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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소설집 ‘사랑과 결함’을 펴낸 예소연 작가. 사진 ⓒ목충헌, 문학동네 제공

사랑과 결함
예소연 지음 l 문학동네 l 1만6500원

2021년 등단 작가 예소연의 첫 단행본은 지난해 장편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허블)이다. 오랜 전쟁 후 살아남은 할머니 용병들을 고양이 로봇이 돕고, 할머니들은 대다수 고양이 로봇을 착취 중인 인간 도시에 맞선다는 에스에프(SF). 이번 출간된 첫 소설집 ‘사랑과 결함’이 첫 장편의 지은이가 쓴 것인가, 두 작품의 상이함에, 묻지 않을 수 없는데 아스라이 무언가 겹친다. 장편의 첫 문장은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도망쳐야 한다”다. 이를 정언명령처럼 따르던 할머니 용병에게 고양이 로봇 치즈는 한없이 헌신한다. 왜 인간에게 잘해주지? 치즈는 말한다. “그게 바로 치즈의 오류지.” ‘결함’이 있긴 해도 결합하고 사랑하는 일에 대한 믿음. 불신과 배반의 인간 세계에서 퇴색되지 않는 ‘고양이의 마음’을 작가는 붙든다. 소설집을 여는 첫 작품 ‘우리 철봉 하자’의 주인공 맹지에 대한 석주의 마음이 또한 그것이다.

맹지와 석주(나)는 동네 체육관에서 친해진다. 외모가 비슷했고 젬병의 운동 자세도 닮았다. 관장은 ‘나’보고 한 달간 맹지라 불렀다. 가까이 사니 같이 운동하자 둘이 주고받은 연락처는, 가까우니까 자주 밥 먹고 술 먹고 피시방 가는 데 쓰인다. 비정규직 회사 잘린 석주가 살 빼라는 남친 때문에 운동했던 맹지에게 말하자면 ‘고양이의 마음’을 품게 되는 과정은 다소 비약적이다. 더 위태로운 건 석주 아닌가. 위약과 위악이 뒤섞인 석주만이 명료하다. 맹지와의 다툼이 느닷없고, 동시에 맹지에게 헌신하며 맹지의 삶에 “침범”해 둘의 삶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욕망 또한 느닷없다. 말하자니 ‘석주의 오류’다. ‘보호받는 느낌’은커녕 “온 세상이 나를 은근히 따돌리는 느낌”에 휩싸인 석주는 “사랑에 있어서는” 자신을 “함부로 대하고 선을 넘어버”린다고 고백한다. 오류를 감당하며 옹근 둘(의 관계)만이 단단해지는 과정에 또한 느닷없이 함께 딛고 매달리는 철봉이 있다.

장편에서의 ‘불신’은 단편집에서 가족 안으로부터 집중 발현된다. 할머니가, 아빠가 죽기를 바라는 아이들(‘아주 사소한 시절’ 등)을 포함해 “가족은 믿는 게 아니라”는 고모의 말(표제작)도 돋을새김되거니와, 작품에서 보여지는 유년이 곧 미래 석주‘들’의 과거일지 모른다. 친구 아빠의 투신을 목격한 초등 5학년 때부터 전개되는 성장기 3부작(‘그 얼굴을 마주하고’ 등)에서 주인공 희조의 위약하면서도 위악한 두 마음은 섬뜩하게 때로 묘연히 교차한다. 오류의 시작인가. 무엇을 감당하고, 무엇과 대적해야 하는가. 모순된 상황조차 위트와 건조체로 예소연은 밀어붙이고, 작중 인물은 마침내 말한다. “나는 존나 못 사는 방식으로 잘 살 거”라고. 후기에 “슬픔에 빠지고 나서야 타인의 슬픔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걸… 후회하는 요즘”이라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모난 마음을 주워 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작가는 썼다. 한창 소설집을 엮던 지난 6월 초 “사랑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과 함께.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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