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공화국 살려낼 ‘자유 시민’에게 바치는 책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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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공화정 말기의 철학자·정치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의무론'이 고대 로마 문학 전문가 김남우 정암학당 연구원의 번역을 거쳐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의 하나로 나왔다.
키케로가 상정하는 의무론의 주인공은 공화정을 떠받치는 '자유 시민'이다.
키케로는 훌륭한 자유 시민들이 힘을 모아 무너져가는 공화국을 되살리기를 열망하며 이 책을 썼다고 옮긴이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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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론
자유 시민의 윤리 준칙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지음, 김남우 옮김 l 열린책들 l 2만2000원
로마 공화정 말기의 철학자·정치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의무론’이 고대 로마 문학 전문가 김남우 정암학당 연구원의 번역을 거쳐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의 하나로 나왔다. 앞서 올해 2월에 ‘정암고전총서 키케로 전집’의 하나로 출간된 임성진 정암학당 연구원의 번역본과 비교하며 함께 읽어볼 만하다.
임성진본이 ‘의무론’의 원전 자구 하나하나에 충실한 번역본이라면, 김남우본은 “키케로를 오랫동안 읽어온” 연구자로서 “그 경험에 기대어 읽히는 대로” 우리말로 옮겼다. 말의 뜻을 일대일로 전달하기보다는 우리말 문장의 자연스러움에 더 신경을 썼다는 얘기다. “그래서 사전적 어의와 풀이를 넘어서는 선택도 있는데, 다만 이로써 라티움어(라틴어)의 우리말 번역어를 좀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겠다고 역자는 믿었다.”
‘의무론’은 말년의 키케로가 아테네에 유학하고 있던 아들 마르쿠스 키케로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자식이 훌륭한 시민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드러난다. 키케로가 이 책을 쓰던 시기는 카이사르가 암살당하고 로마 정국이 극심한 혼란을 겪던 기원전 44년이었다. 키케로는 카이사르의 정치적 후계자 안토니우스의 독재를 막으려고 분투하던 중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 한편으로는 공화주의자로서 정치적 의무를 다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자로서 그 ‘의무’(officum)를 성찰하는 책을 쓴 셈이다.
‘의무론’은 서양 역사에서 키케로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저작으로 꼽힌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에 이 저작은 널리 읽혔고, 특히 14세기 이후 르네상스 시기에 그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발명된 뒤 ‘성경’ 다음으로 찍은 책이 ‘의무론’이었다.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는 1501년 주석을 붙여 ‘의무론’ 편집본을 출판했고, 에라스뮈스의 동시대인 마키아벨리는 ‘의무론’의 주장에 반대해 ‘군주론’을 썼다. ‘의무론’은 18세기까지도 지식인들의 필독서였다. 애덤 스미스는 ‘의무론’의 영향을 받아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을 썼다. 칸트의 ‘정언명령’에도 ‘의무론’의 의 자취는 짙게 남았다.
키케로는 이 책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빌려온 네 가지 덕목, 곧 지혜·용기(긍지)·절제·정의를 의무의 관점에서 살핀다. 키케로가 상정하는 의무론의 주인공은 공화정을 떠받치는 ‘자유 시민’이다. 선량하고 공정한 자유 시민은 지혜·용기·절제·정의를 핵심으로 하는 ‘훌륭함’(honestum)의 덕목을 실천한다. 훌륭한 사람은 훌륭한 태도를 지니고 훌륭한 처신을 하며 훌륭한 선택을 한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태도와 훌륭한 처신과 훌륭한 선택이 훌륭한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키케로는 훌륭함과 ‘이득’(유익)의 관계도 이야기한다. 훌륭함과 이득이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키케로는 훌륭한 것이야말로 유익한 것이므로, 그 둘은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말한다. 둘이 충돌한다면 그것은 ‘겉으로만 유익해 보이는 것’을 추구한 결과다. 겉으로만 유익해 보이는 것은 실제로는 유익하지도 않고 훌륭하지도 않다. 훌륭한 행위만이 참으로 유익하다.
그런 훌륭함을 알아보고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참된 자유 시민이다. 자유 시민은 독재를 용납하지 않는다. 독재자는 법을 익사시키고 자유를 질식시키기 때문이다. 독재자는 공화국을 파괴한다. 키케로는 훌륭한 자유 시민들이 힘을 모아 무너져가는 공화국을 되살리기를 열망하며 이 책을 썼다고 옮긴이는 말한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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