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손녀가 할아버지를 키운 성장기

정의길 기자 2024. 8. 9.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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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의 시간 아이와 백석동천을 걷다 곽병찬 지음 l 나남 l 1만9000원 세상을 향해 날카롭고 뜨거운 비판을 쏟아냈던 그에게 어느 날 "새 한 마리 울지 않는 불모의 황무지를 온통 '신생(新生)'의 숲으로" 바꾼 날이 왔다.

그에게 찾아온 아이는 기자 현업에서 멀어져 인생과 세월에 대한 감상에 빠지던 그의 일상을 단번에 봄날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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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의 시간

아이와 백석동천을 걷다

곽병찬 지음 l 나남 l 1만9000원

세상을 향해 날카롭고 뜨거운 비판을 쏟아냈던 그에게 어느 날 “새 한 마리 울지 않는 불모의 황무지를 온통 ‘신생(新生)’의 숲으로” 바꾼 날이 왔다. 그에게 찾아온 아이는 기자 현업에서 멀어져 인생과 세월에 대한 감상에 빠지던 그의 일상을 단번에 봄날로 바꾸었다.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세검정 계곡 일대를 거닐다가 제안받은 ‘할배의 육아일기’로 시작됐으나, ‘아이가 할배를 키운 성장기’가 됐다.

할배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지나 50년의 세월 동안 화석이 됐던 세검정 동천의 자연과 일상을, “아이의 손에 이끌려 유년의 그 신비한 숲을 산책”하게 됐다. “처음엔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게 ‘나’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끌고 다니는 것은 아이였고 나는 그의 손이 끄는 대로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비로소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로 존중받고, 누구보다도 더 사랑받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기자 현업 시절에도 유려했던 필자의 문체에 아이의 호기심에 바탕한 따뜻한 관찰과 긍정이 추가됐다. 필자가 그리는 세검정 일대의 백사실, 정자 앞 반석, 자하슈퍼와 개울, 정다리 밑 바위, 평창동 49번지 느티나무골은 단순히 새롭게 발견하는 주변의 자연 예찬의 대상이 아니다. 손녀가 가르쳐 준 인생의 새로운 경험을 얻는 장소로 거듭났다. 손녀가 학교에 입학하기까지 4년의 빛나고 따뜻한 시간이 69편의 에세이에 수채화처럼 그려졌다. 경쟁과 수월성 교육에 지쳐가는 아이와 부모, 조부모 모두에게 “공감과 감수성, 호기심과 명랑, 열린 마음과 관용”의 유년을 선사한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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