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장악 첨병’ 전락한 이진숙 방통위…통신 업무는 마비 상태
위원장 임명과 자격 여부를 놓고 여야 간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방송통신위원회 운영도 파행을 빚고 있다. ‘방송 장악’을 염두에 둔 대통령실의 무리한 임명권 행사 탓에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주요 정책 현안이 공전하고 있다는 뜻이다. 통신 업계와 이용자 등 이해관계자들도 불만과 우려를 토로한다.
방송 정책 외에도 방통위가 연내 풀어내려 한 주요 정책 과제는 한둘이 아니다. 방통위가 지난 3월 내놓은 ‘2024년 핵심 추진 과제’ 자료를 보면, 여기에 해당하는 주요 현안 과제는 18개에 이른다. 대부분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이거나 이용자 보호와 관련된 시급한 과제들이다.
무엇보다 인공지능 산업 발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소비자 보호 정책 과제들이 답보 상태에 있다. ‘인공지능 서비스 이용자 보호법’ 제정과 인공지능 생성물 표시제 도입, 이용자의 설명요구권 보장 방안 등이 대표적이다. 산업 발전에 소비자 보호가 뒤따르지 못하면서 빚어진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방안들이다. 법안 발의는커녕 지난달 19일에서야 ‘인공지능서비스 이용자 보호 민관협의회’가 출범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협의체 회의도 단 한차례만 열렸으며, 당시 회의도 이상인 위원장 직무대행이 참석했다. 김홍일 위원장 사퇴로 위원장 자리가 공석이었기 때문이다. 제정안은 개정안에 견줘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 필요성이 크고 갈등 조정이 진행된다. 어느 부처든 제정안을 입법할 땐 해당 부처의 수장이 적극 관여하는 게 일반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에 따른 이용자 피해 대응 가이드라인 제정’, 인공지능 서비스 피해구제를 위한 ‘온라인피해365센터 내 전담신고 창구 설치’와 같은 정책도 모두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 외에도 방통위가 올해 6월 말까지 기존 4시간인 플랫폼 서비스 장애 고지 기준시간을 2시간 이상으로 단축하겠다거나 악성문자 필터링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한 약속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역시 방통위원장 관련 논란이 뜨겁다 보니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방통위 소관 개정 법안 처리 여부도 불투명하다. 이용자의 권리 침해를 막기 위한 정보통신망법 개정, 온라인분쟁조정위원회 신설, 마약·도박, 저작권 침해 등 민생과 직결된 주요 불법·유해정보의 신속한 삭제·차단을 위한 법령 개정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통신 업계에서도 한숨 소리가 나온다. 방통위가 ‘산업 진흥’ 정책도 입안·집행하는 기구이기 때문이다. 통신업계에선 ‘단통법’(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전면 폐지 이후 후속 조처가 없다는 데 불만이 크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통신사들의 보조금 집행을) 담합이라 보고 제재에 나섰는데 이걸 장려했던 방통위가 위원장도 없다 보니 목소리를 내주지도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런 답보 상태는 더욱 장기화될 태세다. 새로 임명된 이진숙 위원장도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터라 해당 의결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오기까지 직무가 정지됐기 때문이다. 회의 소집 최소인원을 채우지 못해 의결 기능 자체가 상실한 상태다. 방통위는 5인 체제의 합의제 의결기구이기 때문에 ‘위원장 직무대행’이 주요 정책을 의결·집행할 수 없다. 방통위는 이 위원장의 직무복귀 때까지 실무진 차원에서 정책을 다듬는 데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핵심 과제들은 담당 부서에서 추진 중이나 관련 입법이나 결정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는 “방통위는 사실상 올 연말까지 기능이 정지된 상황이고, 국회 과방위도 언론장악 이슈로 정보통신 분야 법률안 심사를 할 여력이 없어 방통위가 올해 추진하겠다고 내놓은 과제들은 결국 말로만 내뱉은 꼴이 됐다”며 “결국 이용자인 국민과 해당 기업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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