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SNS에 망가진 아동기…불안·우울증 대폭 늘었다 [책&생각]

양선아 기자 2024. 8. 9.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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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 위험성 주목
여자아이에게 더 치명적인 이유 짚어
‘불안 세대’의 저자 조너선 하이트는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가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에게 더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게티이미지뱅크

불안 세대
디지털 세계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이충호 옮김 l 웅진지식하우스 l 2만4800원

‘트렌드 코리아 2024’가 선정한 올해 열쇳말 가운데 ‘도파밍’이라는 용어가 있다. 즐거움을 느낄 때 뇌 중추신경계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게임상에서 수집한다는 뜻의 ‘파밍’(Farming)이 합쳐진 이 단어는 지속해서 도파민을 추구하는 행동을 뜻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자극적인 상황에 노출됐을 때 분비되는 ‘도파민’을 계속 추구하다 보면 도파민 중독이 되는데, 알코올·마약·스마트폰 중독도 이와 관련이 깊다. 각종 중독 문제가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도파밍’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고, ‘도파밍’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인지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디지털 디톡스’도 유행하고 있다.

최근 번역 출간된 책 ‘불안 세대’는 ‘도파밍’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넘어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아이들의 아동 발달 단계 자체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고발한다. 이 책의 저자는 세계적인 사회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다. 그는 2018년부터 소셜미디어가 십대의 정신건강과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다. 저자는 특히 1996년 이후에 태어난 아동(이른바 Z세대)들을 ‘불안 세대’라고 명명하면서 이들의 정신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졌다며 어른들이 더는 이를 방치해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는 제트세대가 ‘불안 세대’가 된 핵심 원인으로 ‘가상 세계의 과소보호와 현실 세계의 과잉보호’를 지목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스마트폰의 위험성을 지겹도록 들어 전문가의 말에도 시큰둥할 수 있지만, 이 책이 제시하는 데이터들을 보면 마냥 넋 놓고 있을 문제가 아님을 절실하게 느낄 것이다.

책에는 다양한 그래프가 등장하는데, 그래프만 봐도 2010년 이후 십대의 우울증과 불안 증세, 자해와 자살이 얼마나 급격하게 늘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특히 여자 청소년들의 경우에 이 증상이 두드러진다. 전년도에 주요 우울증 에피소드를 적어도 한번 이상 겪었다고 보고한 미국 여자 십대(12~17살) 비율은 2004년도엔 10명 중 1명 정도였다면, 2020년도엔 10명 중 3명에 가까워졌다. 또 2010년부터 2020년까지 미 여자 청소년(10~14살)의 자해 비율은 약 세배 늘었고, 여자 청소년의 자살률도 2008년부터 늘기 시작해 2021년엔 2010년에 견줘 약 2.5배 늘었다. 2010년대 대학교 캠퍼스에서 대폭 증가한 주요 정신 질환도 불안과 우울증이었다. 저자는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또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짚으며, ‘2010년대 초반에 도대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라는 질문을 던진다.

하이트의 연구 및 분석 결과를 보면, 2010년대 이후 정보기술(IT) 기기 영향으로 ‘놀이 기반 아동기’가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로 본격적으로 재편됐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사람의 아동기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꽤 길고 느리게 진행된다. 이는 아동기를 통해 자신의 문화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학습해야 하기 때문인데,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까지 아이들은 자유 놀이를 통해 신체적 기술뿐만 아니라 갈등 해결 같은 사회적 기술을 익혔다. 타인의 감정과 얼굴 표정을 읽고 공감하는 법, 자기감정을 조절하는 법, 자신의 문화에 동조하는 법 등을 배웠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소셜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아이들의 대면 상호작용이 현격히 줄었다. 바깥에서 뛰어노는 시간도 줄었다. 거기에 요즘 부모들의 지나친 과잉보호로 아이들이 도전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불안을 다스릴 기회는 줄었다.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로 인해 아이들에겐 사회적 관계 박탈, 수면 부족, 주의집중력 약화,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4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저자는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가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에게 더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하이트는 그 이유를 4가지 언급하는데, 여자아이는 시각적 비교에 더 민감하고, 여자아이의 공격성은 신체적인 방식이 아니라 관계와 평판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또 여자아이들은 감정을 더 쉽게 나누는 성향이 있는데, 온라인에서 연결이 극대화되면서 불안과 우울증도 더 쉽게 전염됐다. 또 인스타그램 등의 플랫폼을 통해 성인 남성과 남자아이들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스토킹하는 범죄가 늘고 있어 이런 일들이 여자아이의 불안도를 더 높인다고 분석했다.

‘불안 세대’의 저자 조너선 하이트.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아이들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 것에 그치지 않고, 저자는 더 건강한 아동기를 보내기 위해 정부와 테크 회사, 학교,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만 14살이 되기 전까지는 기본 휴대폰만 제공해서 아동이 24시간 내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16살이 되기 전에는 소셜미디어를 금지하자고 제안한다. 이는 아동의 뇌 발달이 다 이뤄지지 않은 점을 고려한 것이다. 또 저자는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모든 학교에서 등교 후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고, 아이들이 불안을 극복하고 자립적으로 클 수 있도록 자유 놀이와 독립적 행동을 더 많이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티 강국이자 초고속통신망으로 연결된 ‘초연결’ 사회인 한국은 어떻게 보면 다른 나라들보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위험성에 더 많이 노출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부모가 개인적으로 아이에게 스마트폰 주는 시기를 최대한 늦추려고 해도 다른 아이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면 그 부모는 아이의 친구 관계를 위해서라도 스마트폰을 사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저자의 제안처럼 집단적인 지혜가 발휘돼야 하고, 사회적 논의가 더 이뤄져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사회적 논의를 펼치기 전에 다 같이 읽어볼 만한 좋은 교재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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