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책&생각]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2023)
건강상태와 관련 없이 나이 들어감을 절실히 느끼는 지표가 두 가지 있다 . 다른 무엇보다 본인 부고를 알리는 문자를 받을 때이다 . 얼마 전까지 연락되거나 만난 사이인데 급작스레 세상을 등지는 벗이 종종 나오면서 삶의 어느 구비를 넘어섰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 두 번째는 대화의 주제로 부모 간병에 관한 이야기가 부쩍 늘어났다는 점이다 . 질병에 시달리는 부모를 둔 자식도 고단하지만 , 치매에 걸린 부모를 모시는 자식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듣는 사람이 다 힘겨울 정도다 .
문미순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은 그동안 우리 소설에서 보기 힘들었던 부모 간병을 주제로 삼아 눈길을 끈다 . 작품의 줄거리는 이렇다 . 명주가 외출해서 돌아보니 어머니가 쓰러져 있었다 . 무언가를 급히 찾으러 가다가 문턱에 걸려 넘어진 듯싶다 . 그렇게 허무하게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 길고도 험했던 간병이 끝났다는 안도감만 들어도 불손하다고 느낄 상황이다 .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 어머니 핸드폰으로 연금이 입금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
이혼하고 안 해본 일이 없다 . 백화점 구두 판매원을 비롯해 보험회사 콜센터까지 두루 섭렵했다 . 단체급식장에서도 일했는데 , 여기서 큰 화상을 입었다 . 치료했지만 완치되지 않았고 계속되는 발바닥 통증으로 다른 직업을 얻기도 어려웠다 . 그때 어머니가 같이 살자고 했고 , 합치고 나서 치매가 심해졌다 . 100 만 원 조금 웃도는 연금이었지만 , 그 돈이면 혼자 살 만했다 . 대신 어머니 장례를 기약 없이 미루어야만 했다 . 인터넷에서 미라 만드는 법을 찾아보았다 .
운수 좋은 날이었다 . 준성은 그날 유독 대리 운전이 잘 잡혔다 . 하나 , 마지막 대리운전한 차를 주차하다가 접촉사고를 냈다 . 고급 외제차라 수리비가 엄청 나왔다 . 보험을 든지라 해결될 줄 알았지만 , 대리업체가 보험료를 착복했다 . 뇌졸중 후유증을 앓던 아버지는 화상을 입어 중환자실에 계셨다 . 요양병원으로 모시라 했으나 형편이 되지 않아 집으로 모셨다 . 준성이 고 3 때 아버지가 쓰러졌다 . 그때부터 간병하랴 공부하랴 돈벌랴 정신 없이 살았다 . 형은 아버지 아파트를 담보 삼아 대출해 괌으로 간 다음 연락이 끊겼다 . 물리치료사가 되고 싶었지만 , 공부할 시간이 없어 번번이 시험에 떨어졌다 .
아버지를 목욕해 드리려 했다 . 평소와 달리 거칠게 저항했다 . 그러다 아버지를 놓쳤는데 그만 머리를 세면대와 변기에 부딪치고는 피 흘리며 쓰러졌다 . 아연실색하여 집에서 뛰쳐나오다 이웃인 명주를 마주쳤다 . 긴급한 상황을 들은 명주는 119 로 연락하는 걸 만류하며 죽음을 비밀에 부치고 60 만원 남짓하는 아버지 연금으로 물리치료사 공부를 하라고 권한다 . 그러고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고백한다 .
작가는 대놓고 읽는 이에게 종주먹을 들이댄다 . 당신은 이 사람들한테 돌을 던질 수 있느냐고 . 패륜이라는 말로 함부로 돌을 던지지 못하게 하려고 작가는 공을 들여 두 인물이 얼마나 성실했고 최선을 다했으며 착한 사람인지를 묘사했다 . 문제는 간병과 돌봄을 개인 또는 자식에게 돌리는 사회 시스템에 있는 것 아니냐고 묻는 셈이다 . 두 주검을 묻기 위해 시골로 내려가는 트럭에서 준성이 “ 오늘은 운수가 좋은 날이다 .” 라고 말할 때 가장 비도덕적인 행위에서 외려 위안과 희망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
이권우/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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