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주 칼럼] 농촌 어르신의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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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기슭 전남 구례군 용방면 도암마을에는 80세 이상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농촌 어르신은 이동성이 강한 도시와 달리 한 마을에서 거주하는 기간이 길기에 귀속 의식이 강하고, 작은 공간에서 오랜 기간 대면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왔기에 의존성이 강하다.
농촌 어르신은 마을에서 계속 거주하고, 이웃과 함께 살다가, 그곳에서 병고 없이 죽음을 맞이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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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기슭 전남 구례군 용방면 도암마을에는 80세 이상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새벽녘에 텃밭 농사일을 하고, 경로당에 모여 식사를 같이하며, 마을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티격태격 해결하며 지낸다. 마을에서 태어난 할아버지들은 80년이 넘게, 10대 후반에 시집오신 할머니들은 60여년 넘게 이렇게 서로 부대끼고 의지하고 돌보면서 살아오셨다.
이런 어르신들이 가장 슬퍼하는 것은 몸이 아파 더이상 거동하기 힘들 때 자식들이 와서 효도한다고 요양원으로 모셔가는 것이다. 안락한 시설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라는 것이 자식들 입장이지만 어르신들은 평생 살아온 마을에서 계속 거주하고 싶고, 이웃과 함께 삶을 마감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요양원 가는 것을 나 홀로 버려져 ‘죽으러 가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끔찍하게 싫어하신다.
자신이 살아왔던 마을에서 계속 거주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편안하고 존엄한 정주 욕구를 표현한다. 같은 공간에서 죽을 때까지 계속 머물며 이웃과 사회적 연결을 유지하고 자율적 판단과 선택으로 삶을 이어가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1982년 발표된 유엔(UN·국제연합) 비엔나 국제 고령화 행동계획에서 탈(脫)시설 노인복지정책으로 제시된 이후 존엄한 죽음과 연결되면서 노인의 권리이자 사회적 책무로 받아들여진다.
농촌 어르신은 이동성이 강한 도시와 달리 한 마을에서 거주하는 기간이 길기에 귀속 의식이 강하고, 작은 공간에서 오랜 기간 대면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왔기에 의존성이 강하다. 그래서 마을에서 벗어나는 걸 두려워하고 이웃과 관계가 단절되는 걸 힘들어한다. 죽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없는 병원에서 쓸쓸하게 죽는 것보다 평생 이웃이자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존엄하게 죽기를 바란다.
사회복지는 대상자의 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해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이다. 농촌 어르신은 마을에서 계속 거주하고, 이웃과 함께 살다가, 그곳에서 병고 없이 죽음을 맞이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농촌의 노인복지는 마을 바깥의 시설보호보다 마을에서의 재가보호가 잘 이뤄지도록, 그리고 이들이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도록 설계돼야 한다.
무엇보다 현재의 도시 지향적인 장기요양서비스를 농촌 친화적인 모습으로 바꿔야 한다. 대상자 규모나 접근성 측면에서 시장성 확보가 어려우니 공공형 재가시설을 확대해야 하고, 마을에서 서로 돌봄이 실현되도록 가용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 예컨대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설립하도록 지원한다든지, 비교적 젊고 노동력이 있는 주민들을 마을복지사로 양성해 어르신을 서로 돌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역농협이 나서는 방안도 있다. ‘농업협동조합법’ 제57조에 따르면 지역농협은 복지시설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복지후생사업을 할 수 있다. 이미 여러 농협에서 재가노인복지센터나 노인돌봄센터를 운영하고, 어르신을 대상으로 생활 돌봄을 실천하기도 한다.
이러한 농촌형 재가복지 모델이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기존의 장기요양 재가서비스가 도시 노인 특성을 반영해 설계된 것이라면 이제는 마을의 특성이나 어르신의 욕구를 반영해 새롭게 설계돼야 한다. 이른바 농촌형 통합서비스 개념이다. 그러려면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농촌 어르신 특례가 만들어지도록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김흥주 원광대 복지보건학부 교수, 전 한국농촌사회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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