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오죽하면 ‘한국 증시 탈출은 지능순’이라 하겠나

조선일보 2024. 8. 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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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아시아 증시 대폭락 이후 연이틀 소폭 회복세를 보이던 코스피가 8이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 모습/뉴시스

‘블랙 먼데이’로 불린 지난 5일 아시아 증시 폭락 사태는 한국 증시가 얼마나 허약한 체질인지 한 번 더 드러냈다. 올해 들어 미국·유럽·일본·대만 등 주요국 증시가 호황을 누리는 동안 한국 증시는 답보 상태였다. 그러다 충격이 오자 많이 올랐던 다른 나라보다 오히려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 폭락 이후 회복력도 다른 나라 시장보다 약하다. 일본 증시는 다음 날 10% 이상 급등하며 강한 회복 탄력성을 보였지만, 한국 증시 상승폭은 전날 낙폭의 절반도 안 됐다. 남들 오를 땐 못 오르고, 떨어질 땐 더 떨어지는 체질이 되다 보니 투자자들 사이에 “한국 증시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자조까지 나온다.

한국 증시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저평가)’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공매도 일시 금지 조치에서 드러났듯이 글로벌 기준과 거리가 먼 제도와 관행이 외국 투자자들을 실망시키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다 세계 꼴찌권의 배당률, 대주주를 위한 쪼개기 상장 남발, 낮은 자기자본 이익률(ROE) 등 주주 이익을 등한시하는 상장 기업들의 경영 행태가 주가를 억누르고 있다. 무거운 상속·증여세 부담을 줄이려 대주주가 주가 상승을 막는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불합리한 제도와 경영 방식을 바꿔야 한국 증시가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정부가 올해 초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프로그램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투자자 기대감이 높았다. 주가도 상승세를 탔다. 하지만 막상 정부 대책이 나오자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주주 환원에 참여하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가 약하고, 참여하지 않아도 벌칙이 적어 당근과 채찍이 모두 기대 이하였기 때문이다. 현재 주식 투자자 수가 1400만명으로 주식 투자 대중화 시대가 열렸는데, 이젠 실망한 투자자들이 대거 미국 증시로 떠나고 있다.

증시가 활성화돼야 가계 여유 자금이 기업의 생산 활동에 유입되고 경제 성장 동력이 높아진다. 국민 자산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 한국 주식이 제값을 받으려면 기업 지배구조 개선, 주주 환원 확대, 소액 주주 권익 강화, 장기 투자자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 등 증시 매력도를 높이는 과감한 제도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증시의 허약 체질도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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