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쓰레기’를 치우려면 [조선칼럼 장대익]
깊이 있는 분석·논리 필요한 학문적 콘텐츠와는 안 어울려
게다가 여긴 모든이의 플랫폼… 지식인 좌절하고, 소비자는 오염
그럼에도 ‘쓰레기’를 치우려면 진짜 고수들이 활약해야 한다
인류의 역사는 유튜브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문명의 진화에서 사회적(집단적) 학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면 이 명제가 그렇게 과하지는 않다. 유튜브(정확히는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가 없었다면, 인간의 삶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지식과 기술의 총체가 이처럼 빠르게 생산, 변형, 확산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구촌 곳곳의 갈등은 무음 처리가 되었을 것이고 지구촌 구석의 숨은 고수들은 골목대장으로 만족해야 했을 것이다. 유튜브 활용법만 배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방송국을 차릴 수 있는 시대다. 집단의 성취가 축적되고 변형되는 과정에서 문명이 진화하는 것이라면, 유튜브는 문명 진화의 엔진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튜브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최근 큰 논란이 된 천만 유튜버 쯔양 협박 사건의 경우처럼 유튜브 생태계의 한쪽은 말문이 막힐 정도의 무법 지대다. 정치인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시혜를 베푸는 듯한 ‘겸손이 힘든’ 채널부터 태극기 부대가 열광하는 ‘아무개 TV’까지, 유튜버들의 팬덤 정치는 디지털 부족 사회를 더욱 양극화하고 있다. 이에 반해 레거시 미디어는 공적 가치 추구의 깃발을 슬그머니 내린 채 인기 유튜브 채널 따라하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유튜브는 팬덤에 특화된 플랫폼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식 생태계를 고민하는 기존 지식인들에게 유튜브는 더욱 난감한 존재다.
하지만 그들이 유튜브를 꺼리는 진짜 이유는 조금 더 근본적이다.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은 그의 역저 ‘미디어의 이해’에서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통해 매체(미디어) 자체가 콘텐츠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매체의 특성에 따라 메시지의 내용과 수용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기존의 지식생태계에서 권위를 가진 지식인들이 유튜브를 꺼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유튜브는 전통적인 학술 논문이나 책과 달리 짧고 시각적인 콘텐츠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유튜브 콘텐츠는 깊이 있는 분석과 논리가 중요한 학문적 콘텐츠와는 결이 다르다. 가령, 논문은 종종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긴 텍스트로서 복잡한 이론과 데이터를 다루는 반면, 유튜브 영상은 몇 분에서 몇 십분 내에 핵심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둘째, 유튜브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열린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이는 장점이면서 동시에 전문성과 비전문성의 경계를 흐리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이때 지식인들은 자신의 전문성이 평가절하되는 좌절감을 경험한다. 가령, 어떤 뇌과학 박사가 유튜브에 출연하여 정확한 뇌과학 정보를 제공한다고 해도, 옆에 자동으로 추천되어 뜨는 비전문가의 잘못된 뇌과학 정보가 소비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 비전문가가 출연한 채널의 구독자 수가 훨씬 더 많은 경우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지식의 생산자는 좌절하고 소비자는 오염된다.
게다가 유튜브 콘텐츠 제작에는 영상 촬영, 편집, 마케팅 등의 기술적 지식과 경력이 필요한데, 이는 학문적 연구와 강의에 집중해온 지식인들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지속적인 콘텐츠 생산과 관리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유튜브 채널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지식인들은 유튜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만 할 시점에 와 있다. 국내만 보더라도 유튜브의 최근 월간 활성 이용자(MAU)가 4624만6846명으로 카카오톡이나 네이버를 제친 1위이다. 작년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인의 94%가 유튜브를 통해 정보와 지식을 수집한다고 답했을 정도다. 지금 우리는 좋든 싫든 유튜브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 현실을 무시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질 수밖에 없다. 조금 과장을 하면, 유튜브 생태계가 쓰레기 같다고 비난만 하거나 무시하고 꺼리는 지식인들은 우리 국민의 90%를 만날 의향이 없는 분들이다.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를 기억해보자. 방문자수가 가장 많은 웹페이지는 포르노 사이트였다. 인터넷 세상은 곧 쓰레기가 될 것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어떻게 되었는가? 어쩌면 지금도 포르노 사이트의 규모가 가장 클 수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변화시켰고 비즈니스의 문법을 바꿨으며, 새로운 가치들을 만들어냈고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명제의 참을 증명했다. 유튜브도 유사한 궤적을 그릴 것이다. 이제 오프라인 지식생태계의 진짜 고수들이 유튜브의 세계로 이주해 활약해 주길 바란다. 유튜브 이후의 지식 플랫폼을 당장 건설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이 공간에 쌓여있는 가짜 뉴스, 음모론, 팬덤정치, 댓글부대의 쓰레기 더미 위에서 좀 더 건강한 지식 생태계를 가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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