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인원으로 벌써 금 12개... 예상 뒤집은 ‘뉴 코리안’
박태준(20·경희대)은 금메달을 걸기 위해 시상대로 향하면서 2위 가심 마고메도프(아제르바이잔)에게 어깨를 내줬다. 8일 열린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58㎏급 결승에서 다리를 다쳐 기권한 상대가 시상식 때까지도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박태준은 다리를 절뚝이며 걷던 마고메도프가 손을 얹자 부축해 주며 시상대에 함께 올랐다. 기념사진을 찍고, 시상대에서 내려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어깨동무를 한 채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배려하는 승자와 감사하는 패자 마음이 어우러졌다.
결승전 승패는 초반 기울었다. 두 선수가 동시에 공격하다 정강이끼리 부딪히자 마고메도프가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드러누웠다. 박태준은 정상적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한 상대를 공략해 9-0으로 1라운드를 이겼다. 2라운드에서 어렵게 버티던 마고메도프는 1-13까지 뒤진 2라운드 종료 1분여 전 박태준에게 공격을 당한 뒤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돌렸다. 이어진 박태준 연속 공격에 쓰러지더니 결국 기권했다. 그랑 팔레를 찾은 관중은 박태준이 사실상 승리를 결정지은 상황에서 가혹하게 몰아붙였다고 보고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박태준은 “상대가 경기를 포기하거나 그만둘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도리어)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마고메도프가 쓰러졌을 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우승 순간에도 괜찮은지 물으며 위로했다. 박태준이 마고메도프에게 따뜻한 태도를 보이자 관중도 박수를 보냈다.
박태준 정상 등극으로 한국은 이번 올림픽 12번째 금메달을 수확했다. 1988 서울, 1992 바르셀로나에서 딴 금메달 수와 같다. 8일 오후 10시 현재 한국은 금 12, 은 8, 동 7개로 금메달 기준 순위 종합 6위, 메달 합산 8위를 달린다. 2008 베이징과 2012 런던 금메달 13개를 넘어 역대 최다 금메달도 노리게 됐다. 일본(현재 금 12, 은 6, 동 13)과 순위 경쟁도 관심이다. 도쿄 땐 개최국 일본이 금메달 27개로 종합 3위, 한국은 금메달 6개 16위에 그쳤다.
한국은 파리에서도 금메달 5개 정도가 현실적이라고 판단했다. 여자 핸드볼을 제외한 단체 구기 종목이 모두 출전권을 놓쳐 선수 규모는 1976 몬트리올 이후 가장 적은 143명. 하지만 ‘팀 코리아’는 개막 사흘 만에 금메달 5개를 채웠고, 활(양궁·금 5개), 총(사격·금 3개), 칼(펜싱·금 2개) 종목을 중심으로 금 12개를 합작했다. 그 밑바탕엔 이른바 MZ(밀레니얼 Z)로 불리는 젊은 패기들이 선봉장 노릇을 했다. 2012 런던올림픽 당시 금메달리스트 평균 나이는 26.8세. 2016 리우 땐 25.5세. 2020 도쿄 27.1세였다가 이번엔 23.9세(8일 현재)로 젊어졌다. 사격 17세 반효진과 19세 오예진, 양궁 19세 남수현, 태권도 20세 박태준까지 ‘무서운 아이들’이 약진하면서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박태준은 태권도 종주국 한국이 한 번도 따지 못했던 남자 최경량급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손태진(68㎏급)과 차동민(80㎏ 초과급) 이후 16년 만에 남자 태권도에 금메달도 안겼다.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 ‘노 골드(은1 동2)’로 체면을 구긴 한국은 박태준 우승으로 자존심을 회복했다. 박태준은 “이거, 꿈은 아니죠? 제 20년 인생이 담긴 금메달입니다”라면서 웃었다. 그는 올림픽 전 “샛노란 소변이 계속 나오는 꿈을 꿨다. 금메달을 암시하는 것 같다”고 했다. 길몽이 맞았다.
박태준은 여섯 살 때 동네 도장에서 태권도를 시작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엘리트 선수 길을 걸었다. 이대훈을 닮고 싶어 그의 모교 한성고에 입학했고, 이대훈처럼 3학년 때 처음 태극 마크를 달았다. 58㎏급은 이대훈이 2012 런던 때 은메달을 딴 체급. 이번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이대훈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받았다 한다.
파리로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올림픽 랭킹 5위 자격으로, 3위 장준과 지난 2월 제주에서 국가대표 선발전(3전 2선승제)을 치러야 했다. 앞서 장준에게 6전 전패를 당한 터. 평소 왼발을 앞에 두던 스타일을 바꿔 오른발을 앞에 놓는 변칙 작전을 썼다. 기어이 장준을 물리치고 파리행 티켓을 딴 뒤 “천위페이에게 계속 눌려 있다가 결국 극복한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준결승에서 세계 1위 모하메드 칼릴 벤두비(튀니지)를 2대0으로 꺾고 ‘윙크’를 날렸다. 관중석에 있던 신경현 경희대 코치를 향한 세리머니였다. 우승하고 나선 손을 짚지 않고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았다. 지난봄 태권도 시범단 동작을 보고 따라 했는데 한 번 만에 성공하길래 결승전 세리머니로 준비했다고 한다.
박태준은 이날 긴장할 때마다 휴대폰 바탕화면에 올려둔 ‘난 된다’ ‘난 될 수밖에 없다’ ‘난 반드시 해낸다’ 같은 문장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결승전을 앞두곤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보이 밴드 데이식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들었다. 그는 “오늘 한 페이지를 만들어보고 싶어 이 노래를 골랐다”고 했다. 다음 날 다시 만난 박태준은 “경기를 끝내고 한국 시각에 맞춰 2학기 수강 신청을 해야 해서 밤을 꼴딱 새웠다”면서 “결승전 때 왼쪽 약지가 탈구돼 아프지만, 참을 만하다. 열심히 대표팀 누나, 형들을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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