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대단한 인연

2024. 8. 8.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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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후배가 신간을 보내왔다.

그런데 후배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어쨌거나 사진을 받아본 후배는 놀랍게도 피사체의 얼굴을 즉각 알아보았다.

후배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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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후배가 신간을 보내왔다. 표지에 노란 메모지가 부착되어 있었다. 외출 시 잊지 마세요! 나만 알아들을 문장과 그 뒤에 그려진 웃는 얼굴 기호를 보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십수 년 전 일이다. 어느 문학 행사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내가 먼저 이렇게 대면으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지만 책은 일찌감치 읽었다는 말로 인사를 건넸더니 그가 수줍게 웃으며 대꾸했다. 네, 알고 있어요. 나는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뭘 알고 있다는 건지. 우리가 처음 만났다는 것? 아니면 내가 그의 책을 읽었다는 것? 그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물었다. 제 책, 지하철에서 읽으셨지요?

그랬다. 지하철에서 읽었다. 책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환승할 역을 그만 지나치기까지 했다. 그런데 후배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집에 있는데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단다. 지하철에서 어떤 사람이 네 책을 읽고 있어. 대놓고 광고하듯이 표지가 아주 잘 보이게 활짝 펼쳐서 말이야. 친구는 그러면서 친절하게도 그 사람의 사진을 몰래 찍어 전송했단다. 지금만큼은 아니겠지만 당시에도 도촬의 불법성이나 초상권 침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없지 않았을 텐데, 아마 첫 책을 출간한 소설가 친구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그 밖의 문제들까지 고려할 여유는 없었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사진을 받아본 후배는 놀랍게도 피사체의 얼굴을 즉각 알아보았다. 그가 최근에 읽은 책의 표지 날개에서 본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와 나는 비슷한 시기에 서로의 책을 읽고 있었던 셈이다.

와, 이거 대단한 인연이네요. 후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늘 처음 만나는데도 마치 전에 만난 적이 있는 것 같다고, 인사가 늦었지만 첫 책을 읽어주어서 고맙다고 그는 말했다. 나 역시 고맙다고, 환승을 제때 하지 못한 것이 억울하지 않을 만큼 재미있는 책이었다고, 게다가 별 볼 일 없는 얼굴을 사진만 보고도 척 알아봐 주어서 영광이라고 덧붙였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그를 딱 한 번 더 만났고 그마저도 공적인 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었으니 사실상 그와 나는 친분이 있다고 하기도 어색할 만큼 소원한 사이이다. 그런데도 첫 만남의 특별한 기억 때문인지 그의 책이 출간되면 유난히 반갑다. 그의 당부대로 외출 시 잊지 않으리라.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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