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발로차 신호, 10점 쐈어요”…배 속 아기와 함께한 올림픽 ‘슈퍼맘’

차창희 기자(charming91@mk.co.kr) 2024. 8. 8. 23: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양궁 라마자노바 임신 6개월
“아기가 신호줘 10점 쐈어요”
펜싱 하페즈 “아기와 함께 경기”
딸 낳고 올림픽 나온 금지현
“출산으로 경력단절 안됐죠”

◆ 2024 파리올림픽 ◆

임신 6개월 반의 몸으로 양궁 종목에 출전한 아제르바이잔의 얄라굴 라마자노바(34)의 모습. [사진 = 로이터 연합뉴스]
“저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배 속의 아기와 함께 2024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올림피언들이 있다.

임신한 상태로 세계 최고 스포츠인들이 자웅을 겨루는 올림픽 무대에 오른 ‘예비 엄마’ 선수들의 활약에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슈퍼 맘’들의 도전도 지속되고 있다.

양궁에서 등장한 예비 엄마 궁사의 사연이 대표적이다.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얄라굴 라마자노바(34)는 임신 6개월 반의 몸으로 70m 떨어진 작은 표적지에 화살을 쐈다.

그는 양궁 여자 개인전 32강에서 중국의 안치쉬안(24)을 상대했는데 초접전 끝에 연장 슛오프까지 치러야 했다. 슛오프에서 활시위를 과녁에 정조준하던 그 순간, 그에게 배 속의 아기가 신호를 보냈다.

라마자노바는 즉시 활시위를 당겼고, 화살은 최대 점수인 10점에 명중했다. 결국 라마자노바는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던 라마자노바는 인터뷰에서 “배 속의 아기가 발로 차면서 지금 쏘라고 신호를 준 것 같다”고 말하며 웃음 지었다.

그의 도전은 함께 올림픽에 출전한 동료 선수들에게도 울림이 되고 있다. 양궁 미국 대표로 출전한 캐시 커폴드(20)는 라마자노바의 사례를 가리켜 “매우 멋진 일”이라며 “나중에 아이에게 ‘엄마가 올림픽에 나갔을 때 너도 함께였단다’고 말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부러워했다.

임신 7개월의 몸으로 펜싱 사브르에 출전한 이집트의 나다 하페즈(26)의 모습. [사진 = 하페즈 SNS 캡처]
이집트의 펜싱 선수인 나다 하페즈(26)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대회 펜싱 사브르 종목에 도전장을 내민 그는 지난달 29일(한국시간) 펼쳐진 개인전 16강에서 한국의 전하영에게 져 탈락했다.

경기 후 하페즈는 자신이 임신 7개월이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경기장에 두 명의 선수가 올라간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은 3명이었다”며 “나와 상대 선수, 그리고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내 작은 아기가 함께했다”고 적었다.

사실 하페즈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2021년 도쿄 무대에서도 얼굴을 비춘 베테랑 선수다. 앞선 두 번의 올림픽에선 홀로 상대 선수와 겨뤘다.

펜싱은 간발의 차로 상대의 허점을 찔러야 하는 만큼 순발력이 중요하다. 임신 상태로 경기에 임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하페즈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배 속의 소중한 생명과 함께 싸워 외롭지 않았고, 그의 세 번의 올림픽에서 역대 최고의 성적(16강)을 아이와 함께 파리에서 이뤘다.

하페즈는 “(임신 이후) 삶과 운동의 균형을 맞춰야 했고, 많은 상황과 싸워야 했다”면서도 “올림픽은 그런 상황을 겪고도 출전할 가치가 있는 무대”라고 말했다.

과거엔 임신한 상태로 금메달을 목에 건 신화적인 인물도 있었다. 바로 2012년 런던 올림픽 비치발리볼 종목에 출전한 케리 월시 제닝스(45·미국)가 대표적이다.

제닝스는 지난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올림픽에 나와 3회 연속 금메달을 따냈다. 사실 그는 2012년 대회에는 임신 5주째라는 사실을 모르고 출전해 우승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제닝스는 올림픽이 끝난 뒤 한 미국 TV 방송에 나와 “두려움 없이 몸을 던지고, 조국을 위해 금메달을 노릴 때 임신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2012년에 임신 중이던 아이는 그의 세 번째 출산이었다.

올림픽은 아니었지만 2017년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 단식에 출전한 세리나 윌리엄스(미국)도 당시 배 속의 아기와 함께 뛰면서 우승까지 차지했다. 윌리엄스에겐 아이와 함께 뛴 이 무대가 마지막 메이저 대회 우승 기록이기도 하다.

보통 임신한 여성이 0.01~0.1초에 승부가 결정되는 올림픽 종목에 출전하는 건 쉽지 않다. 평소 몸 상태보다 움직임이 더딜 수밖에 없고, 심리적인 이유로 100% 컨디션을 발휘하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예비 엄마 선수들의 맹활약과 아름다운 도전은 임신한 여성들도 충분히 수준 높은 경기력을 보이고, 메달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인식을 주고 있다.

캐서린 애커먼 미국올림픽위원회 여성건강위원장도 “여성이 임신 중에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고정 관념이 사라지고 있다”며 “스키와 같은 종목은 위험할 수 있지만 펜싱, 양궁, 사격 등에서는 임신 중인 여성이 충분히 경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 중 가장 먼저 메달을 목에 건 사격 은메달리스트 금지현(24·경기도청)이 딸에게 반짝반짝 빛나는 메달을 선물했다. [사진 = 연합뉴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올림픽 무대에 도전한 슈퍼 맘들도 있다. 사격 공기소총 10m 혼성에 출전한 금지현(24)은 지난해 5월 딸을 출산했다. 금지현은 “출산으로 선수 경력이 단절되지 않는다고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2022년 세계선수권대회 당시 경기 장 내 워밍업 룸에서 딸에게 모유를 먹여 화제가 된 프랑스의 유도 여왕 클라리스 아그베그네누(32)도 이번 대회 유도 여자 63kg급에 출전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