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 조직원들 입국 도운 인물, 실체 규명이 관건
운송 2명 진술, 미묘한 차이
수사팀 이끈 백해룡 과장
“외압에 압색 영장 못 받아”
경찰 지휘부는 부인 일관
최근 정치권과 경찰 안팎을 뜨겁게 달구는 ‘세관 직원 마약 연루 및 수사 외압’ 의혹은 말레이시아 여성 두 명의 입에서 출발했다.
경찰은 마약 운반책 수사 과정에서 ‘세관 직원이 필로폰 밀수에 도움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그 진술을 고리로 인천세관을 향했던 수사는 이후 외압 의혹으로,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했다.
수사팀을 이끌던 백해룡 당시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은 이 사건을 광범위한 외압이 이뤄진 ‘제2의 채 상병 사건’이라 주장한다. 외압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는 이들은 세관 밀수 개입 의혹의 실체가 불분명하다고 반박한다.
경향신문은 필로폰 밀수 조직원의 경찰 피의자 신문조서와 판결문을 입수했다. 사건 시발점이 된 말레이시아 여성 두 명의 진술이 생생히 담겼다.
지난해 9월10일 영등포서는 말레이시아 밀수 조직원 A·B씨를 상대로 피의자 조사를 진행했다. 두 사람은 한 달 전 배송받은 필로폰 12㎏을 국내 유통조직에 전달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A씨는 지난해 1월27일 오전 7시15분쯤 자신과 B씨, 인솔자인 중국계 이모씨를 비롯한 남성 6명이 몸에 각각 필로폰 약 4㎏을 배와 종아리·허벅지 등에 테이프로 감아 붙인 후 한국으로 입국했다고 말했다. A씨가 입국 직후 상황을 설명하면서 ‘세관 직원 개입 의혹’이 처음 나왔다. B씨도 이날 상황을 설명했다.
“입국해 검역장을 통과하고 출입국에서 지문을 찍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앞에서 누가 먼저 접근했는지 모르겠으나 이○○이 세관 직원(또는 공항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 2명과 뭐라고 얘기를 하고 있었다. A에게 물어보니까 ‘그들이 우리에게 출구를 알려준다’고 했다. 세관신고서를 제출하고 그 사람들을 뒤따라갔는데 그 사람들은 출구 앞에서 다른 곳으로 갔고, 이○○은 저희에게 먼저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다.”
흔한 마약 밀수 사건이 ‘세관 직원 마약 연루 의혹’으로 비화하는 순간이었다. A씨와 B씨는 이후 택시를 타고 서울 명동의 한 호텔에 도착한 뒤 필로폰을 한데 모아 ‘한국인 보스’로 보이는 30대 남성이 탄 벤틀리 차량에 넣어뒀다고 진술했다.
A씨와 B씨의 진술은 엇갈리는 대목이 있었다. A씨는 진술에서 ‘입국심사를 거치지 않고 손쉽게 공항을 빠져나왔다’는 취지로 말했다. 통상 입국장으로 빠져나오는 세관 신고 구역에서는 입국심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별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따로 검문도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B씨는 검역장·출입국(심사)·세관 신고를 명확하게 구분해 표현했다.
세관 직원의 안내 범위 역시 둘의 진술이 미묘하게 달랐다. A씨는 “공항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택시 승강장까지 안내했다”고 했지만, B씨는 “출구까지만 안내받았다”고 말했다. A씨와 B씨는 “한국에 도착하면 출입국 직원이 도울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입국했다고 진술했다. ‘세관 직원이 도울 것’이라는 기대와 추측이 진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경찰 지휘부는 일관되게 이 사건에서 제기된 ‘외압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취해왔다. 진술 외의 뚜렷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세관 직원 연루 혐의를 공식화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게 지휘부 입장이다.
수사를 주도해온 백 전 과장은 구체적인 외압을 받았고 압수수색에 필요한 영장을 받지 못하는 등 수사에 부당한 간섭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백 전 과장 측은 지난 7일 관세청이 ‘외압설’을 부인하는 설명자료를 내자 “구체적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나아가 외압사건이라는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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