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주 5일 경로당 급식, 조리노동의 문제다
가스불 켜기 겁나는 계절, 독거노인인 아버지의 식사도 걱정이다. 그간 경로당에서 점심을 잡쉈지만 얼마 전 급식도우미 여사님이 힘들다며 그만두었다. 노인 25명의 점심을 책임졌던 여사님이 가져간 임금은 고작 69만원. 59만원은 지자체가 지원하고 나머지 10만원은 경로당 노인들이 보탠 돈이다. 장보기와 조리, 설거지까지 하는 노동의 가치가 저랬다. 여기에 일주일 치 부식비가 15만원 내외. 고물가 시대에 15만원어치 장을 봐서 지지고 볶는 일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생선을 선택하면 과일을 빼야 했다. 텃밭 채소나 각자 집의 밑반찬을 추렴하거나 기부도 받으면서 그럭저럭 식사를 꾸려왔어도 끝내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아버지의 점심은 멈추고 말았다.
전국의 경로당은 6만9000곳, 그중 5만8000곳에서는 주 3회 정도의 급식이 제공된다. 조리시설과 인력이 없어 점심은 각자 먹고 모이는 경로당도 많다. 이에 지난 5월 정부는 경로당 주 5일 급식 실시계획을 발표했다. 총선에서 야당이 주 5일 경로당 급식 공약을 내걸자 여당은 주 7일을 하겠다며 큰소리쳤지만 5일 급식으로 정리했다. 경로당 급식은 현재 쌀은 정부가 대고 부식비는 지자체가 낸다. 정부는 연간 160㎏ 지급하던 쌀을 240㎏으로 늘리고 조리인력도 더 배치하겠다며 국비 38억원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저 정도의 예산 증액으로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을까.
경로당 5일 급식을 실현하겠다며 대통령이 경로당까지 찾아가 호언장담을 하였으니, 자기도 밥을 먹을 수 있는지 경로당에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그러나 경로당 급식은 회비를 내는 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종의 선별복지다. 게다가 지자체는 세수 부족으로 지원을 확 늘리지 못하고 있다. 물가는 오르고 먹을 입은 더 늘어났건만 고작 쌀 몇 포대 더 준다고 경로당 급식이 나아질 수 있겠냐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결정적으로 밥할 사람이 좀체 구해지지 않는다. 노인공공일자리사업의 일환으로 경로당 급식도우미를 모집하려 하지만 한 달에 10회, 3시간 근무에 30여만원이다. 같은 돈으로 공원관리나 우체국 주차관리, 전철 안내 등이 있는데 경로당 급식조리 노동도 같은 급여니 단연 기피 1순위다. 급식도우미 모집공고를 보고 노인들 식사 보조만 하는 줄 알았다가 밥까지 해야 한다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는 이도 있다. 그 처우에 밥까지 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한 것이다. 3시간 근무라지만 미리 장을 보고 조리와 뒷정리까지 하려면 초과 근무를 무상으로 하게 된다. 여기에 한정된 식재료로 메뉴를 구성하는 일도 어렵고, 위생·안전관리 문제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기실 ‘도우미’라는 말도 틀렸다. 여사님들은 대량조리의 총책임자다. 여기에 농촌 사정은 더 나쁘다. 인구 과소화에 초고령화 상태인 농촌에서 밥할 사람은 결국 70대의 허리 굽은 부녀회장이거나 개중 막내급인 80대 초반 여성노인이 밥 당번을 떠맡기도 한다.
어디 경로당뿐인가. 학교급식 현장의 인력난은 만성 상태다. 직영급식을 포기하고 외주로 돌리자는 말까지 나온다. 수억원이 넘는 조리로봇으로 해결하자는 허황된 말이 난무한다. 그 수억원을 시설개선과 사람에게 쓰면 될 일이다. 취약계층에 도시락 지원을 하는 복지관의 조리원도, 지역아동센터의 ‘급식 선생님’도 상시 모집 중이다. 이는 그간 급식조리 노동을 ‘부엌데기들의 솥뚜껑 운전’ 정도로 취급해온 후과다. 대통령도 명동성당에서 수백명 먹을 김치찌개를 끓여봐서 집밥과 단체급식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급식은 밥상에 숟가락 몇개 더 놓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유일한 타개책은 임금 현실화와 안전한 근로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단계적, 중장기적 개선이라는 말을 기다리기엔 아이들은 빨리 자라고 노인들은 급하게 늙고 있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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