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방통위 사태의 재구성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사실상 무법천지로 전락하였다. 방통위원장 국무회의 배제를 시작으로 장기간의 표적 감사와 수사가 이어지는 한편 위원장과 위원의 해임과 임명이 오로지 대통령의 자의적 인사권 행사로 점철되면서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정상적 조직 구성을 갖춘 적이 없다. 방통위원 정원이 자의적으로 채워지지 않은 채, 위원장 대행체제나 2인 체제라는 위법적 조건에서 YTN의 민영화나 KBS·MBC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처분이 적법절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속도전 치르듯 이루어져 왔다. 현재는 세 번째 임명된 이진숙 위원장이 국회의 탄핵소추를 받아 권한행사가 중지된 2인체제이며, 이 사태를 제도적으로 개선할 방통위법 개정안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표류하고 있다.
방통위법의 입법목적은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높이고 “방통위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하는 것이다. 사실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의 보장은 헌법이 국가의 존립 이유로 설정한 기본권 보장 의무의 핵심요소다. 헌법상 방송의 자유는 개인의 의사표현을 보장하는 것을 넘어 민주적 정치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공론장’을 형성하는 특별한 역할이 있다. 거대복합사회에서 방송 없는 표현의 자유는 파편적이고 공허한 기본권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성과 공정성이 최대한 확보될 수 있는 공론장을 형성할 수 있도록 방송을 비롯한 언론매체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적극적으로 보장할 헌법적 의무를 진다.
방통위법은 이러한 헌법적 역할을 수행할 기관으로 방통위를 설립하고 그 ‘독립적’ 운영을 최고 가치로 설정하였다. 헌법이 국가에 명령한 방송 자유의 실질적 보장 조건인 방송의 “다양성 원칙과 공정성 의무”를 실현하기 위해선 방송규제기관 자체가 대통령 등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되는 게 필수이기 때문이다. 방통위법은 방송 기본계획 수립과 KBS 및 방문진 임원 임명 등 방송사 지배구조 구성에 관한 사항 등은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행정감독을 받지 않도록 방송행정의 독립성 보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러한 독립성 원칙이 무색하게 대통령의 인사권이 오남용되었다는 것은 이제 모두가 안다. 대통령과 유착된 사람들을 차례로 위원장과 위원으로 임명하고 야당 추천은 무시하면서 오직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정파화하는 데 몰두해온 것은 헌법과 법률을 반복적으로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다.
또한 방통위법은 독립성을 실현할 최적의 방식으로 합의제 기관의 조직형태를 채택하였다. 독임제의 방식으로는 다양성과 공정성 및 독립성의 원칙을 감당하기에 취약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비교법적 연구들은 수평적 지위에서 의결의 권한을 가지는 최소 3인 이상의 위원으로 구성되고 운영되는 것이 로마법 이래 합의제조직의 본질적인 특성임을 확인하고 있다. 방통위법에서 위원회 의결정족수를 재적 과반수로 정하고 있는 의미는 이러한 합의제 기관구성의 일반원칙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5인 중 3인을 채우지 못한 위원회의 행정처분은 명백한 위법이다.
나아가 방통위법은 합의제 기관의 구성을 철저히 정당 중심 다원주의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결단하였다. 위원 5인 중 위원장을 포함한 2인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국회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되, 국회 추천은 여당 1인, 야당 2인이 추천하는 방식이다. 대통령의 독자적 임명권은 재량이지만 정당 추천의 경우는 재량이 인정되지 않는 형식적 권한이므로 대통령은 이러한 방통위법을 지킬 법적 의무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러한 법적 의무를 다하지 않고 야당추천위원의 임명을 악의적으로 지체하면서 인사권을 선택적으로 행사함으로써 방통위의 위법사태를 유도하였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현재 방통위법 개정안이 표류하면서 야당이 추천권을 행사하지 않아 결원이 생긴 경우라도 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별론으로 하고 야당 추천위원을 포함하여 최소 3인을 채우지 못한 방통위의 결정은 그 자체로 위법하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탄핵소추 직전 MBC 감독권을 가진 방문진 이사를 임명한 방통위원장의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신청을 한시적·잠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행정법원의 결정이 내려졌다는 속보가 전해졌다. 향후 본안에서도 방통위의 무법천지가 사법적 통제를 받을 것이다. 계류 중인 탄핵심판에서도 악의적으로 위헌·위법의 공권력을 행사한 방통위원장에게 헌법과 법률에 따른 지배가 이 땅에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준엄한 심판이 내려질 것으로 믿는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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