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폭염,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재난

기자 2024. 8. 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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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대전으로 문상을 다녀왔다. 아침나절 상가에 도착, 점심 무렵 대전역에서 귀경열차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도로의 열기로 체감온도가 40도에 육박한다는 일기예보답게 대전역 광장으로 가는 길은 무더웠다. 광장 한쪽에서 솜바지에 파카를 둘러쓴 노숙인이 땡볕에 누워 있었다. 바로 건너편에선 어느 종교단체의 두 사람이 큰 양산을 쓴 채 포교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 장면 앞에서 숨이 콱 막혀왔다. 종교단체 쪽으로 걸어가 양산을 하나 달라고 해 누워 있는 노숙인에게 갔다. 여기서 이렇게 누워 계시면 죽어요!! 소리치고 약간의 돈을 드리고, 양산으로 햇빛을 막아드렸다. 한 행인은 저 노숙인은 누구의 말도 안 듣는다면서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며 지나갔다. 폭염사회의 단면이었다.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 클라이넨버그는 2018년에 발간한 저서 <폭염사회>에서 폭염은 기후재난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특정한 환경하에서 더 심각해지는 사회적 재난이라고 정의했다. 폭염으로 2003년 유럽 전역에서 7만여명이 사망했고, 2010년 러시아에서 5만명 이상이 사망하기 이전에 저자가 폭염에 주목한 사건이 있었다.

1995년 7월 시카고에서는 기온이 41도까지 올라가는 폭염이 일주일간 지속돼 700여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있었다. 이 사건 전에는 미국 내에서 무더위는 사회적 문제로 취급된 적이 없었다. 폭염은 홍수나 폭설처럼 압도적인 장면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고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폭염의 희생자가 대부분 눈에 잘 띄지 않는 노인, 빈곤층, 1인 가구의 사람들이었다는 것도 큰 원인이었다.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이 대규모 폭염사에 대해 폭염기간에 어떤 제도적 장기가 고장났는지 판단하기 위한 기법으로 사회적 부검을 적용했다. 폭염 때문에 죽은 사람들은 전적으로 몸이 약하고, 나이가 많고, 쓸쓸한, 혼자서 더위를 견뎌야 하는 이들이었다. 폭염사망자의 지형도는 인종차별 및 불평등의 지형도와 대부분 일치했다. 가장 높은 사망률을 보인 10곳 중 8곳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사는 곳이고, 빈곤과 폭력범죄가 집중되어 있어 노인들이 위험을 피해 집에 숨느라 폭염으로 혼자 사망한 곳이었다. 그러나 가난하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집중된 지역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피해를 본 것은 아니었다. 인구가 줄지 않고, 주민들이 동네 식당을 오가고, 반상회와 교회활동에 참여하는 ‘살아 있는’ 동네에서는 누가 혼자 살고, 누가 나이 들었고 누가 아픈지 금방 알아채기에 폭염기간에 사망자가 거의 없었다. 이 연구 결과들을 통해 폭염은 기후재난이지만 대처 방안은 사회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엊그제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자살률인 것을 넘어 작년보다 자살사망이 10%나 늘었다는 우울한 기사를 봤다. 얼마 전엔 국회의원들이 폭염 중 고통받는 민생 시찰 차원에서 쪽방촌을 방문했다는 기사를 봤다. 무려 3선이나 하신 한 의원은 쪽방촌이 이렇게 열악한 줄 몰랐다고 해서 가슴이 무너졌다. 국내에서 발생한 고독사와 폭염 피해자들 또한 시카고 폭염 피해자들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폭염뿐 아니라 모든 재난의 최전선에 있다. 폭염의 피해는 정책의 실패, 정치의 실패, 공동체의 실패다. 한창 휴가 중인 위정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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