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반지하방의 추억’ 그리고 공급폭탄

전병역 기자 2024. 8. 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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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행인의 발목만 보인 적이 있는가.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집은 사실 경기 고양의 세트장인 데다, 행인 얼굴이라도 보이니 차라리 낫다. 문득 대학생 때 살던 반지하방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니, 언덕배기 빌라 반지하 맞은편 단칸방에는 애 하나 딸린 신혼부부도 살았다. 물 내리는 손잡이 달린 구식 화장실은 심지어 공용이었다.

한번은 위층 배관이 터졌는지,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라때’는 그랬다. 요즘 세상에 이런 데서 애 낳고 살라 하면 다들 고무신 거꾸로 신을지도 모르겠다. 저출생 해결을 향한 제1차 관문은 역시 집이다.

과연 집이 얼마나 부족할까. 집값이 꿈틀대자 세간에 공급을 놓고 말들이 많다. 국내 주택보급률은 진작에 100%를 넘었다. 이른바 ‘살고 싶은 곳’에 ‘괜찮은 집’이 모자라다는 게 갈등의 본질이다.

이번 ‘8·8 공급대책’은 8만가구의 아파트를 신규 택지에 짓고, 11만가구는 비아파트, 즉 빌라 등으로 공급한다는 것이다. 아파트보다 빨리 뚝딱 짓는 다세대 공급 확대가 눈에 띈다. 최근 빌라 전세사기 참극 탓에 공급이 너무 줄어서 일단 이해는 된다.

그러나 살기 괜찮은 빌라를 공급할까. 벽간소음 탓에 “옆 사람에게 물었더니, 옆집 사람이 대답하더라”는 농담까지 나올 지경이다. 이런데도 구청은 버젓이 준공허가를 내주고, 나 몰라라 한다. 이런 빌라에서 일단 애부터 만들라는 속보이는 계산이 아니고 뭔가. ‘빌거’라는 험한 말까지 아이들이 서슴지 않고 엄마 따라 내뱉고, 옆 동네 친구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지도 못하게 막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끝판왕’에 우리는 살고 있다.

커뮤니티센터와 주차시설, 놀이터 같은 걸 소단위로 묶어서 마련해주면 빌라도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다 비용이다. 과연 정부가 어디까지 지갑을 열까 싶다. 또 ‘몇만 가구 확보했다’고 숫자 땜질에 그칠 공산이 농후하다.

또한 윤석열 정부는 첫 공급대책인 김포한강2 주택지구 공급에도 힘을 쏟을 모양이다. 그러면서 서울 여의도까지 30분 내로 갈 수 있는 철도 중심 대중교통체계 구축을 강조했다. 이는 GTX D를 깔고, 송도에서 올라오는 GTX B와 연계해 바로 여의도까지 가도록 하겠다는 구상일 텐데, 어느 세월에 될까 싶다. 김포한강 신도시 통근자들은 가쁜 숨을 몰아쉰 채 10년 가까이 운명을 ‘지옥철 GGL’에 밀어넣어야 할 수도 있다. 세간에선 벌써 김포한강2를 가리켜 베드타운의 대명사 ‘미래의 일산’이라고들 한다.

중요한 건 신도시를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핵심은 역시나 일자리다. 수도권도 판교나 용인·화성 일대를 제외하곤 일자리 없이 거의 다 닭장 같은 잠자리만 지어대는 상황이다. 정부가 틈만 나면 ‘자족시설 강화’를 외쳐대지만, 현실은 우후죽순 같은 텅 빈 지식산업센터들이다.

그러고선 ‘전가의 보도’처럼 툭하면 GTX를 꺼내든다. 김동연 경기지사까지 가세해 이제 GTX는 F, G, H까지 거의 안드로메다 종착역으로 향한다. GTX가 끝내는 ‘은하철도 999’가 될 것이란 우스갯소리가 나돈다.

이런 와중에 대출금을 못 갚아 경매로 넘어간 집합건물이 13년8개월 만에 최대가 됐다. 서울은 달아올랐지만 경기도만 해도 미분양 아파트 규모가 7년 만에 최대다. 특히 준공 후에도 안 팔린 ‘악성 미분양’이 11개월 연속 늘어 1만5000가구에 육박한다. 그런데 정부는 3기 신도시 빈틈에 2만가구를 최대한 더 밀어넣으라는 ‘테트리스 주문’과 함께 추가로 경기도에 8만가구 공급안까지 내놨다.

애초에 서울 중심 공급폭탄으로 집값을 낮췄더라면 오히려 약자에게 더 도움이 됐을 테다. 낡은 비현실적 규제는 풀고 분양가상한제, ‘토지임대부’ 반값 아파트를 비롯해 물량 공세를 퍼부었어야 했다. 세금 강화로 집값이 잡힐 거라는 건 순진한 착각이다. 게다가 중산층도 새 아파트를 원하기에 주택은 늘 부족할 수밖에 없다.

세계 도시·국가 비교통계 사이트인 넘베오(NUMBEO)에 따르면 한국은 2023년 기준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이 26.0배다. 26년간 봉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니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서 툭하면 진풍경이 빚어진다. 로또 청약이다. 당첨되면 ‘20억 돈방석’에 앉는 나라. 부동산 투기인지, 재테크인지에 미쳐 돌아가는 한국 사회는 거대한 ‘폰지사기집단’ 같다. 돌려막기 끝에 폭탄을 떠안을 당사자들이 바로 2030이니, 큰일이다.

전병역 경제에디터

전병역 경제에디터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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