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교육의 목표는 무엇인가
며칠간 좋은 교사가 되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모임에 이야기 손님으로 참여했다. 교육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학교 현장이 점차 황량하게 변해가는 현실 속에서 교사의 사명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모색하는 자리였다. 방학 중인데도 많은 교사가 참여한 것은 교권이 무너지고 있는 오늘의 교육 현실 속에서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계기로 삼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교사에 대한 언어적, 정서적, 신체적 폭력이 항다반사로 일어나는 현장에서 교사들은 자괴감을 느낀다. 교사들에 대한 사회적 존경은 철회된 것처럼 보인다. 많은 교사들이 현장에서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오길 기다린다. 교육의 귀중한 토대가 허물어지고 있다.
의대 진학 열풍이 교육계를 휩쓸고 있다. 모든 질서정연한 것들을 거침없이 휩쓸어가는 쓰나미처럼, 학부모들의 조급한 열정이 교육이란 배를 파선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낮잠을 자다 사과가 떨어지는 소리를 세상의 종말이 온 줄 알고 달아나기 시작한 토끼를 영문도 모른 채 따라 질주하던 동물들의 우화가 떠오른다. 경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게 교육의 진정한 목표일까. 사람들은 성공적 삶을 위해 스펙 쌓기는 필수라는 전제에 암묵적으로 공감한 채 살아간다. 스펙이란 누군가의 경험과 능력에 부여한 사회적 인정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쓸모를 입증하려 안간힘을 다한다. 하지만 스펙이 한 사람의 사람됨을 보장하진 않는다. 스펙은 화려하지만 자기중심성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많다. 자기 충족적 행복에 집착할 뿐 타자의 아픔에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을 양산하는 교육은 참 교육일 수 없다.
미국의 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은 <학교는 시장이 아니다>란 책에서 교육의 과제를 새롭게 제시한다. 첫째는 타인의 관점으로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고, 둘째는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타자에 대해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다. 타자들에 대한 존중 혹은 공생할 줄 아는 마음을 심어주는 게 교육의 본령이라는 말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교육을 받은 사람을 새롭게 정의한다. “교육을 받은 사람은, 바로 인간이 타인에게 가한 고통 때문에 발생한 아픔을, 내가 책임질 이유가 없는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아픔을 책임져야 할 사람이 바로 나라고 인식하는 사람이다.”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사회에서 약자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진다. 약자들은 함께 살아가야 할 소중한 이웃이 아니라 경쟁에서 패배한 무능력자로 취급받는다.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분투하는 이들의 눈물과 아픔은 일쑤 외면된다. 어떤 이들은 경제력 있는 부모를 만나 자기 재능을 한껏 개발하며 살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이들이 더 많다.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이라 하여 그들의 노력이 폄훼되어선 안 된다. 몇해 전 한 철없는 젊은이가 돈도 실력이라며 능력 없으면 부모를 원망하라고 해 공분을 샀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우리 현실이란 사실을 씁쓸하게 인정한다. 좋은 기회를 독차지한 이들은 그것을 자기들의 능력으로 전유한다.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자격이 있다(you deserve)’라는 말의 쓰임이 1970년에서 2008년 사이 세 배로 늘었다고 지적한다. ‘자격이 있다’는 말의 이면에는 노력하면 누구나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일견 옳은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말은 사회적 불평등을 교묘하게 숨기는 역할을 한다. 사회적 상승의 담론은 바닥에 묶여 있는 사람들, 물 밑으로 가라앉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에 대한 조롱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욕망의 바다를 떠돌고 있는 교육이란 배의 방향을 전환시킬 수 있을까?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좋은 교사가 되려는 이들은 울면서라도 그 일을 수행해야 한다. 결실을 얻지 못한다 해도 그는 실패자가 아니다. 바른길 위에서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른 교육을 실천하려는 모든 교사들을 응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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