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식의 이세계 ESG]기업 가치를 훼손하는 대기업 지속가능보고서
기업이 이해관계자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외부에 공개하는 자료는 재무제표와 지속가능보고서 두 가지다. 재무제표는 사업 활동의 ‘사후 결과’를 숫자로 환산해서 발표하는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 같은 자료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기업 활동은 ‘사전 대비’가 중요해졌다. 대표적인 게 기후변화로 인한 예측 불가능한 피해와 양극화 심화로 인한 공급망 리스크다. 이러한 위기를 사전에 대비하기 위해 유엔은 2015년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제정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사항을 포함한 리스크 대비 현황을 알려주는 게 지속가능보고서다.
경영 리스크가 심해짐에 따라 이해관계자들은 의사 결정 시 재무제표보다 지속가능보고서를 중시하게 됐다. 보고서의 많은 내용 중 핵심은 기후위기 대응과 협력사와의 상생 데이터다. 이런 데이터는 최소한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트렌드 분석이 가능토록 10년 이상 장기 시계열 자료를 제공하고, 협력회사와의 비교 데이터를 세부자료(fact book)로 공개하고, 계획 연도에 달성할 목표(Goal)와 현재 수준의 차이를 보여줘야 한다.
이러한 기준으로 최근에 발표한 우리나라 5대 그룹 대표 회사의 2023년(실적) 지속가능보고서를 전년도와 비교·분석했다. 결과적으로 세 가지 요건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데이터 공개에 성의를 보이고 있다. 주요 항목에 대해 모바일·가전(DX) 부문과 반도체(DS) 부문을 구분했다. 재생에너지 사용 실적은 DX부문이 93.4%를 달성했다. 한국의 수원 사업장은 2022년에 100% 달성했다. 해외도 미국과 유럽은 2020년에 100%, 인도·베트남·중국은 2022년에 100% 달성했다. DS 부문의 경우 미국과 중국은 2020년에 100% 달성했으나, 한국은 2023년 2.8GWh를 사용했다고 표기하면서 구체적인 달성도(%)는 공개하지 않았다. 문제는 국내외 이해관계자가 삼성전자 ‘한국’ 반도체공장의 재생에너지 달성률을 가장 걱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정부의 전력산업 정책에 크게 좌우되지만, 먼저 현실의 장애 요인을 공개해서 정부와 이해관계자의 협조를 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데이터 공개도 삼성전자가 비교적 앞서고 있다. 장애인 고용률이 법적 기준(3.1%)에는 미달하지만 2022년보다 200명을 추가 고용하여 1.6%에서 1.8%로 개선했다고 표기했다. 2022년 보고서에서 약속한 발달장애인 특성에 적합한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세워서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을 꾸준히 하겠다는 점이 실천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협력회사 관련 데이터도 1차, 2·3차 협력회사로 세분해 발표하고 있다. 특히 2023년에는 근로시간, 임금 및 복리후생을 포함한 36개 주요 항목에 대해서는 1차, 2차 협력회사로 세분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정도나마 협력회사 관련 자료를 공개한 곳은 삼성전자뿐이다.
반면 10년 이상 장기 시계열 데이터의 경우, 2022년 삼성전자가 유일하게 국내 사업장 남녀 성별 임금 격차가 좁혀지고 있음을 제시했다. 그러나 2023년에는 이를 전년보다 소폭 늘어난 24.2%라는 표기로 갈음했다. 이와 별도로 2013·2018·2023년 여성 리더 증가 현황을 소개하고, 2030년까지 여성 임원 비중을 2022년 대비 2배 이상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공개했다.
현대자동차는 사업 특성상 자동차 ‘대당’ 각종 지표는 비교적 충실히 발표하고 있다. 장애인 고용률도 2.5%라고 성실히 공개했다. 그러나 이해관계자들이 걱정하는 공급망 관리의 핵심인 협력회사 관련 구체적 데이터가 없다. 기후·환경 관련 데이터도 걱정이다.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RE100)이 체코·인도네시아 공장은 100%, 튀르키예 68%, 인도 59%, 브라질 41%라고 공개했다. 그러나 자동차 생산의 45%를 차지하는 국내 공장은 데이터 공개를 못하고 있다. 또한 온실가스 감축량은 자동차 사업장의 경우 2030년 45%, 2035년 60%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이보다 배출량이 10배나 되는 ‘공급망 감축’은 2030년 10% 이상 감축, 2035년 40% 감축을 목표로 제시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로드맵은 아직 공개가 안 되고 있다. 이 또한 정부의 전력산업 정책 변화와 철강산업 지원 의지가 중요하므로 장애 요인을 이해관계자와 공유할 필요가 있다.
SK하이닉스는 유일하게 28개 항목에 대해 2020년 대비 2030년 개선 목표를 제시한 후, 매년 달성도를 점검하고 다음해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지속가능보고서가 갖춰야 할 매우 중요한 요건이다. 그러나 국내 사업장 RE100 달성은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SK그룹 차원에서 상생과 사회적 가치 창출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도 협력회사 관련 데이터는 없다.
포스코(철강)는 비전으로 ‘그린스틸로 세상의 가치를 더합니다’를 제시했다. 그린스틸을 향한 다양한 계획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데이터는 의문을 갖게 하거나 공개가 안 되고 있다. 쇳물 생산 t당 이산화탄소 배출량(tCO₂e/ton)은 2022년 2.05에서 2023년 2.02로 개선됐다. 그러나 총에너지 집약도(GJ/ton)는 2022년 9.8에서 2023년 9.9로 악화됐다.
LG화학도 2022년 보고서보다 개선된 점이 보이지 않았다. 장애인 고용도 최근 3년 변화가 없고 고용률(1.7%)은 여전히 표기를 하지 않고 있다. 여기도 협력회사 관련 데이터는 없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와 공급망 리스크가 대두되는데, 대다수 기업들이 관련 데이터 공개를 못하고 있다. 보고서에 비전과 미래 약속은 장밋빛으로 해놓고 관련 데이터는 너무 빈약하다. 침소봉대가 심하고 교묘히 단위를 바꾸기도 한다. 일부 기업은 그린워싱으로 망신을 자초하기도 한다. 이해관계자들이 정보 비대칭에 갇힐수록 그 기업의 장기적인 변화 대응 능력과 자정 능력은 상실된다. 이런 게 기업 가치 훼손이고 코리안 디스카운트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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