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135) 청기와 주유소

기자 2024. 8. 8.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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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랜드마크, 그때는 택시 잡고 ‘청기와 주유소’ 외쳤다
청기와 주유소 1971년(위 사진)과 청기와 주유소가 있던 자리 2024년 |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푸른색 기와, 즉 청기와는 매우 고급스러운 건축재다. 조선 초기 경복궁을 지을 때 사용했고, 현대에는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靑瓦臺)가 청기와를 올린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으로 ‘청와대’의 의미는 많이 퇴색됐지만, ‘청기와’ 하면 자연스럽게 권위와 품격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이런 까닭에 ‘청기와’는 특히 한식집 등의 상호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조금 뜬금없이 이 이름이 붙은 업소가 있었다. 바로 서울 마포구 동교동, 양화로 변에 있던 ‘청기와 주유소’이다.

1971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그 건물과 주유기들이 설치된 곳의 지붕을 실제로 청기와로 이었다. 지붕이 격조 있는 이곳은 예사 주유소가 아니었다. SK에너지의 전신인 유공이 1969년 직접 만들고 운영한 한국 최초의 현대식 주유소였다. 그 면적이 무려 700여평에 달하였고, 주유소 안에서 식당이 운영되었으며, 정비와 렌터카 서비스도 존재하였다.

청기와 주유소는 위치도 남달랐다. 서울 시내에서 제2 한강교, 즉 지금의 양화대교를 이용해 김포공항으로 나갈 때 들르는 서울의 마지막 주유소였다. 자가용 승용차가 귀했고 아무나 비행기를 탈 수 없던 시절, 서울과 김포공항을 오가며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한정적이었다.

당시 유명했던 청기와 주유소는 근처 주민들에게 중요한 랜드마크였다. 1970년대 인근의 ‘홍익국민학교’에 다닌 나도 이곳을 약속 장소로 애용했다. 여기서 친구들과 만나서, 당시 대부분 논밭이던 성산동 쪽으로 몰려가 여름에는 개구리를 잡고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탔다. 그때는 논에 물을 얼려 스케이트장 영업을 했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근처 버스 정류장 이름이 ‘청기와 주유소’였다.

50여년이 흐른 지금, 이 주변은 ‘홍대 입구’라는 최고의 번화가로 변했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2010년 SK에너지는 땅값에 비해 수익성이 저조한 주유소를 팔기로 했고, 우여곡절 끝에 2013년 롯데그룹이 약 630억원에 이 땅을 사서 ‘L7 홍대’라는 호텔을 지었다. 홍대 입구가 외국인 관광명소로 부상하고, 공항철도와도 연결되어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2018년 개장한 이 호텔은 라운지 이름을 ‘블루 루프(blue roof)’라고 지어 이곳이 청기와 주유소였음을 기억하고자 했단다.

* 이 칼럼에 게재된 사진은 셀수스 협동조합 사이트(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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