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글은 ‘지식의 저주’에 걸린 탓[책과 삶]
글쓰기의 감각
스티븐 핑커 지음 |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640쪽|3만원
이 책에는 두 가지 미끼, 한 가지 허들이 존재한다. 저자가 세계적인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라는 점, 베스트셀러 과학 저술서를 여럿 펴낸 핑커가 쓴 글쓰기 지침서라는 점은 독자의 구미를 당기는 강력한 유인책이다. 하지만 책의 부제는 ‘21세기 지성인들을 위한 영어 글쓰기의 정석’. 본문에 가득한 영어 예시문들(한글 번역과 병기돼 있다)은 심리적 허들의 높이를 끌어올린다.
하지만 안심하시길. 책은 언어와 관계없이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명쾌하고 지적이며, 재치 있고 우아하다.
“좋은 글은 강하게 시작한다”는 책의 내용을 따라, 핑커는 독자들을 홀릴 만한 글들로 책을 시작한다. 1장 ‘잘 쓴 글’에선 리처드 도킨스,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리베카 뉴버거 골드스타인, 언어학자이자 기자인 마걸릿 폭스의 부고, 저널리스트 이저벨 윌커슨의 흑인 대이동을 다룬 논픽션의 글을 소개한다. 전혀 다른 주제와 형식의 글이지만 각자 독창적인 방식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글들을 요리조리 뜯어보며 글의 탁월함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물론 못 쓴 글도 많이 나온다. 추상적 개념 범벅, 진부한 인용구, 글의 생기를 모조리 빼앗아가는 명사화된 동사인 ‘좀비 명사’를 사용한 문장들이다. 핑커는 해독제로 ‘고전적 글쓰기’ 스타일을 제시한다. 눈앞에 보이듯이 최대한 생생하게 마음속에 그려서 명쾌하게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모범적 예시로 든 다중 우주이론을 소개한 브라이언 그린의 글은 감탄이 나온다.
3장 ‘지식의 저주’는 특히 흥미롭다. 똑똑한 학자, 전문가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글들을 써대는 이유에 대해 우리가 어떤 지식을 알고 있을 때 그것을 모르는 다른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지 못하는 ‘지식의 저주’로 설명한다. “편협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을 헤아리도록 노력하라”는 조언은 글쓰기뿐 아니라 삶의 태도로 유익하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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