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이 흐른 뒤 봐도…전설은 전설이다[책과 삶]

기자 2024. 8. 8.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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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횡단특급
듀나 | 문학과지성사

한국 SF를 대표하는 작가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은 사람은 역시 듀나 작가다. 1990년대 중반에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해서 어느새 올해로 30년째 활동하고 있는 듀나 작가는 1990년대 등장 당시 한국 SF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렬하고 무게가 있으면서도 너무나 재미있는 단편 소설을 아주 매끄럽게 잘 써내는 작가로 여러 문학인들로부터 아주 많은 관심을 얻었다. 그런 작가가 다채로운 도전을 꾸준히 이어오면서 2020년대인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해 오고 있다는 것은 한국 SF계가 누리고 있는 가장 큰 축복이다. 30년 전부터 활동하던 듀나 작가가 새 소설을 발표하면 지금도 SF 독자들로부터 찬사를 받거나 한국 SF 작가들의 동경의 대상이 될 때가 자주 있다. 가요계로 따지자면, 주현미와 블랙핑크가 같은 무대에 올라, 같은 관객들에게 환호를 받는 장면과 비슷한 현상이다. 그렇기에 나는 듀나 작가를 한국 SF의 거장 중의 거장이라고 이야기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듀나 작가의 대표작을 추천하자면 초창기 활동 당시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면세구역>이나 <태평양횡단특급> 같은 단편집이 가장 적당할 것이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에 나온 그 시절 듀나 소설들이 인공지능, 인터넷, 사회적 차별과 갈등을 다루었던 내용을 지금 살펴보면 마치 2020년대의 현실을 30년 먼저 앞서서 보고 온 것 같은 전율을 느끼게 된다. 빠르게 이야기를 펼쳐 가다가 꼭 필요할 때만 강렬한 몇개의 단어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며 온갖 심오한 생각을 건드리는 솜씨를 맛보는 것은 그야말로 문학의 힘에 푹 젖어 보기에 좋은 훌륭한 독서가 될 것이다.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심너울 | 아작

202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젊은 작가 중에는 누구를 꼽아 보면 좋을까? 요즘은 10년 전, 20년 전의 과거에 비하면 한국 SF의 전성기가 찾아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시대다. 그러므로 과거에는 드문드문 보였던 훌륭한 SF 소설들을 꽤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유명한 책, 인기 있는 책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출간된 여러 SF에 대한 소개 글을 살펴보고 그저 자기 입맛에 맞는 책들을 골라 읽으면 그게 가장 좋은 길일 것이다.

그래도 그중에서 꼭 하나만 추천하라면 오늘은 심너울 작가의 단편집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를 골라 보고 싶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SF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용 로봇 만화나 어린이용 TV 시리즈에 나오는 외계인 이야기 같은 것들을 워낙에 많이 떠올렸다.

그래서 당시 한국 SF팬들은 그 고정관념을 깨고 “SF는 유치하고 허무맹랑한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심오하다”고 주장하기 위해 정말 애썼다는 것이 내 기억이다. 그런데 정작 창작 SF 소설이 널리 출판되고 있는 요즘은 도리어 정반대로 “SF는 어렵다”라는 인식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눈에 띈다. 이렇게 세상 흘러가는 모습을 보다 보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알기 어렵다.

그렇기에 SF에 덜 익숙한 독자라면 우선 일상생활의 생생하고 가벼운 문제를 SF의 신기한 상상력으로 연결해 재미나게 풀어 가는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가 SF의 맛을 보기에 좋은 선택이라고 본다. 심너울 작가의 장편 소설도 좋지만, 일단 먼저 맛을 보기에는 짤막짤막한 이야기들이 여럿 들어 있고 그중에 재미나 보이는 것부터 먼저 읽어 볼 수 있는 단편집이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수록작 중에 가축 고기 대신 공장에서 만든 인조고기, 배양육, 대체육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한 터럭만이라도’는 천재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걸작이며, 신기술에 투자하는 첨단기술 회사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다루면서 생생한 인간 군상을 보여 주는 ‘SF클럽의 우리 부회장님’을 비롯한 여러 다른 단편들도 가깝게 다가오는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곽재식 소설가

곽재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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