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탕? 온탕?…취향 따라 골라 읽는 재미에 ‘푹’[책과 삶]
온난한 날들
윤이안 | 안전가옥
“습해서 미치겠어요. 우리 에어컨 조금만 틀어요.”
이건 소설 <온난한 날들>의 앞부분에 나오는 대사인데, 내 말이 그 말이다. 올해 여름날은 선풍기만으로는 견디기 버거운 찜통이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주룩주룩 흘렀다. 국지성 호우가 무섭게 쏟아지는 것도 문제였다.
일기예보에서 뭐라고 하든,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무자비한 소낙비가 내렸다. 나는 외출 전에 양산을 챙기면서도 혹시 모른다며 우산을 집어 들곤 했다.
<온난한 날들> 속 근미래 한국에는 지금 같은 날씨가 일상이다. 기후변화가 더욱 심각해진 탓이다. 정부는 환경보호 비용을 세금으로 걷는다. 강력한 탄소배출 규제 정책도 시행된다.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장시간 사용할 수가 없다. 탄소배출량 상한선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평택은 환경보호구역으로 ‘에코시티’가 되었기에, 자원을 소모하거나 환경에 부담을 주는 일을 하기가 더욱 껄끄럽다.
‘박화음’이 일하는 한 프랜차이즈 카페는 분해가 잘되는 신소재 플라스틱을 사용한다고 광고하여 주목을 받았다. 물론 그런 일로 상황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카페에서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해도 얼음이 금방 사라지고 만다니.
이 소설은 기후소설 외에도 미스터리 성격이 강하다.
박화음은 식물에 어린 소리를 듣는 능력이 있다. 덕분에 어릴 적부터 남들이 무심코 남긴 원념이나 저주를 듣곤 했다. 화음의 아버지는 일찌감치 딸을 단속했다. “화음아, 쓸데없는 오지랖은 죽음을 부르는 거다.” 하지만 오지랖은 탐정의 중요한 자질이다.
에피소드를 거듭할수록 화음이 마주하는 사건의 규모는 점점 커진다. 화음처럼 온난한 사람들이 반가운 한편으로, 쉬이 떨쳐지지 않는 눅눅함이 마음에 남는다.
SF 보다 Vol. 1 얼음
곽재식 외 | 문학과지성사
시원한 책도 추천해야겠다. ‘SF 보다’ 시리즈 1호의 키워드는 얼음이었다. 1호에 단편을 수록한 6명의 작가들은 얼음으로 각자 자기만의 태피스트리를 짰다. 남극, 빙하기, 냉동인간, 얼어붙은 시간 등 차가운 이미지가 연이어 등장한다.
얼음은 인간이 생존하기 어려운 극한 지대의 상징이었다. 덕분에 일상세계 바깥을 소설에 끌어들이는 SF에서는 얼음을 자주 “자연·미지·타자·새로움·가능성”을 나타내는 소재로 활용했다. 등장인물이 얼음, 혹은 얼음에 속하는 비인간 존재들과 대면할 때 우리는 일그러진 거울상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책의 앞뒤에 실리는 하이퍼텍스트와 크리틱도 읽어보시길 권한다. 1호의 크리틱에는 SF의 의미를 풀이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SF 작가이자 연구자였던 주디스 메릴은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이나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을 넘어 ‘S’와 ‘F’의 다양한 뜻을 풀이한 적이 있는데, 그걸 모델로 삼은 표현이다. “SF는 과학(science)과 사회학(sociology), 외우주(space)와 내우주(psychology), 픽션(fiction)과 예언(forecast), 자유의지(free will)와 운명(fate)을 내포하며, 그 혼합물은 사변적 즐거움(speculative fun)뿐만 아니라 더 큰 세계로 날아오르는 경험(sublime flight)을 제공한다.”
심완선 SF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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