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첫 금메달 박태준 “수강신청하느라 밤 샜죠”[올림픽x인터뷰]
8년 만의 금빛 발차기를 선보인 박태준(20·경희대)의 얼굴에선 짙은 피로감이 엿보였다.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걸은 기쁨도 잠시 학생의 본분으로 돌아가 수강신청 전쟁에 뛰어든 여파였다.
박태준은 8일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금메달을 따니 잠을 이루지 못해도 기쁘네요. 수강 신청 전쟁에서도 살아 남았죠”라고 웃었다.
■“금메달리스트도 본분은 학생이죠”
박태준은 파리의 명소인 그랑 팔레에서 애국가를 울린 뒤 힘겨운 하룻밤을 보냈다. 도핑 테스트를 마치고 올림픽 빌리지에 도착하니 새벽 3시 30분. 박태준은 룸 메이트인 서건우(21·한국체대)가 곤히 자고 있는 터라 숨죽여 몸만 씻은 채 휴게실로 달려갔다. 한국 시간에 맞춰 수강 신청을 하려면 쉴 틈이 없었다.
박태준은 “2학년 2학기 수업을 신청하느라 바빴어요”라고 떠올린 뒤 “이번 학기에는 19학점을 넣어야 하는데, 수업 하나를 빼면 다 넣었으니 이 정도면 선방했겠죠?”라고 되물었다.
박태준의 새 학기 시간표는 ‘성찰과 표현’ ‘세계와 시민’ ‘교직 실무’ ‘학교폭력 예방 및 학생의 이해’ 등의 과목으로 가득했다. “태권도학과 전공 수업은 지난 학기까지 대부분 들어서 부담이 줄었어요. 이번 학기는 교직 위주로 이수하느라 ‘주3파’가 됐네요. 학교에 있을 때 수업 듣고 운동은 별도지만요”라고 웃었다.
■“세리머니? 윙크는 우연, 공중 옆돌기는 계획”
박태준이 금메달을 따는 과정에선 두 차례 세리머니도 화제를 모았다.
박태준이 준결승전에서 세계랭킹 1위 모하메드 카릴 젠두비(튀니지)를 꺾은 뒤 손가락으로 관중석을 가리키면서 윙크한 것이 대표적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배드민턴 혼합 복식 금메달을 딴 뒤 중계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날린 이용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박태준은 “사실 의도한 세리머니는 아니었죠. 신경현 (경희대) 코치님에게 화살을 쏜 것인데,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아요”라고 웃었다.
윙크 세리머니가 우연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면 결승전에서 가심 마흐메도프(아제르바이잔)가 경기를 포기한 뒤 선보인 공중 옆돌기는 지난 3월부터 준비된 장면이다.
박태준은 “학교(경희대)에서 시범단이 하는 걸 보고 따라해보니 하루 만에 되더라고요. 신 코치님에게 ‘금메달을 따면 쌤보고 돌겠다’고 약속했는데 잘 지킨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결승전이 첫 대결? 사실 설욕전이었죠”
박태준이 금메달을 결정지은 결승전은 평소 꿈꾸던 것과는 다른 그림이었다. 마흐메도프가 1라운드 1분 7초경 정강이 부위를 다친 나머지 2라운드 막바지 경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사실 박태준 역시 오른쪽 정강이 근육이 파열되고, 왼쪽 손가락이 탈구되는 부상을 안고 뛰었다.
박태준은 “경기를 치를 땐 몰랐는데 끝나고나니 아프더라고요. 마흐메도프한테는 지난해 아시아 프레지던트컵 결승전에서 4점차로 앞서다가 0.3초 남기고 오심으로 역전패한 아픔을 제대로 되갚고 싶었는데, 원하지 않는 형태로 끝났네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태준과 마흐메도프의 라이벌 구도는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 박태준이 내년 중국 우시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다면 두 선수가 우승을 다툴 가능성이 높다. 박태준은 지난해 이 대회는 54㎏급으로 출전했지만, 이번엔 58㎏급으로 마음을 굳혔다. 2년 뒤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까지 정복한다면 20대 초반의 선수가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다.
박태준은 “경량급은 체중 감량이 힘들어요. 이젠 58㎏급으로 고정해야죠”라며 “아시안게임은 아직 생각하지 않을래요. 먼저 세계선수권대회부터 도전해보겠습니다”고 다짐했다.
파리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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