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한국지엠의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

김두현 변호사 2024. 8. 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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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공장 사내 불법파견 사건, 9년 6개월만에 대법원서 인정
공정 블록화로 같은 재판 반복…정부 비롯한 각계의 관심 필요
김두현 변호사

한국지엠 창원공장 불법파견 사건이 무려 9년 6개월이 걸려 지지난주 대법원에서 선고됐다. 1·2심과 마찬가지로 협력업체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판결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 소송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오래 걸리게 됐을까.

‘송사 3년에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있듯, 실제로 대법원까지 재판을 하면 3년이 걸리기도 한다. 더구나 불법파견 사건은 다른 사건에 비해 참여 인원이 많고 여러 증인에 현장검증까지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사건이다. 그렇다고 해도 9년 6개월이라는 시간은 무척 이례적이다. 특히 이 사건은 선행사건이 있는 2차 사건이었다. 즉, 동일한 쟁점으로 진행된 1차 사건이 이미 대법원에서까지 확정되었으므로 원래라면 선행 사건의 결론대로 훨씬 빠르게 진행되었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10년, 한국지엠 창원공장의 불법파견으로 당시 대표이사 등이 창원지방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이 형사판결은 2013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유죄가 선고됐지만 한국지엠은 불법파견을 해소하지 않았다. 그래서 협력업체 비정규직 근로자 5명이 대표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도 법원은 불법파견을 인정했고 2016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2016년에 대법원에서 확정된 이 1차 사건은 한국지엠 창원공장의 직접, 간접공정 비정규직들이 불법파견 근로자인지를 판단한 것으로, 지지난주 대법원에서 선고된 2차 사건과 쟁점이 동일한 사건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이미 대법원이 불법파견으로 인정했는데 같은 재판을 또 한다는건 이상한 일이다. 실제로도 이런 경우 대부분 후속 사건은 판결까지 가지 않고 선행 사건의 대법원 결과에 따라 노사 합의로 정리되는게 보통이다.

그럼에도 한국지엠은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고 했다. 선행 사건의 대법원 판결은 2010년 이전 상황에 대한 판단이고, 이후에는 공정을 ‘블록화’하여 더 이상 불법파견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일까.

‘협력업체 근로자’는 말그대로 한국지엠이 아닌 다른 회사 근로자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가보면 누가 한국지엠 근로자고 누가 협력업체 근로자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뒤섞여 일하고 있다. 이런 혼재작업은 법원이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주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그러자 한국지엠은 2010년 불법파견 유죄 판결 이후 라인 재배치를 통한 ‘블록화’로 이러한 혼재작업을 해소했다고 주장했다. 때 마침 보수정권 정부로 바뀌었고, 과거 불법파견으로 인정했던 고용노동부는 “그 때는 불법파견이지만 지금은 아니다”고 판단해 버렸다. 결국 또다시 지루한 2차 소송이 진행됐다.

공정 블록화가 무엇이길래 불법파견이던게 하루아침에 아니게 된걸까. 예를 들어,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순차로 이루어지는 1번부터 20번까지의 공정이 있을 때, 과거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바로 옆에서 징검다리처럼 완전히 혼재되어 작업을 했다. 주로 힘든 공정이 비정규직 몫이었다. 그러다 이후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집단을 공간적으로 서로 떼어놨다. 1번부터 10번까지는 정규직, 11번부터 20번까지는 비정규직이 하는 식이다. 이렇게 ‘블록화’를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공정이 서로 공간적으로 분리되었으므로 더 이상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것이 한국지엠의 주장이었다. 부당하지만 법원에서 다시 심리가 계속됐고, 그렇게 무려 9년 6개월이 걸려 다시 대법원은 그 때도 불법파견이고 지금도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기간동안 비정규직들은 어떻게 생활했을까. 소송과 무관하게 창원공장에서 계속 일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테지만 그러지 못했다. 사내 협력업체들은 1, 2년 단위로 한국지엠과 도급계약을 갱신하고 있고, 한국지엠의 생산량 증감에 따라 재계약이 안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사실상 노무도급인 사내 협력업체들은 별다른 기술이나 자본도 없다 보니 그럴 때마다 폐업과 신설을 반복하고, 일하던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매번 실직과 재취업을 반복하게 된다. 불법파견은 부당한 임금차별도 문제지만 바로 이런 고용불안이 진정 심각한 병폐다. 헌법과 근로기준법은 생산량 증감을 이유로 쉽사리 해고하지 못하도록 일하는 국민을 보호하고 있는데, 불법파견은 이런 노동법의 보호장치를 무력화한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지지난주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다시금 선고됐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상화되길 바라지만 이를 위해서는 정부를 비롯한 각계의 노력과 관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10년 전처럼 또다시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는 주장이 나올 것이고, 강산이 변할 시간은 다시 흐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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