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한방병원, 복지부 기준 어기고 수개월간 건강보험 급여 받다 적발
국민건강보험은 준조세의 성격을 지닌 공적 재원이다. 그런데, 최근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 적용의 기준과 절차를 무시하고 특정 의료기관에 특혜를 준 정황이 뉴스타파 취재로 드러났다. 특혜 의혹을 받는 곳은 국내 최대 규모의 한방병원인 자생한방병원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보건복지부는 자생한방병원이 특허를 가진 한약과 한약재에 대해 건강보험 요양급여를 지급했고, 독자 개발한 한방병원의 의료기술에까지 세금을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보건복지부 스스로 정한 규정과 절차는 무시됐다. 보건복지부와 자생한방병원이 얽힌 특혜 의혹을 3편에 나눠 보도한다. -편집자주
① 자생한방병원, 복지부 기준 어기고 수개월간 건강보험 급여 받다 적발
② 국내 최대 허리디스크 한방병원과 수상한 건강보험 적용
③ 보건복지부, 타당성 없다는 예타 무시하고 자생한방병원에 세금 지원
국내 최대 규모의 한방병원인 자생한방병원이 수개월 동안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닌 한약을 환자에게 처방하고, 건강보험 요양급여(급여)를 받아 온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로 확인됐다. 자생한방병원이 건강보험 급여를 부당 청구한 한약은 ‘청파전’이다.
뉴스타파 취재가 시작된 이후 보건복지부는 “청파전의 급여 청구 적절성과 광고의 적합성 등을 확인해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또 자생한방병원은 “(정부) 지침에 맞게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공식 홈페이지 등에 있는 청파전의 급여화와 관련된 홍보물을 삭제했다.
건강보험 급여 적용 불가능한 청파전에 지난 4월부터 급여 지급
청파전은 ‘하르파고피툼근’(Harpagophytum)이라는 남아프리카가 주 원산지인 약초를 주성분으로 하는 액상 형태의 한약이다. 청파전은 요추추간판탈출증(허리 디스크) 등 근골격계 질환의 치료 목적으로 쓰이는 데, 자생한방병원 설립자인 신준식 자생의료재단 명예 이사장이 10여 년 전 개발했다. 신준식 이사장은 지난 2011년 청파전의 원료인 하르파고피툼근에 대한 약제 가공 특허를 출원했다.
국내에서 하르파고피툼근을 의료용 한약재로 제조하고, 처방까지 내리는 의료기관은 자생한방병원이 유일하다. 하르파고피툼근을 수입, 판매하는 제약회사는 물론 하르파고피툼근을 납품받아 한약을 조제하는 약국 모두 자생한방병원이 운영 중이다.
자생한방병원은 하르파고피툼근을 주원료로 조제한 청파전을 대표 한약으로 소개한다. 그러나 청파전은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 급여 지급 기준으로 삼고 있는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Clinical Practice Guidelines)상, 임상 근거 연구에서 건강보험 적용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생한방병원의 청파전, 급여화 불가능한 CPG상 C등급에도 건보 급여 받아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이하 CPG)은 한의사가 진료에서 기준으로 삼는 교본(알고리즘)을 말한다. CPG에는 특정 질환에 대한 한방 치료법이 어느 정도 수준의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연구한 결과가 담긴다. 보건복지부는 2016년부터 ‘한의약의 과학화’를 목표로 월경통 등 수십개 질환에 대한 CPG를 개발했다.
이에 따라 각 치료법에 치료 권고등급(grade of recommendation)이 부여돼 A부터 D까지 등급을 매긴다. 각 등급에 따른 치료 권고 수준은 대략 다음과 같다.
A: 사용할 것을 권고 / B: 사용할 것을 고려 / C: 사용할 수는 있음 / D: 사용할 수 없음
-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CPG) 치료 권고등급(A~D등급까지 설명)
보건복지부는 CPG에 근거해 한약과 한약재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결정한다. 이 가운데 한의사들이 조제하는 한약(첩약)의 경우, 지난 2020년부터 권고등급 B 이상이어야 건강보험의 급여를 적용한다는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의학적 근거를 확신할 수 없거나, 환자에게 위험할 수 있는 C나 D등급은 건강보험 급여를 지급할 타당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기준은 지난 2020년 7월, 우리나라 건강보험 정책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확정돼 지금껏 바뀌지 않고 있다.
그런데 자생한방병원이 개발한 청파전은 지난 2015년 허리디스크에 대한 CPG 개발 과정에서 ‘독활기생탕’이란 다른 한약과 함께 권고등급 C를 받았다. 임상 근거에 대한 연구는 있었지만, 의학적 필요성이 완전히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지난 2021년 또 다른 척추질환인 변형성배병증(척추측만증)의 CPG 개발을 위한 임상 근거 연구에서도, 청파전은 C등급을 받았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규정한 건강보험 급여 지급 기준인 B등급을 충족하지 못했음을 뜻한다. 이렇듯 CPG상 C등급인 청파전에 건강보험 급여를 지급할 근거는 없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올해 4월부터 청파전의 원료인 하르파고피툼근을 건강보험 급여 대상 한약재에 편입했다. 이 약재를 처방하는 의료기관에 건강보험 급여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 자생한방병원도 지난 4월부터 덩달아 환자들에게 청파전을 처방할 때마다, 건강보험공단을 통해 건강보험 급여를 청구하기 시작했다. 최근까지도 자생한방병원은 청파전의 치료 효능과 함께 건강보험 적용을 자신들의 홈페이지 등을 통해 홍보했다.
청파전 기준처방 목록에 없는데도, 건강보험 급여 타낸 자생한방병원
하지만 청파전은 보건복지부가 또 다른 건강보험 급여 지급 기준으로 제시한 ‘기준처방’ 목록에 들어 있지 않았다. 올해 4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첩약 건강보험 적용 2단계 시범사업> 지침을 보면, 청파전은 기준처방 목록에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첩약 건강보험 적용 2단계 시범사업>(이하 첩약 시범사업)은 한의약에 대한 보장성 확대를 목표로 한방병원 등 한방의료기관이 외래환자에게 한약을 처방하면, 건강보험 급여를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첩약 시범사업 지침에는 한약의 건강보험 적용 기준과 절차가 상세히 명시돼 있다. 특히 한방의료기관이 건강보험을 적용 받으려면, “기준처방의 범위 안에서 첩약을 처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체계는 굉장히 체계적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의료인이 어떤 약을 처방하든지 간에 그 약에 대한 보험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의학적 타당성이라는 것을 고려해서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판단하게 돼 있습니다. 이 기준처방이라는 걸 설정해서 어떠한 첩약이 어떠한 질병에 어느 정도로 투약됐을 때, 의학적 타당성이 있고 치료 효과성이 있고 비용 효과성이 있는가 이런 것들을 다방면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거든요
- 김호범 한약사 / 대한한약사회 학술위원
더구나 이 지침에는 기준처방(급여) 목록에 해당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다른 한약 처방(비급여)은 할 수 없다고까지 명시해놨다. 실제 건강보험공단이 첩약 시범사업을 위해 관리하는 급여 청구 목록(코드)에 청파전은 없다.
그런데도 자생한방병원은 첩약 시범사업이 시행된 올해 4월부터 기준처방 목록에 없는 청파전에 대해 건강보험을 청구해 지급받았다. 기준처방도 아니고, CPG상 치료 권고등급도 C에 불과한 데도, 수개월간 건강보험 급여를 받아 온 것이다. 결국, 보건복지부가 자체 기준과 내부 규정을 무시하고 자생한방병원에 급여를 지급하는 특혜를 줬거나, 이를 알고도 방치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취재 시작되고, 보건복지부 "조치하겠다", 자생한방병원은 청파전 보험적용 홍보물 삭제
이에 대해 자생한방병원은 뉴스타파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청파전의 원료인 하르파고피툼근은 요통에 효과가 있는 약초”라며, “환자의 증상에 따라 청파전을 처방할 수 있고, 급여 청구도 기준처방 가감을 통해 지침에 맞게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생한방병원은 문제가 없다는 서면 답변과 달리 뉴스타파의 취재가 시작되자, 공식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있던 청파전의 급여화와 연관된 광고 게시물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도 뉴스타파의 취재가 시작되고 약 2주가 지나서야 뒤늦게 “청파전의 급여 청구 적절성과 광고의 적합성 등을 확인해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생한방병원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 대해선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뉴스타파 강현석 khs@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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